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화학자 2 -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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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과학적이다,라는 말에 누군가는 동의할 수도 있고, 누군가들은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롯이 예술은 예술이라고요. 그러나 많은 예술들이 과학과 밀접합니다. 그중 미술은 조금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려내기 위한 도구와 기법은 과학과 가깝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또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분야들은 서로 아주 등을 맞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요. 그러나, 가끔씩 같은 상황임에도 내가 전공을 했던 것에 혹은 관심이 있던 것을 알면 또 다르게 보이기도요.

그렇게, 제목처럼 화학자가 간 미술관은 어땠을까요? 아주, 특별했을까요? 아니면,일까요?


마사초의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이란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브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바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바로 저런 모습이었고, 여러 비너스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비너스 푸티가>라고 한다고 합니다. 명암 즉, 빛으로 화와의 육체가 훨씬 입체적이며 해부학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후대에 참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의 작품 중 <봄>을 한번 보실까요?


이 그림은 유화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템페라>라는 안료 가루에 계란, 꿀 등을 혼합해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도 좀 놀란 것은 저 정교함이 유화에 못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저러한 시스루를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당연히 유화겠거니, 했는데 인간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면, 그저 붓이 아니라 그걸 표현해 내기 위해서 스스로 고안해 내는 그 과정이 이 "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도 그렇지만, 많은 명화들의 그림 사이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 그림을 더 즐기려면 그 이야기들 특히, 모니터의 왼쪽, 저 세 여신인 "삼미신"에 대해서도 알면 좀 더 재미있달까요? 순결과, 쾌락의 교차의 순간이랄까요..? 그런 것들이 담겨있는 것, 그림에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넣으면서 그 아름다움을 훼손치 않았습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지금도 계속해서 말이 도는 것이지만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쿠르베의 그림 <잠>은 동성애를 다뤘습니다. 두 여자의 얼굴이 똑같습니다. 그들이 다른 건 머리색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저 "상상만으로" 그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모델을 연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걸 읽는데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이 그림 후, 연인인 조안나와 헤어진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 그림뿐 아니라 <세상의 기원>에서 역시 외설 논란이 이는 가운데 모델은 추측건대 그의 연인인 조안나 아닐까 하면서요. 물론, 그 진실은 쿠르베만이 알겠죠. 하지만, 이런 쿠르베가,실연을 당해서 자신의 가슴속에 안고 있던 여인을 지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걸 알아냈을까요..? 바로, X-RAY입니다. 엑스레이는 미술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를테면 위작의 여부를 밝히며 또한 그림의 복원, 그리고 미술사의 오류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데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그림 역시, 그가 실연 후 연인을 지워낸 것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고작 실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예술이라 생각했겠지만 시대상도 있을 텐데 어째서 하필이면 연인을 그런 그림의 모델로 삼았는지를 말이죠. 그리고 지워버린 건,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물론, 이 전에도 계속되어온, 예술과 외설 사이의 것들은 많습니다. 되려, 지금 쿠르베 전보다 그전이 외설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때죠. 시대상으로요.

표절?재창조?



네, 그림은 그 유명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입니다. 이 그림은 여러모로 참 많이 도마 위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외설적이기도 하다, 와 저 뒤의 여인에 대한 것.. 등으로 요 그런데, 이 그림이 <표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라이온디의 <파리스의 심판>과 조르조네의 <전원음악회>의 등장인물과의 구도 때문입니다. 그들이 앞서 그린 것을, 마네가 그 구도를 보고 표절한 것일까라는 것이죠.

끊이지 않는 게 외설과 예술, 그리고 이 표절의 문제인가 봅니다. 재미있는 건, 이 그림 직후 이름마저 비슷한 모네의 <풀밭에서의 점심>을 세잔은 또한 동명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렸단 것입니다. 후대의 화가들이 그의 작품을 오마주, 혹은 제목마저 똑같이 한 걸 보면 마네의 그림이 표절은 아닌 것 같다,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느꼈습니다. 바로, 그 후대의 화가들이 마네를 조롱하는 건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물론, 그 진실은 마네와 그 후대 화가들만이 알겠지만 말입니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와 마네의 <올랭피아>는. 누가 봐도 너무 똑같아서,일까요? 당시 "표절"보다 "외설" 시비에 휘말린 것이 바로 올랭피아이기도 합니다만, 외설스럽다는 못 느끼겠고, 제 경우는 이건 오마주인가? 싶었으나, 왜 또 마네지? 싶긴 했습니다. 어쨌든 지금이나 예전이나, 표절과 외설의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은 예술계 전반에 거쳐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 차이가, 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일까요?


그 외에,

네, 그림의 색에 대한 이야깁니다. 밀레의 만종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렇게 평화로운 그림은 아닙니다. 장례식이라고 하죠. 또한 <이삭 줍는 여인들>의 경우도 고단한 농부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몫하는 것은 그의 그림 색채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색은 "칙칙하다"라고 합니다. 이 당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그림의 색이 제 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죠. 묘한 것은 제겐 그 칙착한 색이, 되려 더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있고요. 그럼에도, 밀레는 누군가에겐 목가적이나 또 누군가에겐 불온한 그림이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미술의 매력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고흐의 그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들입니다 열 점을 책 속에 담아내, 전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색이 변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때, 노란색을 얻기 위해서 크롬 옐로와 황산염의 흰색을 섞어 사용해서라고 추정"(본문 298P) 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현대사회, 산업혁명 등 공기와 닿으면서 더더욱 위험도는 높아진 것입니다. 아직 걱정할 정돈 아니지만,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니 고흐의 그 "노란 해바라기"가 과연 어떻게 변할까, 싶습니다. 아마, 과학은 또 보전할 방법도 찾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화학자가 간 미술관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도 나오지만, 실제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합니다. 저는, 조금 과학적으로 어떻게 이 그림을 풀었을까 싶었으나 그보단 모든 것을 과학으로만 풀지 않고 서서히 미술관을 돌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의 비하인드와 가끔씩의 과학을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하긴, 모든 미술을 과학으로만 풀진 않겠지만 제 기대와는 사뭇 달랐던 느낌이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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