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일러스트와 헤세의 그림이 수록된 호화양장
헤르만 헤세 지음, 한수운 옮김 / 아이템비즈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1학년 처음 데미안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제겐 그렇게까지 좋다,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싱클레어가 저와의 어딘가를 닮아서일 수도 혹은 그때 작은 에피소드가 뇌리에 박혀서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구절, <알은 세계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태어내려는 자,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쩌면 그렇게 잊혀지지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명한 구절이라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때의 저는 아주 잠깐 데미안과 만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주 잠시요.

그리고, 다시 읽은 데미안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때는 제게 데미안의 존재가 컸다면 이번에도 다시 싱클레어가 됐습니다. 그때처럼 말입니다. 그때,

싱클레어였던 저는, 데미안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내면의 또 다른 자아를 만난 것이었는데 왜였을까 싶은 것은 그때, 작가 헤세의 글이 유난히도 "현학적"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데미안을 읽지 않으셨다면, 스포입니다.


그곳에는 두 개의 세계가 뒤섞였다. 그 두 극단에서 낮과 밤이 찾아왔다. (본문 11p)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이 두 개의 세계가 서로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본문 13p)


그래서, 나, 싱클레어는 계단 위의 층계참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위의 세계가 따뜻하고 양지의 세계, 내가 속했다고 생각한 "알"의 세계라면 그래서, 저 계단의 세계가 궁금했던 것이다. 낮의 세계가 아닌 바로 "밤의 세계"가 그리고 그곳의 프란츠 크레머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왜 밤으로 내려갔던가, 싶은 찰나 데미안을 만났다. 데미안. 고작 한살이 많을 뿐인데 아주 어른스럽고 그들과는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를.

그가 해준 이야기, 카인의 표식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싱클레어가 아닌 나는, 그가 해준 이야기보다, 어째서 하나님은 카인을 살려주셨을까?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카인이 죽었단 소리가 없다. 아담이 이브가, 그리고 그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긴 생을 혹은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카인에 대한 생사의 여부는 더 이상 나와있지 않아, 데미안에게 묻고 싶다. 그의 답변이 궁금해졌다. 그는 과연 내게 어떤 대답을 할까?

두계의 세계,에서 시작해 어느새 그는 카인의 세계 아니, 데미안이 말한 카인의 표식이 무언가를 알 것 같은 그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카인의 세계,에 한 발짝 들어놓기 위해서라는 핑계인지도 모르지만 방황을 하기 시작해. 모범생에서의 경로를 이탈해, 다른 길을 가본 것이다.


그것이,

전적으로 데미안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나의 내면의 저쪽에 있는 어른이었고 혹은, 어른 내가 만나고 있는 알의 세계에서 태어나려 투쟁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자아, 였기에. 그래서 내가 그린 그림은 나이면서 내가 아니고 데미안이면서 또 아니며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또 남자이며 여자인 모든 것의 양면성을 가진 그것, 내 집의 문장(文裝)의 매_ 인 새가 되기 위한 날갯짓을 하려는 내 저 깊숙한 곳의 또 다른 세계, 깨어나야 할 세계의 지점에 서 있었다.



층계참에서, 어두운 곳이 두렵기만 했을까 싶으면 또 아니었다. 아마도, 의외로 따뜻한 곳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겨울의 지하는 햇볕은 들어오지 않으나 그 나름대로 온기가 기묘하게 맴돌고 있었으니까. 설령 그곳이 "금지된 세계" 일지라도. 그리고 만난 피스로티우스. 그 이름이 묘하게 파우스트를 연상케 했다. 그는, 어쩌면 데미안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리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모습도 투영돼 있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혹은 그다지 오래지 않은 시간 후, 다시 만난 데미안이었다. 바로, 그가 보내온 답장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를 받은 뒤, 한동안 만나지도 편지를 하지도 않았던 그의 벗, 데미안을. 그들의 공통분모 혹은 그가 싱클레어를 또다른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인도할 때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그들 사이의 금기가 돼 있었다. 바로 유일한 어둠이라 여겼던 프란츠 크레머에 대해서.

아프락사스.

신이면서 악이면, 명암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의 이름, 그리하여 알이 깨어지고 난 후, 날아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니, 아프락사스 후엔 또 무엇이 기다릴까? 알은 깨져야만 한다. 그것은 다른 세계 즉,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나와의 조우, 그것이 데미안이었고, 데미안은 나며, 내가 싫어하는 그 프란츠 크레머 역시 어둠의 세계의 나일 수밖에 없다. 아니, 내가 싫어하는 나의 비열한 모습이 그리 그려졌고 데미안은 내가 원하는 이상이자, 내 자아였다. 나는, 그렇다면 싱클레어인가 아니면 데미안인가?



그 피비린내 나는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하여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야 한다. (본문 246p)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문 250p)

거울,

내가 나를 보면서도 내가 또 아닌 것. 내 오른손은 그의 왼손이라는 것.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다르지만 나인 것을. 그래서, 데미안은 내 친구이자 나인 것이다. 나의 내면의 두려움이 불러온 내면이 있다면 그는 나를 인도해주기 위한 또 하나의 알이란 세계에서 깨어나 나온 세상에서 다시 또 다른 세상의 통로로 안전하게도 혹은 위험하게도 나를 불러내는 또 저 깊숙한 내면의 나, 그리고 어느새 그는 파티스로티우스의 말을 빌려 혹은, 에바의 말을 빌려 내게 말한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을 하고, 내가 내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어 표현이나 익숙하지만 딱히 깊이 생각지 않은 그 "말의 어원"에 대해서 말입니다.말이란 것은, 참으로 묘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면서도 정작 왜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의 의문이 어쩌다 들 뿐, 지나가죠. 말이란, 천 냥 빚도 갚지만 만 냥의 빚도 지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어원을 알면 더더욱 풍성한 어휘를...보단, 사실 "얇고 넓게" 알고 싶은 지식의 사전으로 열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가 "신화"(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바로 "성서"로 말입니다. 그렇다면,먼저, 신화의 세계에선 어떤 재미 있는 말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마약인 헤로인. 그 유래가 바로 제우스의 아내이자, 여신들 중 최고의 여신인 헤라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리고 아프로디테로부터 나온 단어가 최음제, 성적 흥분, 성욕 등이라고 하더군요. 어째서, 왜, 여신들에게서만 이러나 싶으면 에로스에게서도 그 성적인 것은 파생돼 있더군요. 잠의 신인 히프노스에게서 수면제, 몽유병(sonmambulism) 등 "잠"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의 아들인 모르페우스는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듣자마자 알겠더군요 모르핀. 이를테면 이 부자는 몽롱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네 모자가 성적인 것이라면 말이지요. 그렇게,신화 편에서는 꽤나 많은 소득도 있었지만 뭔가 응? 하는 파트도 꽤 있었습니다. <똑같은 운명을 타고난 탄탈로스의 딸>(108p) 편은 우리가 잘 아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등장합니다. 탄탈로스의 딸인 니오베는 제우스의 손녀죠. 다복하기도 하여 7명의 아들과 딸이 모두 잘나선 레토(다산의 신이기도 하죠)에게 오만해져 결국 레토가 그의 자식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그 유명한 신화입니다. 그런데 뭐가 같단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되려 그녀의 자녀들의 운명이 그 두 태양과 달의 신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똑같은 운명을 타고난 니오베의 딸>이 맞지 않을까? 갸우뚱거렸습니다.


초반의 경우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라노스- 크로노스의 이 두 부자는 어떤가요?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식을 죽이자, 자식은 아버지를 죽이고 크로노스는 잡아먹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후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까? 싶더군요. 거기까진 너무 나간 느낌이라도 그런 설명 없이, 그저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잡아먹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했던 그 행위 때문인 연결고리, 그리고 크로노스가 "시간의 신과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단정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또 그의 행위에 "모든 것을 말끔히 없애버린" 것 때문에 그로 하여금, 연표, 연대기, 스톱워치 등의 단어가 파생됐다면 과연 "전혀 관계없다"라고 단정 지어야 했을까,하는 부분은 아쉬웠습니다."전혀 상관은 없으나 한편, 사람들은.."이라고 했더라면,하는 아쉬움들이. 하지만, 많은 부분 꽤 재미있었습니다.

하데스를 아시지요? 조카와(...) 결혼한 그 신의 구역 중, 위의 크로노스가 통치하는 곳, 지옥 아니, 지하의 그곳에 낙원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시움" _ 바로, 천국과 동의어로도 쓰인다고 하니, 참 신기한 노릇입니다. 지하의 세계에 있는 낙원, 그 엘리시움에서 파생된 것이 바로 지금, 프랑스의 샹젤리제와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이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오호,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 같습니다.신화에선 의외로 꽤 많이 나오고 있었으나.. 제 습자지 지식에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신화 그 자체로도 괜찮았습니다. 그렇다면, 성서편은 어떨까요






성서 쪽은 신화와 마찬가지지만, 우선 그 배경 즉, 성서의 보급화에 대한 것부터 설명하셨는데 의외로 제가 알고 있더군요 배경지식이 없이 가도 좋지만, 그 설명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또 좀 길면서 성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인간의 사과, 네 그렇습니다. 사실 선악과가 "금단의 과실"일뿐이지, 사과란 것은 어디에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다만,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언급돼 지금은 그 사과가 금단의 열매로 자리 굳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4가지 사과는 위의 첫 번째 사과 아담과 이브의 사과 2. 파리스의 사과(분란의 사과) 3. 빌헬름 텔의 사과 4. 뉴턴의 사과 이렇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에 더하여 엘런 튜링과 애플사의 사과도 언젠가는 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계를 바꾼 사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성서 쪽은 굳이 성서가 아니라도인 경우가 꽤 많았고, 어쨌든 알고 있어선지 이게 굳?싶은 경우와, 신 포도에 대한 것은 생뚱맞은 느낌도 있었습니다. 우화에 나오기까지의 연결고리 등이 없어 보였으니까요. 그리고 신자라서 찾은 것은, "좋은 씨앗"에 대한 예시였는데(256p) 이것은 세상적으로 "인품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살아남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다 인품이 좋은 것은 아니란 것이죠 성서는 성서의 의미대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즉, 직선적이죠 "믿음이 좋은 사람"을 뜻합니다.


호산나가 실상은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에서 지금 우리는 그 호산나를 "찬양하다, 찬미하다"라고 쓰고 있다,라는 그 연결고리는 매끈하더라고요. 그리고, 오 이런 게 있었구나, 했던 것은 바로 "라자루스 신드롬" 이었습니다. 우리에겐 "나사로"로 많이 알려져 있는 라자로는 "하나님에게 도움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를 살려내신 것이 첫 번째라면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멈춘 사망선고가 내려진 환자에게서 맥박과 혈압이 측정되는 경우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도 포함해서 말이죠. 또한 마녀사냥이 과연 약한 사람들에게만 존재했을까 하면, 아니었습니다. 바로 666이 그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악용한 예입니다. 처음이 네로 황제였으며, 마호메트, 그리고 종교개혁자 루터, 그리고 히틀러, 그리고 지금은 G-7과 EC를 666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은 그 시대에 따라 필요한 진짜 악이 아니라, 어째선지 성경을 이용하는 느낌이라 묘한 씁쓸함도 있었습니다






책은, 신과 인간 즉, 신화에서 성서_가 신이라면 거기에서 파생된 우리들의 언어, 바벨탑에서 무너진 그 언어의 어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이 책은 신화 편에서는 조금 제가 습자지여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앞뒤의 여러 명의 신들이 나오는데 좀 더 유기적으로 엮었더라면 정신이 없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재미있는 구성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서의 경우는 단편적인 것들과 어찌 보면 그다지 상관없는 것들도 있었지만, 최대한 성서의 말씀 중 좋은 말과 우리가 자주 쓰는 관용구를 쓰려고 한 것 같으나 거기서 "유래했다"라고 보기엔 조금의 무리수가 있는 듯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언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란 것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어원을 알아가고 그것들에서 파생된 언어, 관용구를 알아가는 것은 언어의 유희까진 아니었지만 흥미롭기는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와 신화로 읽는 심리학 - 우리 삶을 읽는 궁극의 메타포
김상준 지음 / 보아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의 인물들은 결코 신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드라마"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캐릭터들이 낯익음은 어쩌면 예전의 그 신화 속 어느 장면 혹은 인물을 연상케 하기 때문인지도,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그들의 공통된 심리는 무엇일까? 그 낯익음의 이야기는 어째서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인간을 나타내는 단어는 많지만 그중 "인격"을 나타내는 단어로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원은 뜻밖에 "가면"입니다. 그리고 보면, 배우들은 하나의 인생을 살지만은 않는구나 싶으니 그때마다 전작들과는 다른 가면을 쓰는 것은 당연할 것 같지만 그것은 또,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을요.


책은, 그래서 "페르소나, 그 가면이 나타내는 자아의 또 다른 이면"에 대해서 나타내고 바로 그것은 영화 "마스크"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페르소나는 그저 가면이 아니라, 융에 따르면 "남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감추고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페르소나다."(본문 16p) 이기도 하며 영상물 속의 연출가들이 자주 쓰는 배우들을 또 페르소나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그 배우가 바로 감독을 대신해서 극중 혹은 영화 속에서 그들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해 주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가면이란 것이죠.

- 내 진짜 모습을 감춘 가면, 그리고 배우란 가면을 통해서 하는 말들, 페르소나.

진심을 말하는 순간, 잃어버릴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끔은 진짜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도 합니다




그것들을 책에선, "뮤리엘의 웨딩"과 "폴 몬티" 을 통해서 여성에게 구두를, 남성에겐 "폴 몬티" 옷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것들은 맞지 않는 구두, 그리고 남들을 의식하는 옷차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식주 중 "의"로서 또 살아가기 위해서 써야 하는 페르소나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흔한 이름 "용기"였습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상관이지? 싶으면 아니더군요. 신화의 가장 용감한 헤라클레스가 그렇게 용감하면서도 난폭하고 남성적이었지만, 그의 옷을 빼앗고 다른 옷을 입혔을 땐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또 다른 사람처럼 됐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 의식"으로 고스란히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닉슨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미국의 대통령,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역. 그 뒤에 숨겨진 것은 "콤플렉스" 인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콤플렉스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뒤에 나오는 신화 "이카루스"의 추락과는 조금 의아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카루스가 열등감이란 콤플렉스가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었죠. 물론, 그래서 그들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 추락해 버릴 수밖에 없었단 것은 동의하지만 조금..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책의 많은 부분, 고개를 끄떡이면서 읽었지만, 어떤 부분은 조금 갸우뚱하게도 했습니다. 분명, 동일한 것은 있지만예를 들면 "더 헌트"의 경우, 아르테미스에 의해 죽은 악타이온 보다 되려 "카산드라"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카산드라는 아폴론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그녀가 하는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은 것이죠. "더 헌트"의 경우는 좀 다를지 몰라도 닉슨과 이카루스가 "추락"이란 점에서 동일하다면 그 선상에 놓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의 마녀사냥보다는 솔직히,


이것은 여전히 루카스가 성추행범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본문 177p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악타이온의 경우처럼 "희생양"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카산드라의 예언을 끝끝내 믿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예언보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그 습성이 아니었을까, 그렇게고 책은 연관이 돼 있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편견보단, 누군가를 "제물"로 즉, 내가 그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그 점에서는 또 악타이온의 "억울한 제물"과도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답답함과 억울함은 물론, 그리고 끝까지 믿어주지 아니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일까? 했는데 이유는 나만 아니면 된다, 인 것 같아서 참 씁쓸한 영화였습니다.




신화에서 가장 완벽한 신 중 한 명은 바로 그 유명한 아폴론입니다.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따라주지 않았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늘 비극으로 맞이하곤 했는데, 그중 "히아킨토스의 죽음"은 어쩌면 가장 슬퍼선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그림자에 대한 매혹"으로 설명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저는 밝음보단 그 내면의 그림자를 좋아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포르노그래피의 경우는 지금 우리가 지금 많이 보는 예능의 관음(..)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관음과 페티시즘.. 이런 것들보다, 절 놀라게 한 것은


(...) 그래서 페티시란 여성의 남근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즉,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어머니)이 남근이 있다면, 자신도 거세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티시 즉, 여성의 남근을 성적 대상으로 계속 삼게 되어(...)

본문 224p


무언가에 집착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저렇게까지 무의식 즉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성적인 세계까지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본문은, 알에서 깨어나 나 자신 자아를 찾는 "자아 찾기"라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분명, 제목은 "영화와 신화로" 읽는 심리학인데, 신화의 그림은 계속 나오지만 영화는 한 장면도 삽입돼 있지 않아선 그 점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왜냐면, 영상물의 경우 바로 "한 씬"이 딱 기억에 들어와 이 영화를 몰라도, 그 장면으로 각인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되려 신화와 영화의 자리가 뒤바뀐 느낌이었습니다. 신화와 영화 둘 다 넣기가 그랬더라면, 한 챕터씩 바꾸어선 영화, 신화의 이미지를 삽입했더라면 싶어 아쉬웠습니다.

책은 개인적으로

호기심 어리게도 읽히기도 하고 또 새롭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좀 아쉬운 면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아마도,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어려울 것 같아서 쉽게 설명하려니 그런 것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를 좀 보신 분들이라면 또 다르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안 본 영화도 많았기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평범한 일상의 "하루"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자연"이 가져다주는 불행으로, 그날 세 여인의 삶을 통째로 혹은 아주 살짝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해일을 동반한 지진은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를 챙기기조차 버거워집니다. 그래서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던 그녀들이 만났습니다.

50대의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후쿠코, 싱글맘인 40대의 나기사와 그의 아들 마사야 그리고 30대인 아기 엄마 도우노가 그들입니다. 갱년기라서가 아니라 나이에 쫓겨 한 결혼은 실패지만 여자에게 붙는 그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두려운 후쿠코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나날이었고,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한 나기사는 친정어머니와 가게를 운영하며 아들 마사야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가게라지만 낮엔 카페이고 밤엔 술집인 가게를요. 그리고 합가해 살고 있는 도우노는 까다롭고 잘난 아들에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시아버지 때문에, 육아 때문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자신들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해야 하는 그 상황 속, 대지진은 일어납니다. 그저 늘 있는 작은 재해가 아니라, 아주 커다란 재해가 그녀들에게 닥친 것입니다. 자연 앞에서 초라해지는 인간처럼, 그녀들도 그렇게 자신들과의 삶과 마주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삶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또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대피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초라해지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마음마저 가난해진 것일까. 본문 150p


"음, 그러니까 부녀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72시간 내에 이 약을 복용하면 임신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

"그야 집은 떠내려갔지, 일자리는 사라졌지, 남자들도 속이 답답할 테니, 그런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지요. 그러니까 여성 여러분, 눈감아 주세요. 남자들이란 그런 동물이니까. " 본문 207~208p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 약해서 가장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사람들 중, 바로 아이들과 여자들을 향한 폭언과 다름없는 말입니다. 아이들은 이 언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중에 알게 될 때, 끔찍해질 것일 테고 여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성폭행 정도는 감수하라는 그 이기적인 말이 더욱 떨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도 있었습니다. 바로, 도우노에게 말입니다. 보호받지 못한 약자들이 그 자리에서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씩은 특이할 수 있을지언정, 평범한 여자들이었고 일상의 나날들 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부딪힌 것은 그들의 민낯뿐 아니라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에게조차 어느새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왔던 일들입니다. 왜 여자들의 노동은 가치를 남자들과 동등하게 했을 때 인정받지 못하는가? 그리고, 어째서 모든 경제적인 것이 소위 세대주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에겐 전혀 선택권이 없이 남자들 _ 그것도 괜찮은 사람들이 아닌_에게로만 권리가 주어지는가? 그리고 왜, 어째서...의 물음표는 계속 그녀들을 따라다닙니다.

만약,

이 재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전에 그 많은 멀쩡한 남자들을 놔두고 자신들의 선택에 후회만 해야 하는가입니다. 아니오, 아직입니다. 이 재해 덕분에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민 손을 밀지만 않고 그 손을 잡고 같이 갈 때인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은 인생,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고작 초등학생인 나기사의 아들 마시야를 보면서 그런 남자들이 아니라 더욱더 이 약하지만 또 강한 여자들과 함께, 그리고 지킴을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는 훌륭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자들의 인내,라고 말하지만

여자들의 선택, 이기도 했습니다. 예전부터 알았습니다. 여자들에게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 그것만으로 참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일까요? 여자들은 좀 더 손쉬운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를 포기한 대신에 얻어지는 편안함도 분명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기어이 옥죄어 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힘으로 이길 수 없어서 생존코자 했던 선택으로 말입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그리고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시스템의 사회 속에서 더 많은 선택지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내가 아닌 능력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사가 아닌 죽음들,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살임에도 또 자살이 아닌 것만 같은 죽음도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죽음들이 그렇습니다. 분명 그들의 죽음의 "형식"은 자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것이 "죽음"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인지 모를, 그런 이상한 케이스들인 것입니다.


네, 분명 자살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인간이기에 방어기제는 있어서 자신의 심장을 몇 번씩 찌르는 일들이 가능할까요?

- 가능하지 않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스피사들에겐요)



자살인 듯 혹은 자살이 아닌 듯 죽은 이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범죄자"입니다. 그것도 그저 단순한 경범죄나 어쩌다의 우발적인 범행이 아닌, 그야말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아도 마땅하다 생각되는 그런 엽기적인 일들을 벌인 사람입니다. 남들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서 세상에서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었습니다. 분명 사인은 "자살"임에도 석연찮은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죽을 사람이 아닌 것, 그리고 그의 죽음은 마치 그가 행한 사건을 차례로 자신에게 가하면서 죽은 사건 그리고 그걸 알려주는 동영상이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혼란의 가운데 도도 히나코는 자신이 원했던 경찰임에도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진짜 시체로 대면한 미야하라의 해부 사진을 보는 것이 두렵다. 사실은 그런 것에 익숙해져가는 자기 자신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본문 68p, 히나코


분명 익숙해져야 하는 어두움인데, 히나코는 인간성마저 상실할까 봐서 두려운 것입니다. 자신이 들고 다니는 그 고춧가루의 핏빛과 같은 사람들을 보는 일이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건은 미야 하라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엽기적인 행각을 하고 태연히 살아가던 그들이 죽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남긴 동영상은 "타살"이 아님을 알리는 동시에 또한 "자살"도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천벌"을 받은 것처럼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일까요?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아주 작은 단서지만 히나코는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사실, 그 단서들 사이사이에 있는 것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히나코가 들고 다니는 고추가루가 조금만 있어도 재채기가 되는 것처럼 단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건 "의심"인 것입니다. 왜 이들은 이렇게 죽어야 했나? 가 아니라, 이들의 죽음의 공통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그 단서 하나도 조금 갸우뚱하던 히나코에게도 하나의 사건은 그녀가 꼭 밝혀야만 할 경찰로서의 스위치를 on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 책, <on>은

일본에서 이미 2014년도에 <on, 이상범죄수사관 도토 히나코>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됐습니다. 드라마는 어땠는지 지 잘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주인공인 히나코보다는 되려 사신 여사라든가 조연들이 되려 매력이 있었습니다. 암기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 정도, 고춧가루 즉, 재채기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책에서 그것이 잘 녹아내려지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여운 여주인공(?!)이 나온다고 해서, 잔혹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의외로 묘사는 잔혹합니다. 또한 옴니버스인가?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이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그 무엇이 조금 아쉬운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그 증명방식에 있어서도 그것이 오! 하는 것보단 읽어가면서 그렇지 않을까 .. 와 그렇다 해도 가능할 수가 없는데..?의 사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은 때때로 웃으며 그런 짓을 저지른다. 제멋대로 천박하며 가치 없는 욕망을 위해 그런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피해자의 공포와 괴로움을, 피해자 유족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들은 영원히 누군가를 죽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본문 164p

-무섭다고 할까요. 무서운 건, 제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건, 절망해버리는 겁니다. 그곳에는 그저 어둠밖에 없고, 출구도 없거니와 희망도 없어요-
본문 242p

라는 메세지를 던져놓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정말 아닌가요?라고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