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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ㅣ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7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5년 4월
평점 :
불행(!)하게도 나의 전공은 경제학이다. 더 애석한 것은 누군가 나에게 경제학을 전공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경제학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때는 세상을 지배하는 학문의 메커니즘을 알고 싶었다. 순진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그랬다.
어쨌든 그런 천진무구한 나에게 찾아온 불행은 경제학개론 첫 수업 시간에 시작되었다. 교제는 저 유명한 멘큐의 경제학이었는데 앞부분의 경제학의 10대 원칙이 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성경책의 십계명 같은 것이었다.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계명. 나는 믿음이 부족하여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혀끗을 쯧쯧 차며 외우긴 했는데 열 가지 계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였다.
계명은 내가 궁금해 하던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경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정의하고 있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의심하는 자에게는 시련이 뒤 따랐다.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학과 멀어졌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경제학 논쟁을 읽어보았으나 어느 쪽도 본질적 차원의경제학의 기반-인간은 이성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흔들지는 않았다. 그냥 무엇을 합리적, 경제적으로 보느냐 하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오히려 내가 그토록 의심했던 인간의 본성에 관한 또 다른 생각은 생물학이나 인류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나키스트 생물학자 프로포트킨의 인간론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이며 경쟁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먹고 먹히는 야생의 자연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간의 투쟁을 통해 살아남고, 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그러나 프로포트킨이 수많은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 사이에는 상호투쟁의 법칙 외에도 상호부조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종의 보존과 진화를 위해서는 상호부조의 법칙이 더 유리하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도움을 주며 연대하는 동물들이 더 잘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인류가 이뤄온 진보는 개체 간의 투쟁이 아니라 연대와 협동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프로포트킨의 결론이다.
결국 이제껏 경제학이 상정해 온 인간은 nobody에 불과하다. 가장 실제적인 학문이라는 경제학이 이런 환상을 쫓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제 우리는 유령의 마법에서 벗어나 피와 살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실제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