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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시대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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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많은 책이 새로 나온다. 게다가 몇 백 년 전의 책도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읽을 게 너무 많다. 근데 끽해야 백년도 못 사는 인간, 와중에 그 시간을 온전히 책에만 쏟을 수도 없으니, 良書를 읽으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옳은 말이기도 하고. 그래도 책의 젤 큰 미덕은 역시 재미,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해적의 시대』가 참 기분 좋은 양서였다.


때는 스페인 함대가 카리브해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17세기, 영국령 자메이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곳 포트 로열의 제임스 앨먼트 총독은 영국에서 새로 온 하녀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스페인 요새 마탄세로스에 정박한 보물선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사략선 선장 찰스 헌터를 부른다. 두 사람의 利害는 일치했고 헌터는 보물선을 향해 떠날 준비를 시작한다. 헌터는 특공대라 불러도 좋을 정예 멤버를 모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탄세로스의 지배자 카살라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유대인 폭발물 전문가 할아부지 돈 디에고, 믿을 수 없는데다 데려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선장 몫에서 7%라는 출혈을 감행해서라도 데리고 가야만 했던 전문 킬러 상송, 눈이 좋은 게다가 남자답기(?)까지한 라쥐, 의사이자 이발사이며 뛰어난 항해사이기도 한 엔더슨과 묵묵히 힘쓰는 일을 해낼 믿음직한 무어인이 그들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헌터의 사략선은 로그우드 벌목을 가장하여 포트 로열을 나섰다.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 마탄세로스를 향한 보물사냥이 시작된다.


보물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충만했던 헌터의 출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에 봉착한다. 어찌된 일인지 마탄세로스를 지키고 있어야 할 카살라의 전함과 맞닥뜨린 것이다. 이거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주인공은 악당에게 잡힌다. 도대체 이 뒤에 무슨 이야기가 이어지려는 건지, 누군가의 추천사처럼 나도 뒤가 궁금해 계속 책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헌터는 카살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까? 벗어나겠지? 주인공이잖아! 그럼 어떻게 벗어날까 그리고 보물은? 응? 어떻게 되는 거냐고! 속도감과 긴장감 속에 책을 붙들고 '아, 이래서 마이클 크라이튼이 초베스트셀러 작가구나.'라며 모가지가 떨어져라 끄덕끄덕.


보물을 찾아 떠나는 해적들의 이야기, 뻔하고 너무 많이 얘기된 이 단순한 제재가 매력적인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등장하는 모두가 악당이었기 때문이다. 무법자들을 살게 하는 그들만의 무자비한 규칙은 인물들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신세계의 삶에 현실성을 입혀주었다. 처음 이 보물찾기를 떠올린 총독 제임스 앨먼트. 왕에게 가야 할 전리품의 10%를 언제나 자신을 위해 챙겨두기 때문에 '십일조의 제임스'라 불린다. 적당히 자기 이익을 챙기고 적당히 보신에도 신경 써가며 그저 별 탈 없이 한 재물 챙겨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악당이다. 도둑질과 부정, 술주정과 난동은 신세계 삶의 일상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포트 로열 생활로 터득한 그를 신임 비서 해클릿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 신세계의 지저분한 삶에 아직 물들지 않은 해클릿은 어떨까? 그 역시 악당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리석기까지 하여 자신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에게 폐를 키친 해클릿이었다.


그럼 헌터는 어떠한가? 우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영웅이 아니냐고? 그는 해적이다. 대의나 명분으로 사람을 죽이고 싸우는 게 아니다. 그의 대의와 명분의 대부분은 '돈'이다. 선장이 이러니 그의 대원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보물'을 향해 모인 '모험'이 인생인 악당들이 헌터와 그의 선원들이다. 파리와 모기가 들끓고 악취나는 진창길이 전부인 포트 로열처럼 신세계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죄 악당들이다.『해적의 시대』에 善人은 없다.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악당들. 모두 나쁜 녀석이며 자신이 그런 녀석이고 상대 또한 그런 녀석이란 걸 서로가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돕고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이런 악당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부자가 되고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을까? 『해적의 시대』가 나에게 그저 재밌는 책이 아니라 인상적인 책이 될 수 있었던 건 에필로그를 통해 보여준 그들다운 말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형당하고 병들고 폭풍을 만나고…… 결국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초라하게 사라지는 악당들다운 말로. 신세계를 찾는 모험의 시대에 자유로운 사략선원으로 카리브해를 횡행하던 헌터와 그의 선원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모험의 삶이 주는 위험한 흥분과 그 뒤에 숨은 초라한 승리를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동안 뻑하면 항해와 선박에 관한 이런 저런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와 혼자 그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느라 끙끙거렸다. 그럴 때면 이 작품의 영화화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내가 그린 그림과 스필버그가 그린 그림은 어떻게 같고 또 다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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