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뜨거운 아스팔트에 두 발을 디딘 채 걷고 있었고, 나의 언어가 나를 아무리 밀어도 추락하지 않았다. 나의 언어는 내 신체의 의지를 꺽지 못하고, 나의 욕망을 실현하지 못했다. 아니, 나의 언어가 나의 신체를 움직이고, 나를 욕망하게 한다. 그러고는 나의 주권을 빼앗는다. 나의 언어는 매혹적이고 무능한 독재자가 되었다. 나는 나를 확정하는 나의 언어를 신뢰하지 않고, 나를소환하는 나의 언어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바로 그 언어가 내가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dogear #배수아 #멀리있다우루는늦을것이다 ..‘영혼은 비유라고 일행이 말했다. 비유이고 그림일 뿐이라고. 우리의 상상이 언어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 뿐이라고. 그건 너도 알고 않느냐고. (...) 우리는 비가시적인 순간들의 그림, 몸, 이미지, 형상으로 이루어진 현상의 갤러리를 여행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최근에 기억나는 술자리에서는 영혼이 취향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인 동시에 싫어하는 것, 피하는 것이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감각과 감정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좋은 음악과 좋은 영화, 책은 우리의 영혼이 되는 거라고. 그런데 책 속의 문장을 되새김질하는 동안 영혼의 자리를 다시 생각한다. 비유는 감각은 영혼은 어디에 속해 있을까. 언어 속에 풍경 속에 현상 속에서 이동하면서. 우루의 여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미지와 감각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꿈을 꾸는 기분. 꿈 속에서는 자유롭게 나와 세계를 오가고 서사와 서정의 구애 없이 빛과 어둠을 시간의 처음과 끝을 다룰 수 있지. 감탄하며 읽는 책.
마음에 담아뒀던 소설. 이제서야 읽었다. 작은 판형, 분량, 줄간격이 넓어서 휑한 느낌이 들었는데 차차 익숙해졌다. 여행의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좋았는데, 여행지에서 모르는 풍경을 마주할 때, 풍경은 내면이 되니까. 풍경을 묘사하면서 내면을 알아차리는 법이니까. 빈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번역 클래스 학생들에게서 옛 연인인 무주의 집으로 옮겨갈 때, 넓어지는 시야-모르는 것들을 알아차리려고 눈을 크게 뜨는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채로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조심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닿을 수 없고 잡히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 생각 너머의 세계, 생각 너머의 풍경을 마주할 때를 떠올렸다. 작가는 말이 많았다고 썼지만 ‘세 개의 호수’에서 헤엄치는 장면이 있어서 그래서 그대로 좋았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넌 핵심 장면에서 해야할 말을 못 하고 있어. 그 말을 안 하면서 빙빙 돌리고만 있잖아. 사실을 쓸 필요는 없지만 진심은 말해야지. 쓰지 않으면 읽어낼 방법이 없어. 말을 멈추고 음, 소리를 내며 무주는 말을 골랐다.그냥 써. 걱정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