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안 보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도 아니고, 주된 소통의 통로가 소셜네트워크로 변경되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고유한 얼굴이 눈앞에 있어도 못 보게 되었다. 언뜻 식별 가능한 것으로 이해를 선행하는 방식으로 선을 긋는다. 복잡함을 소거한다.
한 사람의 얼굴에 켜켜이 깃든 경험과 서사를, 한순간에 반영되는 미묘한 표정과 감정을 읽을 이유가 없다. 여유 또한 없다.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인간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증폭시키는 데에 짐작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다.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감은, 공격성을 더욱 서슴없고 무자비하게 만든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총으로 쏘는 것보다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