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미루어 보건대 삶은 우리가 쓰는 낱말들을 초월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말인가가 결여되어 있기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소설 속에 인용된 존 버거의 말에 따르면 진연주 소설가의 이번 작품집이 바로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사건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문장이 아니라 정지한 채로—서술하거나 판단하는 문장이 아니라 감각하고 사유하는 문장으로 사건이나 상황을 낯설게 만든다. 비가 내리는 골목길, 노쇠한 반려견과의 산책, 어머니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흔적, 소멸,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상황의 직접적인 묘사보다 화자의 감정—문장으로 표현된, 동시에 문장으로 채 전달되지 않는—을 드러내고 있다.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를 짐작하고 상상하는 동안 이야기는 독자의 삶으로, 감정으로 확장된다. ‘모든 쓰는 이가 사랑하는 이다. 사랑하는 이가 결국은 쓴다‘는 작품 해설의 말처럼, 모든 읽는 이는 사랑하는 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이 소설이 여러 독자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걸. 좋아하는 옷을 입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즐거운 일을 만들어 내는 일. 모두가 똑같이 욕망하는 것들, 이를테면 돈이나 직업이나 그런 거 말고 내가 만들어 온, 내가 찾아낸 내 마음은 결코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걸. 패셔니스트자 스탠드코미디언, 치를 즐기는 무직의 이십 대인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그것으로도 차고 넘친다.
힘이 있는 인물들과 힘이 있는 메시지. 목소리와 스토리 둘 다 잡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한달음에 통쾌하게 읽어내려가는 맛이 있었고 위트가 돋보이는 가운데 그 아래에 있는 실재하는 것, 우리가 듣고 흘려보내는 현실의 일들이 있어서.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어떤 무게인지 생각하며 읽었다.
"앞에서 말한 핍진한 소설 세계를 창작하는 데 가장 기본이되는 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에요. 불안은 그런 게 불안이죠. 그 불안은 늘 안고 가는 거예요. 진부하다는 말을 사전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몰라도 소설가에게 진부한 일은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물론 대충 짐작할 수 있는인물이 소설에도 나오긴 하지만, 비중 있는 캐릭터의 경우에는대충 짐작할 수 있는 인물이 나오면 곤란하겠죠."
저의 기본적인 태도도 타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깊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다가 사랑하는 순간부터는 이해 불가라고나 할까요. 표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저도 잘 이해돼요. 이를테면 교차로에서 경찰이 제 차를정지시킨다면, 그건 교통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만나는 경찰에게는 내면이 없어요. 하지만 그 경찰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부터 내면이 생겨요.
"글을 쓰지 않고, 막연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마찬가지예요. 글을 쓸 때에만 우리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글을 쓰기만 해도 우리는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되는 거지요. 생각과 행동,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면 더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머릿속의 생각이나 아는 것은그 사람이 행동할 때에만 우리가 볼 수 있어요. 전에 하지 않은행동을 하면 그 사람은 이제 바뀐 거예요. 나아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