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벌기는 힘들어'였던가... 거기서 할아버지가 참 좋았다.
같은 작가의 책이라 도서관에서 뽑아들었는데-게다가 신간-뒤에 있는 책소개를 보니 할아버지와 손녀로 구성된 2인조 가족이야기란다. 얼른 대출했다.

첨엔 정말 맘에 들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예사롭지 않고 재치가 철철 넘치는 거다. 근데 뒤로 갈수록, 그러니까 복권에 당첨되고부터는 이야기 따라가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책소개에서 그 의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요양원으로 가서 손녀랑 떨어져 살게 될까봐,라고-글쎄다... 애초에 왜 동상에 올라갔는데? 그건 그냥 우발적인 거고 그 뒤부터가 할아버지의 의도된 행동이란 말인가...갸웃
뒤가 그러다 보니 앞의 재기넘침도 점점 빛을 잃어... 뭐 그렇더라는 거.

 
폐지 따위를 수집하는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신발이라기보다 온갖 접착제를 모아 놓은 듯한 걸어다니는 접착제 종합세트를 발에 끼고 다니는 똑똑한 손녀. 걸어다니는 접착제 종합세트에 대해 뭐라도 한 마디 할라치면 할아버지는 말할지도 모른다. "너니까 수제화를 신고 다니면서, 투덜거리는 거야."
그리고 엄밀히 말해 체코 최초의 환경보호주의자이자 자기 시대보다 몇 광년이나 앞선, "내가 인생이야!"라고 소리치는 할아버지로 구성된 가족이 바로 2인조 가족되겠다. 가난하지만 그 가난에 저어어언혀 주눅들지 않는 가족의 우당탕탕 시끌벅적 일상...이라고 하면 간략한 소개가 되려나. 

 
애초의 선택 이유처럼 이 작가가 그리는 할아버지는 진짜 매력있다. 그 점에선 이 작품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쓰레기를 뒤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자의식은 분명히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일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첫째는 내가 그 사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가 검지를 치켜세우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참된 우아함이 머물 곳은 우리 영혼밖에 없어."

"그런 건 우리에게 전혀 필요가 없어! 일단 복권을 사면 우리에겐 필요도 없는데 덜컥 당첨이 될 거야."
"하지만 난 당첨이 됐으면 좋겠어. 내 말 알겠어?"
"왜 우리가 당첨이 되어야 하는데? 우린 그런 거 필요 없어."
이런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소리가 있나! 나는 아예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우리에게 그런 게 필요 없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땡전 한 푼 없는 우리에게!
"당첨 되면, 넌 그 돈으로 뭘 할 거니? 5만 크로네를 가지고?"
"은행에 가져갈 거야. 저금통장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할아버지는 침대에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본격적인 전투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꺼려왔던 것이 바로 그 저금통장이라는 거야. 그놈의 것은 유치한 욕구와 천박한 욕망을 부추기거든. 넌 돈이 생기면, 기름진 음식을 사 먹겠지. 그러면 동맥경화 때문에 머리가 나빠질 거야. 새 신발을 사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흉하게 망가질 거고, 레이스 달린 나일론 팬티를 사 입으면, 암에 걸리겠지. 그러다 어느 날 돈이 사라지면, 넌 아직도 네게 필요한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러고 나면 넌 머리는 녹슬고, 다리를 절고, 병든 몸으로도 모자라 기만당했다는 기분을 안고 살아갈 거야. 돈이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물건이야!"
"그래서 땡전 한 푼 없어 행복하겠네!"

 

나도 할아버지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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