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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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다. 그 순간 재앙이 시작되었다. 섭씨 3,000도를 넘는 고열과 후폭풍은 히로시마를 폐허로 만들었고, 그 후 5년 동안 인구 35만 명 중 약 20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은 빠르게 잊혀졌다. 일본 정부는 전후 재건과 부흥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히로시마는 점점 외로운 섬이 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 그런 히로시마에 걸어 들어간 사람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라 불리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 그는 원수폭금지대세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963년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찾는다.

히로시마를 찾은 겐자부로는 비장했다. 처음의 그는 마치 원폭이라는 거대한 절망 앞에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할 마음으로 절망의 땅을 찾는 순례자 같았다. 그러나 원폭기념관, 원폭병원, 평화공원 등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은 비참한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다운 위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피폭된 몸으로 히로시마에 남아 몸 안팎의 원폭과 싸우고 있는 원폭병원 시게토 원장, 기형아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한 여성, 죽어 가는 사람들이 모인 원폭병원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발견하고 병원 관리자라는 역할을 떠맡은 사다오 씨… …. 겐자부로는 이들을 가리켜 ‘히로시마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토록 성실하게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가며 겐자부로는 어쩌면 절망은 희망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인간은 위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위엄 앞에 감탄하는 동시에 히로시마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히로시마에서 위엄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숭고한 것은 비참함을 배경으로 할 때 빛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무섭고 끔찍한 체험을 겪고, 살아남은 자로서 가장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히로시마적 인간들은 아마도 본질적으로 샴쌍둥이처럼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인간적 비참함의 극한을 폭로함으로써 핵무기 시대에 인간적 희망의 확실한 전망을 세우려는 표리일체의 시도에 기대를 걸어본다.

 

“가장 뼈아프게 노출된 전 인류의 상처” 히로시마는 말한다. 비극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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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Work -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 박준호 옮김 / 마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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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하나의 피라미드에서 시작된다. 그 피라미드는 아홉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게 보면 자본가, 착취당하는 자, 배제된 자로 나눌 수 있다. 역시나(!) 자본가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누르는 ‘갑’이다.

그 아래에 있는 착취당하는 자와 배제된 자들은 조금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이 피라미드가 분리와 차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소외되지 않으면 누군가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이 피라미드,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자본주의는 부를 만들어 내지만, 더 많은 가난도 만들어 낸다. 한 사람이 축적할 수 있는 부에는 한계가 없지만, 한 사람이 착취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몇몇 억만장자를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져야 하는 이유다.(198~170쪽)

 

그러니까 출근길에 만원의 지하철에서 자기 계발을 위한 책을 읽더라도, 야근이나 잔업을 하며 열심히 일하더라도, 적은 월급을 아끼고 아껴 빠듯하게 살아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뭔가 이루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가난해지도록 피라미드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자기가 덜 계발되어서가 아니라 이 피라미드 자체가 사람들이 좀처럼 움직일 수 없게 짜여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출근길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흐린 눈을 보거나 월급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거나 야근 후 집으로 들어가서 내일 출근을 위해 쫓기듯 잠을 청할 때 ‘아, 내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린다. 그런데 맙소사, 그 생각이 옳았다.

그것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짜 그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얻은 성찰을 풀어낸 책이니까.

이쯤에서 멘붕이 온다. ‘내가 이제껏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헛수고란 말인가’.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고 ‘아, 그래서 어쩌라고! 어쩔 수 없잖아’ 하는 반발심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의 해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그래, 내가 이렇게 살 이유가 없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라. 그러고는? 책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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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7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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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나의 전공은 경제학이다. 더 애석한 것은 누군가 나에게 경제학을 전공하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경제학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때는 세상을 지배하는 학문의 메커니즘을 알고 싶었다. 순진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그랬다.

어쨌든 그런 천진무구한 나에게 찾아온 불행은 경제학개론 첫 수업 시간에 시작되었다. 교제는 저 유명한 멘큐의 경제학이었는데 앞부분의 경제학의 10대 원칙이 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성경책의 십계명 같은 것이었다.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계명. 나는 믿음이 부족하여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혀끗을 쯧쯧 차며 외우긴 했는데 열 가지 계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였다.

계명은 내가 궁금해 하던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경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정의하고 있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의심하는 자에게는 시련이 뒤 따랐다.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학과 멀어졌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경제학 논쟁을 읽어보았으나 어느 쪽도 본질적 차원의경제학의 기반-인간은 이성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흔들지는 않았다. 그냥 무엇을 합리적, 경제적으로 보느냐 하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오히려 내가 그토록 의심했던 인간의 본성에 관한 또 다른 생각은 생물학이나 인류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나키스트 생물학자 프로포트킨의 인간론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이며 경쟁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먹고 먹히는 야생의 자연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간의 투쟁을 통해 살아남고, 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그러나 프로포트킨이 수많은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 그들 사이에는 상호투쟁의 법칙 외에도 상호부조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리고 종의 보존과 진화를 위해서는 상호부조의 법칙이 더 유리하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도움을 주며 연대하는 동물들이 더 잘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인류가 이뤄온 진보는 개체 간의 투쟁이 아니라 연대와 협동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프로포트킨의 결론이다.

결국 이제껏 경제학이 상정해 온 인간은 nobody에 불과하다. 가장 실제적인 학문이라는 경제학이 이런 환상을 쫓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이제 우리는 유령의 마법에서 벗어나 피와 살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실제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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