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가슴 설레게 합니다. 이번의 작품이 그랬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그중 그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호러"를 만날 수 있음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펼친 후는 초반 "더러운 아이"에선 같이 그 여주인공처럼,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끈적한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장르가 그런 것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일어났었던 일이니까요.


기묘한 그 느낌은 다음 이야기로도 쭉 이어졌습니다. 이 장르가 호러일까 싶으면 아닌 것 같지만, 또 아니라고 하기엔 기묘함이 있습니다. 그 기묘함이란 것은 호러가 아닌 듯싶은데, 결코 또 아니어선 안 되는 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딕인가 싶으면 그걸 뛰어넘는 잔혹성 혹은, 또는 아이의 다리를 보는 환영인가 싶으면, 그보다는 그녀 스스로의 죄책감으로 얼룩진 것 때문에 확신하는 것들이 실은 환영인 듯 아닌 듯 알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호러의 설렘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습했습니다. 초반, 남미의 호러를 기대하면서 열었던 책장은 처음은 이제껏 만나지 못한 문화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구나, 싶음이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가 마칠 때마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미성년자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겁나기도 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서성이다가 빠져나오는 골목길이 있었다면 부랑자들만이 어슬렁거리는 뒷골목이 기다리고 있어선 빨리 그들이 접근하기 전에 간신히 빠져나오면 또 다른 습한 골목길이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나는 도망치지 못하고 저 골목길들을 다시 뒤돌아 보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 골목길의 어느 한구석, 깔끔한 곳이 없는데 말입니다. 마치, 이 책의 이 부분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찬장 안에는 썩은 고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구더기들이 고기 위를 하얗게 뒤덮은 채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고기인지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중략) 그 고기는 어둠 속에 잠긴 채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고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았다. " 본문 258.259 이웃집 마당 中


그렇게, 뭔가 유쾌치 않은, 그러나 그것이 호러긴 한데,라면서 왜 그렇게 눈을 떼지 않고 들여다보고 있었던 걸까 싶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소설 속에서 나 자신을 혹은 누군가 내가 아는 이들을 보고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 그리고 청소년들과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약자란 것에 있습니다. 이 책 중, 그들 중 정상이 몇이냐 될까 싶으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니, 엄마들은 또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더러운 아이, 검은 물속) 그들이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설령, 그것을 "사회의 공포"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그 많은 야생 곤충들이 사는 길인 줄 알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했습니다.

남자들은 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지만 당연한 일인지도요. "이웃집 마당" 에선,

"미겔이 그녀를 미친 여자 취급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자기 아내가 가엾은 여자아이를 내팽개쳤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와 부러진 발목, 그리고 술 냄새를 풍기며 웃고 떠들었을 아내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본문 255p,

그녀는, 일하고 지쳐 잠시 동안의 망중한을 즐겼다고 그다지 큰 소리로 음악을 틀지도 않았고...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그 결과는 잔인했습니다. 그녀는 직장을 잃었고 아이는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녀가 또렷하게 보았다는 아이의 다리는 그래서 더더욱 "죄책감"이 만들어낸 호러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호러는 아주 슬프지만, 또 섬뜩하게도 다가왔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슥 내놓은 표현은 서늘하기까지 했습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사건은 늘 가난, 그리고 불행한 운명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368p, 검은 물속




이 책의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제가 그 골목길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거기는 늘 가난하거나 그래서 발생하는 사건들 혹은, 평탄치 않은 운명들 혹은 그 모두가 있었기 때문에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꾸 돌아봤던 이유는, 아마도 그 초반 시작한 <더러운 아이>부터 시작한 그 아이들의 가늘고 여린 더러운 발목을 지나칠 수만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것은 생경함이 아니라 아주 익숙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늘 우리가 만나고 있지만 우리는 고개를 기어이 돌려 외면하고 있는 "호러, 공포, 가상의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요. 네, 진짜 공포는 그녀의 말처럼 역사적, 사회적인 오늘날 내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망쳐 나오고 싶었지만, 기어이 끌어당기는 것들은 가장 여린 것들, 가장 약한 것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끝끝내 외면하지만은 못하는 것들은 말입니다.


거의 처음 만나는 남미문학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남미의 호러는 예전, 스페인 호러 단편선으로 한번 접했습니다. 일상에서의 그 평범함 속, 기이함을요. 그래서, 무섭지 않음에 실망했다가 돌아오는 발걸음 그 미묘하게 무거웠던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 소설에서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소설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되려 그 습하면서도 발목을 잡는 기이함 때문에, 어딘가 쉽게 읽히는 "호러"와는 다릅니다. 왜냐면 이건, 생활 속 혹은 평범함 속에서 벌어질 수 있으면서도 그 기묘한 현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는 힘들었고 취향이 맞지 않은 것 아니나 이걸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싶었습니다. 책은, 제 기준에선 상당히 마니악 했습니다. 그만큼 호불호가 너무나 뚜렷할 책이기도 하고요. 그녀, 마리아나 엔리케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공포, 호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티븐 킹을 언급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공포는 어디에서 오느냐고요.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