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저 무서운 일을 그리고 있다. 백마산장의 '머더구스 펜션'에서 한 남자가 음독자살했다. 이 죽음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여동생 나오코는 1년 후 친구 마코토와 함께 오빠가 죽은 그 산장을 방문한다. 자살이 아닐 거라는 확신도 없이, 그저 작은 의심과 함께 시작한 두 여성의 여행인지 모험인지는 언제부턴가 같은 손님들이 비슷한 시기에 묵는 이 이상한 펜션에서 3년 연속 사람이 죽어나가는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어가는 동력이 된다.
세 사람의 죽음이 일 년 단위로 발생하지만 그 죽음은 모두 자살처럼 보인다.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누군가? 어서 풀자, 나는 추리소설이잖아."라고 외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누구나 세 사람의 죽음이 관계가 있으며 그것이 단순하거나 우발적인 자살이 아님을 짐작한다.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다 드러내면서도 한동안 이야기는 그들이 자살을 한 것처럼 진행된다. 마치 눈 가리고 아웅하듯이. 덕분에 이야기는 추리소설이 갖는 긴장감 대신 느긋함을 띠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 정석적인(?) 추리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암호풀이, 보물찾기, 밀실살인, 한방에 모인 관계자를 둘러보며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대단원,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교훈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게 재미있다. 작품의 이런 독특함-그러니까 긴장감 없는 이야기가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장치들을 품고 있는 것-때문일까. 사건이 모두 해결되고 이어지는 두 편의 에필로그는 사족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하려는 작가의 친절이 느껴지긴 했지만 작품이 지닌 느긋한 여운을 깎아먹는 식이 되어버렸고, 긴장감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반전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도 부족했다. 그렇게 에필로그로 만들어 보고하듯 마무리 짓기보단 본편에 넣어 같은 톤으로 풀어줬어도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나 인물의 개성 같은 걸 즐길 순 없었지만, 감춰진 트릭과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함께 풀어가며 적극적인 읽기를 해나가는 추리소설 독자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