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역시... 좀... 피곤한 주인공. 이경이도 그녀 엄마도 너무 예민하고 너무 여성스러웠던 게 아닐까. 전쟁의 시절을 보내기에는 말이다. 남자라고 전쟁을 감당하는 게 여자들보다 더 용이하겠냐마는... 쯧.
하여튼 그런 시절 저런 세상이라는 걸 생각해도-이경이 사는 시절이 그렇고 그녀에게 저런 사정을 만든 건 전쟁이지만 기실 이 이야기는 전쟁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냥 예민한 한 소녀가 그 날카로움을 어찌할 수 없어 여기 찌르고 저기 긁어대는 이야기. 그 뾰족이는 나이듦에도 완전히 무뎌지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더 피곤하게 읽혔던 듯-이경이를 읽는 건 참 피곤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온종일 우리 말을 한번도 못 지껄여본 듯하다. 오늘은 워낙 바빴고, 미숙이도 태수도 나를 찾지 않았고, 옥희도 씨에겐 내가 말을 걸 틈이 없었으니까. 불현듯 나는 우리 말이 해보고 싶어졌다. 아까부터 전차를 기다리는지 그냥 우두커니 서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중년의 사나이 옆으로 가서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당신의 부인은 참 아름답군요?」
「그녀의 눈은 무슨 빛인가요?」
「그녀의 머리색은요?」
다행히 그 말은 아주 작은 웅얼거림에 그쳤다. 아무리 작아도 내가 오늘 입 밖에 낸 최초의 우리 말, 그러나 그것은 우리 말이었을 뿐 결코 내 말은 아니었다. 나의 느낌, 내 의사가 담긴 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말이 아니라 외침에라도 몸짓에라도 정말 나를 담고 싶었다.

이 때의 이경이는 평소-나목은 '춥다'가 끝없이 울려퍼지고 퍼지는 이야기-보다 더 추워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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