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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인형이란 단어가 주는 것은, 속박일 수도 있고 생명 없음일 수도 그리고 아름다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은 피그말리온일 수도요.대프니 드 모리에, <레베카>로 유명한 그녀의 단편선을 열어보았습니다. 길지 않은 단편선 13편이 수록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기의 단편은 인형처럼 생명 없음이 아닌, 생생함이었습니다. 특히나 인간의 어두운 심리, 그리고 욕망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13편의 단편은 아주 독립돼 있으면서도 또 유기적으로 묘하게 연상시키고 있었습니다. <주말>을 읽으면 앞의 부분, <성격차이>가 아주 자연스레 생각났습니다.

<인형>은 묻습니다. 광적인 사랑을 넘어 집착도 사랑이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떨까요..? 이것이 사랑일지 혹은 아닐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인물들은 아주 입체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째서 저럴까 싶은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를 비롯, <집고양이>와 <인생 훼방꾼>은 묘하게 아주 닮은 듯 각기의 선택은 또 달랐습니다. 어째서 그는 주교가 될 위치까지이면서도 그렇게 인간사에 관여하는가? 어째서 그는, 그렇게 거짓으로 모녀 사이를 갈라놓는가? 어째서 그녀는 가족을 이간질하고 사람 사이를 그토록 처절히 깨트리면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라는 답에,
왜 나는 이렇게 불운하고 불행한가?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319, 인생 훼방꾼.
그녀는 알지만 또 아무것도 정말 몰랐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가 하면 그저 조금 사람의 심리를 이용했고, 욕망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았던 탓,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세 편의 작품은 그래서 저는 힘들었습니다. 읽어내려가면서 그래서 어려웠기도 했지만, 인물들이 어느 하나 만만치 않았던 이유는 그 안의 나의 모습도 보였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불안해하면서도 덮으려는 여인들 혹은 부정하는 여인들은 그래야만, 그 평화가 유지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가는 아픔은 없다면서, 노래를 부르던 그녀와, 제목이 아이러니했던 <해피밸리>는 이어지는 느낌인 듯 또 아닌 듯 그렇게요. 그 인물들의 심리 속, 내가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녀가 <집고양이>에 그녀 자신의 경험을 썼듯이 말입니다.
슬쩍, 써 내려가는 사이 참 힘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이 단편선을 고작 25살 안팎에 써냈단 사실에 더더욱 놀라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그녀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했을까, 싶어서요. 그것은 예민함을 넘은 통찰력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받았다던 예술적 수혜란 것은 그 이면에 평범치 못한 비상함과 함께 그만큼의 대가를 준 것 같았습니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복잡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친밀한 관계의 부도덕한 이면. -163p, 집고양이 중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을 이 이야기가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병든 마음이 지어낸 히스테리의 산물인지, 우리로선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 26p, 인형 머리말
있을 법하지 않을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콕콕거리는 그 히스테릭함도 분명 있었지만, 이 단편선들은 그래서 힘겨웠습니다. 분명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어려웠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재능이라기보단, 인간의 욕망을 꿰뚫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늘지고 비뚤어지고 그리고, 스스로 모르면서도 아파하는 인물들, 결핍의 인물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