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헤이세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 아이(愛)는 연인으로부터 그 인사를 들었습니다. 내 기억엔 전혀 없는데, 그렇다고 합니다. - 안락사를 원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죽음의 인사를 했고, 나의 대답은 좋다, 였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그 대답이 아니었더라면 달라졌을까 싶으면 그건 아니었을 겁니다. 죽음을 결정하는 일은 의외로 뱉기는 쉬워도 그 결정은 상당히 신중한 것이니까요.


묻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뭐냐고요. 그가 말합니다. 그, 히토나리(平成)는 헤이세이(平成)의 시대가 끝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안락사를 택하고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다니요, 자신의 시대가 끝나서,라는 허세스러운 말은 조금씩 바뀝니다.


(....) 그래도 인생이라는 마감은 너무 길어, 끝이 언제 찾아올지도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인생의 마감을 결정함으로써 나 자신을 몰아가고 싶어. 그러니까 죽기 전에 지금까지 해 오던 것 중 최고의 최고의 작품을 만들 작정이야. 죽은 자만이 앉을 수 있는 특등석에 어울리는 뭔가를 남겨두지 않으려면, 네가 말하는 대로 내 인생은 자칫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릴 테니까. "

본문 57p, 히토나리




그리고, 히토나리만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키우고 있던 고양이, 미라이에게 머지않아 굿바이의 인사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그것은 일본의 연호인 헤이세이가 곧 바뀌고 그 미래가 퇴장하는 것과 같은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습니다. 왜냐면, 나와 그렇게 긴 시간을 같이 했던 그래서 21세기를 맞이했던, 미라이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랑하는 것들이 떠나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헤이세이에게 굿바이를 고하듯 인사의 차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습니다. 아니,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의 입에서 "결혼"이나 "아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놀라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결혼 제도의 무의미함을 수차 주장했었던 그가 나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있었다니. 그런데 그런 그가 왜 나를 남겨두고 죽으려는 걸까. 본문 152p



히토나리, 그냥 건조하기만 해서가 아니었던 내, 연인이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처럼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을 그에게 담담하게 듣습니다. 물론,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 아프기도 합니다. 누군가처럼 트라우마만이라면 또 괜찮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정도는 감당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그렇게 사람의 마음이 쉽게 포기라는 인사를 그냥 안녕, 이 아니라 영원한 인사 <사요나라>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히토나리를 만났을 때 했던 인사, 안녕하세요. 의 봄의 인사는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히토나리를 떠나보내며 해야하는 인사, 안녕, 의 긴 춥고 추운 인사가 이제 아이에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소설이 그저 담백한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로만 봐야할까요? 소설은 그렇게만은 읽히지 않았습니다. 히토나리, 헤이세이 같은 한자이되, 음독과 훈독으로 읽히고 그 히토나리의 "안락사"를 조금 생각해 보자면, 쇼와시대의 일왕이 타개후 지금의 헤이세이가 시작됐다면, 지금은 어떤가 싶습니다. 분명 일왕은 그냥 양위를 했습니다. 나머지 노후를 평안히 보내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건, 그의 "헤이세이" 즉 平成과도 연관됩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사"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택한 죽음, "안락사" 인가요? 라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헤이세이의 시대는 지난 5월 아니, 4월 30일 굿바이를 했고 지금은 레이와로 바뀌어 가는 사이, 작가는 묻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히토나리의 선택이 그랬으며, 미라이 역시,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또한 작가는 그동안 헤이세이를 이끌어온 일왕인 헤이세이에게 아이(愛)를 통한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라고 해선 어째서 이런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를 소설, 게다가 중간 중간 그렇게까지 작품성이 있단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왜일까, 했는데 아마도 이 "굿바이 헤이세이"는 지금 시점과 맞물려져 있고, 일왕의 물러남과 함께 인간의 죽음의 존엄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어선 그제야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하고 무거워졌습니다만 제가 조금 더 한발짝 나갔나, 싶기도 했습니다.

일왕조차, 존엄사 즉 안락사를 택한 지금 우리에게 죽음의 권리를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의 죽음, 그것이 권리이기만 하냐고 묻고는 싶습니다. 히토나리가 처한 상황이 조금은 특이한 케이스기는 했지만 그렇게 자신은 평안함을 선택했을까요..? 그게 더 괴로움일 수도 있지만, 택할 수 밖엔 없었던 걸까요? 라면서, 그 죽음에 대해서 아이를 통해서 히토나리는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헤이세이에겐 굿바이를 이미 한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잠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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