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농할멈과 나
Mizuki Shigeru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나이가 이만치 되고 보니 어린 시절은 그저 신나고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문인지 가끔 동생들과 모이면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골목 놀이에도 유행이 있어 딱지치기가 동네를 휩쓰는 때가 있는가 하면, 딱지? 그게 뭐냐 싶게 구슬이 주인공이 되는 때도 온다. 같이 돌려보던 손바닥만한 해적판 만화책 얘기도 빠질 수 없고, 학교 앞으로 이상한 것들을 팔러오던 아저씨도 우리 수다에 빠질 수 없는 인기인이다. 그걸 왜 팔고 왜 사냐 싶어 지금 생각하면 그저 피식 웃음이 나는데, 동전을 반짝반짝하게 닦는 요상한 연고 같은 걸 교문 앞에 펴놓고 팔기도 하셨었지. 더불어 저급한 재료와 온갖 길거리 먼지를 머무려 만든 불량식품들까지. 지금 눈앞에 들이대면 초라하고 우스꽝스럽겠지만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고것들은 꺄르르~ 웃음을 불러내는 소중한 추억이다.

 

미즈키 시게루의 앙글렘 페스티벌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인 [농농 할멈과 나]도 그런 이야기다. 낡고 싱겁고 헐겁기까지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따뜻하고 반갑고 신나는 이야기. 작가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를 비롯한 여타의 요괴 관련 작품이나 요괴연구가로서의 그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도 '요괴'에 방점이 찍혀 소개되는 거 같은데 요괴보단 '추억'에 방점을 찍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척 가난하거나 찢어지게 가난하던 그 시절 남편이 죽어 혼자가 된 농농할멈은 시게루의 집에서 일을 거들며 함께 살게 된다. 요괴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이전부터 시게루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멈과 함께 살게 된 시게루는 할멈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마치 우리가 할머니께 옛날 이야기를 조르고 듣던 그런 모습처럼. 시게루는 할멈에게 들은 요괴를 직접 느끼거나 꿈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경험을 그림이야기로 만든다. 

 

할멈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요괴들은 다양하다. 신심도 없는 사람이 필요할 때만 찾아와 신을 찾을 때 내려오는 '오토로시',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면 그저 먼저가세요 하며 비켜주면 되는 '뚜버기님', 밤에 사람을 보고 따라와 기대는 '치대기'는 햇빛 아래 당당하게 나서면 떼어버릴 수 있다. 천장에서 콩 뿌리는 소리를 내는 '팥도깨비'도 있다.

 

늘상 전쟁놀이, 요괴 이야기로 그림 이야기 만들기를 하며 엄마의 잔소리를 달고 살던 시게루는 몸이 약해 요양하러 온 먼친척 치구사와 친해지지만 그녀는 얼마 안 있어 죽는다. 치구사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시게루에게 그의 아버지는 그 슬픔이 보물이라며, 돈은 굶지 않을 만큼 있으면 되고 공부는 낙제만 안 하면 되니 지금 만들 수 있는 재산을 많이 만들어두라고 한다. 굶어 죽은 떠돌이의 원혼인 '객사귀'가 붙어 가위에 눌렸을 때 도움받은 걸 계기로 친해진 미와를 고베로 떠나보내야 했던 일도 시게루의 가슴에 뭔가가 되어 쌓인다. 아이의 하루하루는 평온한 듯하지만 그 일상의 이런 저런 추억이 한켜 한켜 내려앉아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런 어느 날 시게루는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인생의 목표를 찾는다. 시게루를 키운 건 시골 마을의 건강한 풍광과 콧물쟁이 친구들, 할멈의 흥미진진하고도 진지한 요괴이야기, 엄마의 사랑담긴 잔소리 그리고 그의 아버지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를 키웠다. 그걸 우리는 '추억'이라고 하는 것일 테고.

 

그림이 워낙 예스러운데다 좀 히노히데시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어 취향을 탈 것 같다는 거, 배경이 되는 시대가 1920-30년대인 거 같아 살짝 거슬리는 장면이 있다는 단점을 빼고는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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