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수록된 '매잡이'
올 봄...쯤...부터 다시 읽고 있는 이청준의 이런 저런 글들. 예전에도 작가가 훌륭한 글을 쓴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여러 번 읽게 된 '남도사람' 연작만 해도 담고 있는 생각의 맑음은 물론이고 다섯 편의 그 어우러지고 흩어지는 매력에 '이런 게 연작 소설이란 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고...

근데 매잡이는 '유난스레' 좋다. 다시 읽는다는 건 이런 재미가 있어 좋다. 글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 나 혹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거겠지. 그래서 사두고 손 못 댄 책이 쌓였는데도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

…그것이 우리들의 풍속이 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에겐 애초 우리들 자신의 어떤 풍속의 가능성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풍속의 의상이 없는 시대에서 그 삭막하고 참담스런 삶의 현실을 맨몸으로 직접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그 참담스런 삶의 현실이 또 다른 풍속으로 부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자기 삶의 새로운 風俗化에 대항하여 그것을 거꾸로 인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형도 어쩌면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소설마저도 단 한 편밖에 쓸 수 없었던 민형─그래서  그는 오히려 곽서방에게 그토록 매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끝내는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민형의 종말─그것은 그 곽서방의 풍속에 자신을 귀의시킬 수 없었던 비극의 종말이 아니라, 그의 삶의 새로운 풍속화에 대한 마지막 저항과 결단의 몸짓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나마 민형의 경우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치열한 인내와 결단성, 심지어는 그 풍속의 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꿈마저도 깊이 지녀보질 못해온 터이니 말이다.

세상(뭐 세계라고 해도 좋을 거 같고) 사람 중에 '매잡이'의 목소리에 선뜻 '저요~!' 할 사람... 없다. 귀 기울이는 사람이야 있겠지. 어쩜 많을지도. 그치만 그렇게 산다는 건...없다, 없어. 그렇다고 아무도 손들어 주지 않는 목소리를 왜 내는 걸까? 하고 퉁퉁거릴 필요는 없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그런 사람들이 사는 그런 세상이니까 그런 목소리가 필요...하다. 아, 유난스레 좋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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