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노래
미야시타 나츠 지음, 최미혜 옮김 / 이덴슬리벨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 그렇게 막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고교시절은 고작 1막도 되지 않음을 아직은 모르는 기쁨의 노래의 마돈나들입니다. 누군가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꿈을 향해 가면서도 좌절하며 누군가는 또 그 나름대로의 그 무엇에 끌려서 이제 막 사회로 나와서 좀 더 다른 길을 가볼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진학도 하지 않은 채 좋아하는 것에 매달리면서도 생각합니다.


- 나의 껍질은 단단하지도 않지만 잘 깨지지도 않고 깨트리고 싶어,라고 갈망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기쁨의 노래>로 그들이 하나가 되고, 그렇진 않습니다. 그들의 간극이 조금씩 가까워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레이와 치나츠는 어느새 아주 상당히 친해졌습니다. 서로 너무나도 다름에도 그 무엇을 향한 갈망 때문에 말입니다.






여전히 불안한 레이, 좀 더 말하자면 자신이 없는 혹은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는 레이와 그에 반해, 그 자신의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서는 치나츠는 묘하게도 닮아있습니다. 아주 다른 극과 극의 닮음은, 어디선가 느껴집니다. 다르지만, 닮아서_ 그녀들은 자신들의 노래를 아직 찾고 있던 것입니다.


레이가, 치나츠에게 받는 그 에너지는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열정"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열정이란 것이 없었더라면 레이는, 치나츠에게 콤플렉스만을 얻을 뿐, 받지 못했을 겁니다. 치나츠의 배려, 그리고 친구로서의 그 모든 매력을 차치하고서도 말입니다



눈앞에 있는 걸 똑바로 보지 않고 다른 일로 마음을 달래는 건 본인이 제일 괴로울 거라고 생각해. (...) 언제까지나 멈춰 있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해. - 54p, .치나츠가 레이에게


"그때"가 나를 압박한다. 상처 내고 좀먹고 있다. 이미 타협한 과거인데도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떠오른다. (....)"그때"의 반짝임은 과장되어 점점 더 빛나고 그때 이후의 인생은 그림자가 된다.

(......)

다만 생각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

혹독한 세계였다. 하지만 좋아했다. 그 세계에 있다는 걸 자각하고 갈고닦으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설령 나 자신은 이제 그 순위 매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도 뜨거워지지 않는다. 도저히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 65-66p, 사키


문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알면서도 해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이지만,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키는 트롬본이 주인공이 되는 드문 곡인 <슬러이더스믹스>를 듣고 알아차립니다. 내가 "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단 것을요. 그것은, <기쁨의 마돈나>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요 레이도 압니다. 하지만, 그것과 대면할 용기가 없다는 것, 그리고 잘 극복하고 있어 보이는 치나츠는 그 욕망을 이젠 끄집어낼 때가 된 것입니다.





달팽이는, 그렇게 빨리 바닷가를 가진 못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요. 가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바다로 끊임없이 가는 걸 보면 박수를 쳐 주고 싶습니다 이 청춘들이 그랬습니다. _ 네, 명 <기쁨의 노래>에선 그녀들의 이야기가 아주 간질간질하면서도 내 고민이 어딘가쯤에 있어선지, 공감이 너무나 됐다면, 이번의 <끝나지 않은 노래>는 너무 전편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렇게 또 가슴 두근거리는 달팽이가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괜찮습니다. 꽤나 괜찮은 구절이 있었고, 꽤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래, 맞아.. 그런데, 했습니다. 그건 제가 어떤 연극을 봤을 때의 이야깁니다. 간막에서 모든 이야기를 해 버리더군요. 막간에서 메세지를 다 풀어버렸던 그 연극이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말합니다. _ 이 아이들의 노래, 듣고 싶지 않냐고 말입니다. 제 2막이 기대되지 않냐고요.






숨기고 있는 욕망을, 이제서야 무대 위에서 발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이기도 합니다. 고작, 이요.

- 막간에 실망은 했습니다만,

막간은 이들에게 꼭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10대와 20대 그 사이의 일들을 숨기면서 보여주는 그 어느 시간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다만, 너무나 비슷한 "열정"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스러움은 그들이 아직 10대 때는 허용되었던 이야기가 20대로 넘어오면서 조금은 그 간질거림이 이제는,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 나이가 어떨까 생각한다면 네, 10대와 20대 초반, 청소년과 성인의 그 어딘가의 층계참에서 서성거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분명, 있습니다만 그것이 다른 형태의 모습을 띌 때는 왜 그리 안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느낌과 "열정"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거나 혹은 과감한 생략을 해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또 노래를 부를 시간인 것을요.






지금은 아득히 안개에 가린 듯 희미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그때쯤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 57p


로 시작한 그들의 노래는,


장승처럼 우뚝 서서 광고지를 움켜쥐고 여전히 나는 떨고 있다. 흥분과 설렘으로. 이제부터 갈 거니까. 세상의 한가운데로. 환희의 세상으로. - 본문 227p




조금은, 실망스러운 느낌의 막간은 분명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소설이 "치나츠"에게로 초점이 맞춰져서일지도 모릅니다.

조금의, 실망은 그럼에도 조금은 섣부른가, 싶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럼에도, 꼭 필요한 시간이니까요. 하지만, 다섯의 아이들의 성장을, 청춘을 그리고 각기의 음악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뚜렷해지는, 노래를 듣고 싶기도 했습니다.


<기쁨의 노래>와의 간극은 어쩌면, 이 차이일지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들이 또다시 노래를 부른다면 저는 실망을 한 것보다는 또 마돈나들의 처음이 너무 좋아서 아마도 다시 노래를 듣지 않을까 합니다.




읽기전, 꼭 <기쁨의 노래>의 그녀들의 노래를 듣고, 이 작품의 노래를 들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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