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사무라이 1
마츠모토 타이요 글.그림,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암만 한겨울이라 파뤼가 힘을 잃었다고 해도 그 파리의 날개 움직임 하나하나를 간파하는 사무라이 세노가 주인공이다. 세노는 고향을 떠나 에도로 왔다. 그리고 칸키치 도령 옆집에 살게 되었다. 칸 도령은 캄캄한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가 세노와 마주치고 놀라서 오줌을 지렸다. 뭔 도령이 그렇게나 담이 작으냐고? 칸 도령 눈에 그는 여우로 보였다. 뭔 도령이 그렇게나 담이 작아 헛것을 보냐고? 과연 그게 헛것이었을까? 후후후

작가는 세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직은(나는 겨우 1권을 읽었을 뿐). 그러나 몇 가지 살짝 살짝 보여주는 것은 죄다 중요한 것이었다. 세노는 단것을 밝힌다. 옆집 꼬마 칸키치에게도 "칸 도령 이러하오 저러하오" 하며 공손하다. 그리고 뭣보다 세노는 실력이 무시무시하게 대단한 사무라이다. 방에 무릎 꿇고 앉은 세노가 화병에 칼을 휙~ 그었고 꽃가지 하나가 떨어졌다. 문구멍으로 훔쳐보던 칸 도령이 세노가 나간 후 몰래 방에 들어가 '별거 아니군' 하며 화병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 잡으셨지? 그렇다, 화병의 반이 스르륵 떨어져 내리는, 뭐 그런 거다. 후후후

근데 세노가 방구석에서 화병을 왜 벴냐고? 이 세상의 물건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던 쿠니후사를 팔아치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세노는 검을 팔고 대나무 검을 차고 다니는 다케미츠자무라이, 그러니까 죽도 사무라이가 되었다. 에도에 오자마자 검을 팔아치울 정도로 세노가 가난하냐고? 글쎄다, 세노의 지갑 사정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돈 때문에 판 건 분명 아니다. 그는 자신이 불러올 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검을 버렸다. 그러나 검이 없어도, 마음속에 강한 자와 겨뤄보고 싶어 안달난 벌레를 키우고 있는 세노는 힘 꽤나 쓴다는 사내들과 자주 부딪친다. 악의 없이 근처 도장의 사범 대리에게 도전하여 그를 어부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칸 도령을 위해 나서다 문제를 만나기도 한다.

[죽도 사무라이]는 하고 있는 이야기가 참 좋다. 줄거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였던 게 '진심의 힘'이다. 세노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도 하고 도를 통한 듯도 보이고 아이인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칼을 쥐면 그게 비록 대나무 검이라도 그는 야수의 얼굴로 변하고 상대는 겁을 먹고 움츠러든다. 칸 도령과 바람을 맞으며 나비인 양 팔을 놀릴 때도 그는 팔을 흔들고 그대로 나비가 되어 날아올랐다. 활터에 가서 활을 쏠 때도 그가 멧돼지를 쏘겠다고 하면 거긴 겨울 숲으로 변하고 그의 화살은 멧돼지의 심장을 관통한다. 세노가 '레드선!'을 외치는 최면술사냐고? ~ 지금까지 뭘 읽은 건가, 이건 '진심의 힘'이라니까! 세노의 모습은 그저 칼을 잘 쓰는 것만으로 통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진심'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세노는 언제나, 항시, 완벽하게, 100%의 진심으로 살아간다. 칸 도령과 얘기할 때도 이 사람 애한테 너무 공손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거 아냐 싶었는데 그건 진심 때문이었다. 문어 파는 상인을 대할 때도 장사하는 사람 저리 놀리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그또한 진심,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는 알바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일 안하고 애들이랑 놀기만 하나 싶었지만 진심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눈이 있는 사람이면 세노에게 슬금슬금,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게 된다. 칸 도령이 맨날 세노를 찾고,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패셔니스타 미코시 다이자부로 시게츠구가 세노에게 눈을 빛내는 걸 봐봐. 세노의 진심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늪이다. 덕분에 이몸도 세노에게 빠져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꼬마들한테 "도령, 학원 가시오?" 라고 묻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젠장.

게다가 이 작품은 그림도 억수로 좋다. 내가 마츠모토 타이요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그림인데 이 작품도 그림이 진짜 예술이다. 인물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생김새에, 눈이 얼굴 밖으로 쉭 나가있는 그 표현도 마음에 들고, 슥슥 그린 막대 같은 모양의 군중도 마치 움직임이나 표정까지 보일 듯 생생하며, ()이며 물고기 고양이에 잠시 출연하는 문어까지도 개성이 있다. [죽도 사무라이]는 담고 있는 이야기와 그림의 수준만큼 재미도 있어, 혼자 피식거리며 즐거이 읽었다. 인간을 조금 한심스럽고 피곤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고양이나 말의 대사도 피식, 세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면면도 피식피식.

뭔가 세속의 사람 같지 않은 사무라이가 달콤한 경단을 씹으며 에도를 유유자적 돌아다닌다. 고양이도 만나고 지붕에 올라 볕도 쬐고 옆집 도령과 이런 저런 일들도 겪어나가는 중이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에도 생활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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