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게를 아시지요? 게는, 갑각류입니다. 갑각류들은, 엄청 딱딱한 껍질로서 둘러싸여있답니다. 아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겁니다. 그러나 또 알고 있습니다. 그 딱딱하기만 한 껍질을 벗기도 나면, 그 안에는 껍질 따윈 잊을만큼

여리고 여린 살이 있다는 것을요. 소라게는 그러면 어떨까요..? 소라모양의 단단한 집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숨기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 단단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그 껍데기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믿었을까요.?

 

신이치,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는 각자에게 주어진 아픔을 아무것도 아닌양 마치 게껍데기로 둘러싸고 안으로만 안으로만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그들이 말입니다. 왜냐면, 그들에게 다가온 아픔은 실제로 감당하기가 

벅찼기 때문이지요.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의 죽음이, 그리고 차라리 죽을만큼 미워지는 부모님이 있는 그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 슬픔따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아니,익숙해질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죽어가던 그 모습이

어머니를 잃은 그 슬픔이 아물지가 않지요. 누군가와의 이별 그것도 가족,그것도 바로 내 엄마, 내 아빠와의 이별인 것을요

그런가하면,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뻔 하겠다 싶은 하루야도 있답니다. 왜냐면, 사랑만 받아도 모자랄 시기에 맞으니까요

 

그렇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지, 아픔을 주고, 아이들은 그래서 더더욱 껍질 속으로 숨어가 버립니다.

그 곳은 언제까지나 안전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니, 언제까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이 아픈

아이들은 그 안으로 자꾸 자꾸 움츠려듭니다. 내 안으로, 내 세계로만요. 마치, 소라게가 그렇듯이요.

 


그러나, 아이들은 알아갑니다. 소라게를 통해서 그들만의 놀이터를 통해서 혹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주면서, 그리고 서로의

위안이 되면서 또 한발자국 커갑니다.서로의 껍질 안에서 나와서,그들은 또 서로에게 조금 단단한 내 안의 상처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또 나 아닌 친구들의 상처도 보면서 서로 보듬어가면서 그렇게 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조금은 더 소라껍질안에서 아주 조금 나와 세상을 봅니다. 나만의 세상이 아닌, 남들의 세상을 보는 눈을요

그리고,오늘도 어김없이 또 소라껍질 속으로 여린 그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고 다시 들어갔다가도 또 내 껍질만이 아닌  

어느새 "친구" 란 이름으로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고, 그것이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이 되어가는 이야기, "달과 게" 입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수상경력을 보면, 그는 "제2의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수식어보다는 되려 추리나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보인다. 그런 미치오 슈스케가 추리물이나 미스터리가 아닌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바로 이 작품, "달과 게"로서 말이다. 이 작품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무대도 집과 학교 그리고 그들의 놀이터가 전부 다이다. 어쩌면 잠이 솔솔 올 지도 모를 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지루함은 내게는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초중반을 넘어가자 지루함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서로 아프다. 신이치는 아버지를 암으로 잃어선 게가 싫다. 왜냐면 스펠링이 똑같으니까. 암과 게. 꼭 파고드는 아픔도 똑같을 것 같다. 하루야도 아프다. 학대받고 있으니까. 부잣집 딸인 나루미도 아프다. 왜냐면 엄마를 잃었으니까 그것도, 하필 신이치의 할아버지 때문에, 라고 내내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쿨한척 해도, 그들은 결국 어린 아이들인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렇치가 못하다. 그걸 숨기는 것이 나루미의 말을 빌자면 "어른" 이라고 생각했다고.

 



 

신이치와 하루야, 둘만의 의식에서 그들은 항상 소원을 말했다. 그때마다 신이치의 소원은 이뤄졌다. 왜일까? 사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이치도 하루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모른척 했다. 알면서도 왜냐면, 또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싫으니까,이다

-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를,그 의식에서 신이치는 소원을 말한다.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엄마마저 빼앗기기는 싫으니까. 결국 잃게 될 지도 모르니까, 인 것이다. 오소속 소름끼치는 이 아이의 소원, 이었다.

 
마주 세운 거울에서는 악마가 나온다, 고 했던가..? 신이치는 그 소원을 빌고, 자신을 본다. 괴기한 모습,그건 악마일지도.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어딘가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내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엄마의 애인은 바로 하야루로, 엄마는 나루미이다. 신이치에겐 그때, 그 소원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루미가, 내 친구만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어쩌면 하야루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시킴으로 멀어지게 하려는 그 불순한 의도인 것이다. 마치, 내 엄마는 아빠와 나만의 것이지, 결코 다른 남자와 어울리는 것이 싫다는 그런 의미처럼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독점욕부터 시작해서 그 나이답지만 또 그 나이답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여준다.하야루도,나루미도 그리고 신이치도. 딱딱한 금속과 같은 그 열쇠, 그것은 신이치 자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외면당하는 마음, 그걸 열쇠라는 장치로도 잘 나타내고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외면하고 있었던 신이치였다.

 

그것은 미늘이 달린 낚시바늘을 힘껏 뽑아냈기 때문에 생긴 상처 때문인지도 모른다.뽑기가 무서워서,싫어서 방치해 둔 탓에 더 깊고 깊은 곳으로 박혀들어갔고,결국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 한 제거할 수 없게 된 그 바늘이 만든 아픔인지도 모른다

                                                                                        -358p

 

아마도 어쩌면, 신이치도 하야루도, 그리고 나루미도 또 그렇게 뽑기가 두렵고 무서워 방치해둔 그 상처들, 이 있었다.
다만, 그때 그들은 만났고, 서로에게 달이 되어주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스치듯, 혹은 잡듯 그렇게 또 이 성장기도 지나갈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달처럼 어두웠지만, 달이 있어서 그래도 빛을 봤고, 그때의 손의 따뜻한 체온을 기억한다면, 그들은 또 그 아프고 무섭지만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그 낚시바늘을 힘껏 잡아 당길 것이다.

 

이 복잡미묘한 아이들의 심리를 400여페이지에 이르면서, 줄곧 이끌어온 느낌, 그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나도 내내,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신이치로, 호야루로 그리고 나루미가 돼서 말이다. 달, 그리고 게. 그들이 다시 게처럼 딱딱하게 감싼 소라껍데기 속, 그 여림의 속내를 내비출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서로에게 달이 돼 줬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번역후기에도 있듯이, 후루야의 사투리도 그랬지만 번역 자체가 그다지 좋다, 라는 느낌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딘가 참 일본스럽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다. 소라게를 지지고 노는 것..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 소라게가 자신들이고 그들은 그렇게 소라게에게 상처를 스스로 입히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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