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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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읽은 「사평역」 탓에 종일 '산다는 게 도대체 뭐냐, 사는 건 왤케 엿 같냐' 따위의 생각이 머리에서 짤랑거리고 있었지.

최규석의 이 커다란 책(이 책 손에 넣으신 분들, 그 크기에 좀 놀라지 않으셨나?)도 살아간다는 것의 추레함을 제목처럼 애매한 필치로 슬금슬금 보여준다. 일이 그렇게 될 줄 모르고(원빈이 얼굴을 보면 뭔 소린지 알 수 있음이다) 아들 이름을 원빈이라고 지어 후회 중인 원빈 엄마는 분식점에서 일하며 혼자 아들을 키운다. 일이 그렇게 될 줄 모르고 세상에 나와 원빈이란 이름을 얻은 너부데데한 얼굴의 고딩은 그림에 소질이 있고 흥미가 있지만 혼자 끼적이다 포기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제도권 미술교육 안에 편입되긴 힘든데 엄마께 그걸 요구할 순 없으니 혼자 끼적이고 그 흔적을 침대 밑에 감추고 하며 가슴에 핀 꿈을 즈려밟느라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원빈이 엄마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들의 꿈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다. 만화에 관심이 있는 원빈은 만화가 출신의 원장이 운영한다는 초강력 미술학원에 다니게 된다.

집에 돈이 없어 이제야 학원에 다니게 됐다는 원빈의 말에 강사는 그럼 대학 등록금은 어쩔 거냐고 묻는다. 뒷머리를 긁으며 어떻게든 되겠죠…… 말꼬리를 흐리는 원빈. 강사는 "어떻게든!"이라고 외치며 '어떻게든'을 부른다. 그림을 그리던 '어떻게든'이 책상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든다. 어떻게든이 어떻게든이 된 사연은 이렇다. 괜찮은 학교에 합격했지만 어떻게든 될 줄 알았던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되지 못했고 그는 지금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겨우겨우 감당하는 재수생 처지다. 좀 있다 여름이 되면 작년에 같이 학원 다니며 좋은 감정을 가졌던 여자애가 대학생이 되셔서 임시 강사로 오시는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도 대기 중이다.

이건 자신의 능력부족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이런 시대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찌질한 미래를 본의 아니게 예약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돈이 없으면 성질도 없고 꿈도 없어야 하는데 돈 없는 주제에 꿈은 있는 이 앞날 깝깝한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하고 꿈에 매달린다. 그들 앞에 희망은 있는가? 분식점에서 일하는 엄마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학원을 보내주는 원빈과 혼자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惡衣惡食으로 버티는 어떻게든은 열심히 또 부지런히 살지만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돈 많은 부모를 둔 지현이는 결국 원빈이를 비롯한 친구들의 그림으로 만든 포트폴리오를 들고 대학에 수시 합격한다. 여긴 미술학원이다. 체육학원 영어학원 학원을 넘어 학교, 직장, 무대를 어디로 옮기든 비슷한 이야기 똑같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게 여기고 지금이다.

꿈이 없는 것, 노력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꿈꾸고 노력하는 게 문제가 되어버렸다. 가진 거 없으면 승질이라도 없어야 된다던 태섭 쌤의 말이나, 형 보면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다던 어떻게든 동생의 말은 무자비한 우리 현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찝찝한 장면들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가난한 학생 그림으로 있는 집 자슥 포트폴리오 만들어 대학 합격 시킨 선생은 차를 사고, 공모전에 낼 학생 작품을 거들라는 원장 말에 공모전은 자기 실력으로 해야지 안 그럼 학원 안 다니는 애들이 너무 불리하다는 얘길 하는 선생은 결국 학원을 떠나게 되는 우리의 현실.

작품은 찌질한 인생에 치이면서도, 그렇다고 울기도 좀 그렇잖아? 울기에는 뭔가 애매해, 라는 우리의 찐따들처럼 시종일관 애매한 분위기다. 그게 하잘 것 없는 우리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줘 책을 들고 있는 내내 입맛이 썼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학 합격 여부를 묻는 학원 친구들에게 보이는 원빈의 답은 애매한 슬픔의 화룡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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