비가 오지 않는 도시 1
티에닝 지음, 김태성.이선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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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륜, 그 이름 속에도 사랑은 피어났다. 그 사랑은 은밀하고 위험했지만 그 것을 통해 요우자오는 조금씩 성장해갔다.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움켜지거나 자신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를 넓혀나가 것이다. 요우자오가 푸원저에게 건낸 사랑의 시는 그 건강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제가 당신의 마음을 점령한다 해도
당신이 당신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제가 왜 당신의 마음을 점령해야 하나요?

  하지만 그 빛나던 사랑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는 푸원저를 알게된 요우자오는 자신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한없이 투명할 것 같았던, 서로에게 경계없는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가 은밀하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변해버린 순간 요우자오는 집착하게 된다. 

  반면 푸원저의 본처의 처지는 반대곡선을 그린다. 처음에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게되었을 때 그녀는 화가났고 혹시나 올 상황에 대비하여 외도 사실을 증명할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무너지는 순간 자신의 삶도 무너져버리게 되는 것을, 불안감으로 감지한 후 오히려 그 사실을 덮기 위해 갖은 곤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2. 
  이 이야기는 얽혀있는 사랑을 섹슈얼리티를 통해 그리고 있지만 나는 자꾸만 그 사이에 작용하는 사회적 성이 보였다. 사랑과 거짓 그 얽힘관계는 성별이 뒤바뀌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출세에 열려있는 남성,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외도를 덮으려 노력하는 본처, 사랑에 집착하는 애첩이라는 구도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리얼리즘 문학이다. 만약 성별이 바뀌었으면 환상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오늘날 여성주의 문학의 슬픔이 있다.
 

3.
  번역이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한국어 답지 않은 문장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존칭, 높임말이 감정에서 벗어나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기회가 되면 원문을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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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여자
홍잉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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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여자아이

  나는 이상한 여자아이다.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있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그러니까 내가 살고있는 지금,여기서는 너무나 이상한 아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나를 밀어내 지킬것 하나 없어도 살아있는게 너무 힘들다.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사람들의 추억을, 선택을 이해하려 해도 남는 건 억울함 뿐- 나는 더이상 버릴 것이 없는데 아무것도 나를 긍정하지 않는다.

 

 나를 만든건 팔할이 굶주림이다.

  사실 나를 만든건 굶주림이다. 나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그 혹독하던 기아를 겪었다. 꿈에 부푼 중국을 휩쓴 3년간의 기아는 그 굶주림을 경험한 사람 모두에게 결핍감이라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에 이 결핍감은 태생적이다. 7할이 천재이고 3학이 인재라는 비판을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기 위한 말일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뒤틀린 사회는 광기를 불러일으켰고 인간은 인간의 얼굴을 감추었다. 누가 누구를 돌봐줄 수 없는, 돌봐주지 않는 시간은 굶주림을 배고픔 이상으로 넓힌다.

기아는 나의 태교였다. 우리 모녀가 살아오는 동안 기아는 나의 뇌리에 선명한 낙인을 남겼다. 엄마가 나의 영양을 위해 얼마나 참중한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 안정된 몸 전체와 젊은 외피는 하나의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사상은 언제나 완고하게 한 가지 고뇌에 얽매어 있었다. 어째서 나는 항상 자신이 남아도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p.66)

 

나는 매일 이곳에서 도망친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한다. 이 곳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하지만 매일 도망쳐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그건 하늘의 별 같은 꿈이다. 아무도 나의 꿈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구원을 가져다 줄 것같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사람은 떠났고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 모두는 다만 이 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몽상같은 것-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줄곧 병태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의 그런 비관을 좋아했다. 나는 스스로 그런 동병상련의 감정을 뜨거운 사랑으로 전환시켜 순결하고 고귀한 감정을 만들어냄으로써 저속하고 희망이 없는 빈민가에서 날 구해내고 싶었다.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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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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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혈의 추억

  이 이야기는 피를 파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피를 판다는 것은 단순히 행위 자체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상징과 금기가 얽혀있다.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피를 판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의 체온을 가진 검붉은 액체는 그들의 기운이었고 그들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과 금기는 더 큰 욕망을 만나자 매매가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일부를 팔아 욕망을 채우는 것, 여기에서 비극은 시작된다.  
 

사람들의 공동체

미친듯이 피를 팔아대던 사람들은 모두 에이즈에 걸린다. 마을에는 사람이 죽어나고 다툼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하나둘 학교에 모여 함께 산다. 곡식을 모으고 같이 밥을 지어먹고, 물론 이런저런 소란이 생기지만 사람들은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간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그곳에서 안식을 얻는다. 

 
 나는 환상을 보았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는 아주 사소한 욕망을 시작으로 깨지게 된다. 이제 마을엔 죽음을 앞둔 시체들과 그것을 이용하는 욕망의 덩어리들만 산다. 마을을 지켜왔던 사람들과 나무들은 사라져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는 절망적인 순간에 꽃처럼 환상이 핀다. 평원의 땅위에 신선한 꽃이 가득피고 땅 밑에는 황금이 맺히는 광경, 진흙인간들이 다시 태어나 새롭게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는 광경, 희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요원한- 환상 같은 것, 


조용하고 말없는 대지 위에 가늘게 지지 하는 소리가 울렸다. 예전에 가을이 찾아올 때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올 가을에는 평원 위에 완전히 씨가 말라 버린 풀들이 다시 살아나는 소리였다.(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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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가 1 - 미스 상하이의 눈물
왕안이 지음, 유병례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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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변해가는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이 여성은 미스상하이라는 '모던'한 이름을 가지고 모든이들이 '모던'을 숭상하는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다.

 

  20세기 초 '모던'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수많은 동경을 낳았지만 그 자체로 아주 아주 모호한 개념이었다. 그것은 개념이 아니라 다만 모든것이 변화하고 있다라는 사태로 존재했다. 이 소설에는 변화는 공간에 대한 묘사로 잘 드러나 있다. 골목길과 아파트 앨리스-

 

  우선 소설의 초입에는 상하이의 골목길에 대한 묘사가 펼쳐진다. 강 줄기처럼 나무 뿌리처럼 온 상하이를 감싸고 있는 골목, 그 곳은 이야기를 품고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골목들은 사람들이 그렇듯 서로서로 그물처럼 얽혀있다. 하지만 이 묘사에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다. 그것은 지향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이제 골목 밖의 삶을 알게된다. 그리고 골목을 벗어나길 욕망한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아파트 앨리스가 서있다. 모든 것을 내려다 볼만큼 높고 다르고 화려한 앨리스, 사람들은 그곳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니었다.


  앨리스에는 그들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 깃들어 있는데 그 즐거움은 모두가 고통을 먹고 자란다. ... 앨리스와 같은 이런 아파트는 사실 이러한 마음의 무덤과 같은 곳이며, 그들은 그것을 가둬놓고 홀로 누린다. 그것들은 자유로움으로부터 왔지만 이곳은 오히려 자유의 종착역이다. (1권 p.178)

 

   결국 삶을 팔아 얻고자 한 행복은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던'의 욕망을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아닐까? 아니, 그것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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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샹즈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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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으로 가득차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삶을 대하던 젊은 상자는 사회의 부조리를 만나며 점점 타락하게 된다. 힘들게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에게 시련은 반복된다. 삶이 원래 부조리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 삶의 부조리는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확대되어 나타난다. 사람들은 봉건과 야만을 규정하며 진보와 문화를 외치지만 삶은 도리어 점점 더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인간들은 자신을 야수 가운데서 끌어올렸지만, 지금은 또 인간이 자신의 동류들을 야수 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상자는 문화의 성 북평에서 계속 살아가면서도 점점 짐승으로 변해가고 말았다. 결코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부조리를 반복적으로 만나는 개인은 꿈과 희망에서 바람을 빼 자신만을 위하여 살기를 다짐한다. 자신만의 인력거를 가지고, 자신의 가정을 가지고 싶어 한다. 담장을 치고 그 담장 안의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을 만나 그 노력이 얼마나 힘이 없고 초라한 것인지를 알게 되면 오히려 삶을 내던지게 된다.

예의 바르고 악착같이 노력하고 꿈에 부풀기도 했으며 이기적이며, 건장하고, 위대한 우리의 상자는 자신이 얼마나 많이 남의 장례대열에 섰는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에 그 자신을 묻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타락하고 제 잇속만 차리는 불행한 자신을. 사회의 병폐가 빚어놓은 결과이고 개인주의의 말로가 만들어 낸 영혼.

  그리고 상자의 몰락은 다만 100여 년 전 북경에서 있었던 비극이 아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이기(利己)로 넘치는 만큼 개인의 불안과 절망도 팽배해 있다. 이 불안 속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만의 인력거를 가지려 노력하지만 머리위로 비는 계속 떨어진다. 그리고 잠시 손을 놓으면 밀려나 버린다. 절망이 반복되면 그 처절하던 삶의 의지는 어느 순간 허무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기와 파멸은 개인주의의 양극단인 것이다. 결국 열심히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오늘날에는 반복되지 않는 과거의 신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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