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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샤야 나카가와인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닙니다. 아버지가 손을 놓은 것보다는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별거"를 택하신 부모님이셨습니다. 그런 가족의 형태를 택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어머니는 매번, 진학할 때 한 번씩 물어본 것이 있었으니까요. _ 아버지와 이혼해도 되겠냐_ 고 말입니다. 그때마다 이 별거의 형태로 서류상 어쨌든 부부와 가족을 유지하고 있단 것 자체가 신기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마다 괜찮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한마디씩 했던 것입니다.
- 나는, 이름 바꿔야 하나? 바뀌는 것 싫은데..
그건, 어쩌면 이기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또 아이의 핑계를 댈 수 있었을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주 나를 방치하고 있었냐하면 그 역시도 아닙니다. 이상한 가족의 형태긴 하지만, 분명 아버지로서 진학 때마다 조언을 하고 도움을 준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향 아닌 고향을 떠나, 고교를 왠지 미술을 전공했고 또 도쿄로 가야겠단 생각으로 대학을 진학했습니다. 운이 좋은 건지 떨어진 적도 없었지만요.

이 텅 빈 도시에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늠름하게 빛을 발하는 그 풍정에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휩쓸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친해졌다 배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넘어가는 우리는 그 고독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끌려드는 거라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우리가 그것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본문 5p-6p
그래서 일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이유는요. 도쿄라는 대도시 속의 인간관계와 군상들은 더더욱 손익을 따집니다. 도쿄의 한 가운데 이제는 낡았다 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이 야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저 탑은, 어머니니까요. 마사야가 무엇을 하든 그 결정에 그의 어머니는 한 번도 안된다,보단 "해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쿄로 대학을 와서 다닐 때의 학비도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기뻐해 준 것도 어머니입니다. 마사야가 그렇게 그의 말처럼 "아버지를 닮아" 성실치 못했을 때도 손을 내밀 곳은 또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샤야의 이야기라기보단 마사야가 말하는 "나의 어머니"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특히, 동경으로 온 후의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그 후, 그가 동경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의 관계와 내게 보이는 "나의 어머니"를 이 도쿄타워를 빗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요. 특히, 어머니 에이코를 그녀의 눈으로고 아닌, "나, 마사야"의 눈으로 말합니다. 얼마나 어머니가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가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느낄 수 있게끔 이야기합니다.

페이지 수가 줄어들수록,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의 구석퉁이 한편에는, 마사야의 이야기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누구나 효자고, 속 한번 썩이지 않고 그런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어머니"일 수 있을까 싶으면, 그건 또 아닙니다.
아버지가 처음이라서 그래, 덕선아. - 응답하라 1988,
엄니는 부부간의 문제와 자신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었을까.
기껏해야 약간의 교제 기간과 기껏해야 약간의 결혼생활을 거쳐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보내게 된 데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 본문 77p
엄니와 나, 부모와 자식. 그 관계와 위치도가 조금씩 변해가는 가운데 이따금 엄니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생기곤 했다.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베일을 벗어냈을 때 드러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표정. 그간 엄니 홀로 좌절을 맛보았던 것. 마음속에 걸려있던 것들. 결코 완전하지 않은 한 인간의 탄식을 문득 깨닫는 일이 있었다. 본문 298p
네, 처음부터 아버지고 어머니였던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종종 잊고 있습니다. 왜냐면, 왜냐면, 그냥 내 엄마여야 하기 때문입니다.우리들의 이기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사야가, 그때마다 "이름이 바뀌는 게 싫어"라는 말을 한 그 이기심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저는 처음, 의외로 "엄니"란 단어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은 익숙지 않아선지 초반은 고전을 한 편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사야"의 이야기네, 하고 읽는 어느 순간 계속 어머니(엄니)가 궁금해집니다. 마사야가 조금 소홀해지면 무심한 아들이구나, 하면서도 또 한 번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마사야보다 낫던가? 하면서요. 그래도, 마사야는 어머니를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중 선택권을 준다면 그는 과감히, 어머니를 택한다고까지 했으니까요.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그 모든 시간이 내게 얼마나 컸는지를 알기에 말입니다. 사실 띠지의 <우는 얼굴..> 어쩌고는 뭐 조금 과장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소설의 후반부는 그랬습니다. 신파가 아니라, 쿵, 하고 내려앉는 그 무엇이 자꾸자꾸 서걱서걱, 소리 나게 합니다. 조 밑 어딘가가 뻐근해집니다. 뻔한데, 하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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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작가는 일본의 만능 엔터테이너인 릴리 프랭키, 작중 화자인 이름 나카가와 마사야가 본명입니다. 말하자면,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그래선지 그림도 그렸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해선 도대체 뭘 하는..?의 의문점을 품기도 했었습니다. 네, 만능 엔터테이너이고 얼마 전 기생충이 받은 칸의 황금종려상을 작년에 수상한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 과, 그 전작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등에도 나왔던 그 나카가와 마사야입니다. 이 작품 역시, 오다기리 조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었습니다. 영화는 보진 못했으나 어떤지는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작품도 신파적 요소보단 담백한 쪽이 강했으나 겪어본 이가 맛본 그 "상실감"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습니다.

세상의,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온전히 내 편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이름을 여러분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종종 잊습니다.왜냐면, 늘 곁에 계셔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니, 나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임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지금 아주 잠시만, 그 버팀목의 찬란한 빛이 쓸쓸한 고독 속에서 나오는 것임, 그리고 그 당연한 일들은 실은, 어쩌면 기적의 순간들임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