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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일은 하룻밤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은 단순한 오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세상에 오해는 쉽게 쌓이고 풀리기는 아주 어렵게도 풀리고 간혹,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서커스 단"이라는 특수한 배경이 불러일으킨 것인지 혹은, 그것을 전달한 자가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들킨 것이 잘못인지 그 어느 것 하나 쉽사리 틀렸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이 아니라 인간과 뱀파이어라 불리는 흡혈귀 사이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그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몰라도,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의 일이지도 모르겠지만, 재정적, 인간적인 대립과 갈등 속에서 갈라진 틈 사이, 그래서 함께 하지 못하는 그날 처음 보는 괴물을 보고,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괴물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몰래 "서커스 단"으로 위장한 특수부대가 그들을 소탕하려 한다는 정보 때문에 그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게다가,"란도" 라는 이름을 쉽게 발음하기 위해 부른 랜디, 란 이름은 하필 흡혈귀를 잡는 그 컨소시엄이란 단체의 캡틴인 랜돌프로 오해한 것으로 출발합니다.
서커스가 주는 것은, 손기술로 트릭이 비슷한 마술은 아닙니다. 그들이 직접 갈고닦은 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 위험천만의 일이기 때문에 서커스는 그렇게도 화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그날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리하여 서커스를 한 번 본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것, 은 어쩌면 "화려함" 안에 숨어있는 그 무언지 모를 그것,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그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 조금은 다른 "마술"을 하고자 들어온 이가 있습니다. 동양인 란도. _ 서커스 단은 처음은, 그를 거부합니다. 마술은, "트릭" 즉, 눈속임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 명이 그런 트릭을 쓴다면, 모두를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또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길 그 무엇, 마술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3년 전 들어온 서커스 단은 그동안 와해되고, 재정적인 파탄을 겪으면서 단원들끼리의 불협화음과 결국, 남기로 한 자와 떠나기로 한 자, 그런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날 발견된 시신 한 구. 인간이 한 짓이 아닌 것만 같은 그 시신의 의문은 곧 풀리게 됩니다. 그들 앞에 왜, 괴물이 나타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그러니까 서커스 단이 표적임은 맞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게임으로 치면 배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게임에서 그저 "game over"의 자막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목숨과 목숨과의 대결입니다. 그것도 상대방의 능력치는 알 수도 없고, 죽었다 싶은 순간 다시 살아나 뒤에서 언제 내 목을 조일 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도대체 이유조차 모르고 그들은 도망치고, 내 동료와 함께 싸워야 하는 것인지도요. 이야기는, 그렇게 핏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서커스에서 익힌 그 기술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운과 함께, 생에 대한 집착,이죠. 늘 죽고 싶다고 하지만 실상 그 말은 살고 싶다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인크레더블 서커스 단은 모든 문제를 뒤로 한 채, 생존 그 자체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마치, 그들이 서커스의 기술을 관중에게 선보일 때, 실수보다 오늘의 배틀을 무사히 치뤄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한 마음으로, 아무도 도와주지 못할 상황까지 대비해야 하니까요.

고바야시 야스미는 잔혹합니다. 제 경우는, 초반 이 핏빛 곡예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이제껏 그의 작품에서 만난, 잔혹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 속, 진짜 툭, 하고 던지듯 내놓았던 것이기에 저는 좀 더 살짝 즐거웠는지도 모릅니다(응?!) 가끔 우리가 만나는 것들 중,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 별 생각없이 보고 있는데, 옆에서 툭, 하고 튀어나오는 그 무심한 듯한 잔혹성.
그런데, 이번의 고바야시 야스미는, 여기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이 잔혹성이 계속되는 것,_ 즉, 한 템포 쉴 때쯤, 방심하고 있는데 툭, 하고 떨어지게 만들어주는 그 무언가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쉴 새 없이 계속 공격을 합니다. 계속되는 핏빛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끔찍하다기 보다 아, 이번엔 어떤 끔찍함을 보여주려나요? 라는 조금 힘들면서도 살포시 그 흥미가 덜해지면서 심드렁해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또 어떤 이들에겐 쉼없이 쏟아지는 이 공격의 같지 않은 양상에 환호성을 지를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릴 부분인 것이죠. 제 경우,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 그리고 국내에 출간된 최근간인 <분리된 기억의 세계>까지 읽었을 때, 늘 좋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나오기 힘든 잔혹, 이라고나 할까요.

"서커스를 얕잡아보면 언젠가 한 방 먹을 때가 있을 거야." 본문 149p, 쿠와이가 란도에게
이 녀석은 완전히 죽었어.
그렇다면 아직 그 흡혈귀는 살아있어. 본문 297p, 란도
네, 서커스가 아니라 그 무엇이든 방심한 순간, 날아오는 게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고바야시 야스미가 준 선물, 그것 역시 호불호가 될 수도요. 전, 그 파트는 좋았습니다. 의외로요. 그리고, 그 마지막에 남는 씁쓸함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가 묻더군요. 진짜, 그들을, 흡혈귀들을 다 물리쳤다고 생각하나요? 라고 말입니다. 전, 그의 그런 방심한 듯 할 때의 툭, 치고 오는 게 좋았습니다. 연재하던 작품을 가필, 수정해선지 어딘가 개인적으론 산만한 구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과정에서 의외로 많이 지쳐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낭자함이 좀 가득해, 그 부분에서도 대중적이진 않겠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