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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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책갈피는 표지와도, 책의 소담한 풍경과도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행운을 가득 가져다줄 것 같은 사진의 뒤편에는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에 나오는 문장이 적혀있다.


그리고 편지. 나는 편지를 주고받는 일을 사랑한다. 가볍게 툭툭 던지기보다 어떤 마음을 어떤 형태로 전할지 조금 더 고민하게 되니까. 아마 이 편지도 그런 시간을 지나며 단정한 모습으로 나에게 도착했을 것이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내 기억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이 작가의 경험과 감정을 잘 이어놓았기 때문인지, 작가가 내게 그 이야기 사이를 거니고 느낄 만한 시간을 충분히 주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몇몇 이야기들은 일순간 예상치 못한 방향과 색으로 빛나는 기억의 조각처럼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집은 어디일까? 언젠가는 그 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것이 아닌 욕망과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집’에.
-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그렇게 내 것이 아닌 욕망과 거짓된 마음처럼 내 몫이 아닌 우울 대신 고요한 슬픔만이 존재하기를. 눈물을 흘리는 중에도 다시금 행복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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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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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석희 작가의 『장면들』을 읽었다.



 언젠가의 12월 31일. 친구와 파티 준비를 하며 TV를 틀었다. 얼마 안가 친구가 물었다.


 _너 무슨 일 있어?


 나는 의아했다. 이유를 물으니 방을 꾸미는데 뉴스를 틀어놔서 꼭 봐야하는 사건이라도 있는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내가 뉴스룸을 본방사수하고 있었다는 것을.




 1부는 2012년 S퀄 노사전략, 세월호, 태블릿PC, 대통령 선거, 미투, 평양 같은 자신이 현장에 있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어젠다 키핑을 논한다. 불필요한 내용 없이 담담하게 장면들을 통과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2부에서는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저널리즘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품위입니다. 무엇을 보도할 것인가와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서 품위가 빠지면 안 됩니다.


 p.241


 직업인으로 닮고 싶은 행동과 말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책은 390페이지로 꽤 두껍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평소에 하는 생각대로 다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22년의 계획을 세우기 전, 연말에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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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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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글과 한수정 작가의 그림이 만나 품에 끌어안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찬찬히 바라본 풍경이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오듯이, 이 에세이에서 저 시로 넘어갈 때마다 느낌이 깊어져 생각이 되었다.
생각은 뒤에 온다. 느낌은 아주 살짝 빠르다. 이 감득하기 어려운 차이가 어떤 뒤틀림을, 원래 없던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을 채우며 나는 언제나 동시에 살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소원도 느린 것이지만 나는 안다. 생각으로 느낌을 말할 수 없음이 나를 목마르게 하고 동시에 목을 축여주기도 한다는 것을.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으며 생각이 닿기 전 느낌이던 찰나를 다시 본 듯했다. 그런 찰나에는 영원을 먹이는 생명이 있다. 나는 잠시 빌려온 영원을 언제고 되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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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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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는 감염병에 관한 다양한 진화의학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병원체의 진화가 아닙니다. 그에 대한 ‘우리의 적응 혹은 부적응’입니다. 바로 기나긴 감염병과의 전쟁을 통해 빚어진 인간의 신체 그리고 정신에 관한 진화병리학적 설명입니다.

 - 1장 감염병과 우리 안의 원시인


 연일 COVID-19, 코로나로 인해 바뀐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우리가 궁금한 건 COVID-19의 향방 그 자체라기보다 그 영향 아래에 있는 우리 삶일 것이다. 박한선 신경인류학자와 구형찬 인지종교학자는 그 답을 '새로운 과거'와 '오래된 미래'로부터 찾고자 한다. 그들은 1장에서 4장까지 '무엇을 아는지 또 무엇을 모르는지' 짚어가며, 감염병과 면역의 공진화적 역사를 조명한다. 5장부터 8장까지는 인류의 독특한 면역체계, 감염균과의 싸움을 통해 얻은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과거를 지나 9장과 10장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다룬다.



 감염과 관련된 강력한 불안과 두려움, 공포, 강박의 심리적 반응, 그리고 혐오와 배제, 차별의 사회적 반응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감염병 자체보다 더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The worse angels of our nature)입니다.

 - 에필로그 어두운 미래


 COVID-19라는 이름의 의미, 역사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세번의 팬데믹, 행동면역체계로서의 혐오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처럼 쉽게 아래로 흐르는 고통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미 국가주의적 혐오반응, 도매금으로 이루어지는 배제, 취약집단으로 향하는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악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잘못된 대상에게 활성화된 행동적 알레르기라 칭하며, 고통을 어떻게든 의미화하며 한계 이상의 아픔을 감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희망을 잃지 않는 상상력으로 감염병과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모두에게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성 높은 정보와 속 깊은 주장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책이었다. 길을 잃어버렸다 느낄 때에도 어쩌면 길 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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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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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그저 주어진 것처럼 '나'는 나이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때가 있긴 하지만, 보통은 그 물음이 영혼의 뿌리를 쥐고 흔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삶에 온점이나 느낌표를 찍지 못하고 물음표를 찍는 사람들이 있듯이 '나'에 대한 의문이 사그라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캐서린 조 역시 산후정신증을 겪으며 산산이 흩어진 자기 자신의 조각을 모아야 했다. 모아진 것들을 다시 엮어내며 그 진의를 의심하기도 했다. 자아는 연속성에 큰 빚을 지는데, 그녀는 아들을 낳고 3개월 뒤에야 자신이 정신병원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속적인 자아는 순간을 의미보다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캐서린 조는 잃어버린 기억을 위해 훨씬 전의 과거를 되짚으며 다시 의미의 세계에 속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 기록은 생생한 감각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살아있음을 감각하기 위해 그녀는 지금 속해있는 병원의 풍경을 기록하며 괴로운 과거를 직면한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자신과 같이 흘러갈 수 있도록 투쟁하고 있다.

 

 캐서린 조는 비참이나 절망보다 의지의 언어로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을 썼다. 계속 걷는 것, 그리하여 불행의 문을 박차고 바깥을 호흡하는 것. 우리가 그를 자유라고 부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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