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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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5월, 유소기(劉少奇)가 주재한 중앙정치국 확대회의 기간 중에 처음으로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최고 정치지도자에 의한 반역사적 대중운동이 시작되었다. 1976년 모택동의 죽음과 사인방의 몰락으로 문혁이 종결되기까지 10년의 기간을 중국인들은 '10년의 대재난'이라고 한다. 문혁의 광풍은 시대와 사람, 사물을 가리지 않고 휩쓸었다. 죽어 흙이 된 공자에서부터 수많은 문화유산들, 학자와 대문호는 물론이려니와 등소평 같은 정치인과 어린 학생에게까지 피바람이 불었다. 그 중에서도 1967년부터 1969년 사이 중·고교 졸업에 해당하는 세대를 문혁의 가장 큰 피해자로 본다. 이들은 문혁으로 인해 학교 수업을 전혀 받지 못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뤄'와 화자인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책을 읽을 만하게 되니 산골로 재교육을 와 아무 것도 읽을 것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생각하면 작가가 바로 그 세대일 것이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위에서 장황하게 얘기한 그 시대에 의사 부모를 둔 죄(?)로 인민의 적이 되어 '하늘긴꼬리닭'이라는 산중으로 하방된 두 소년의 이야기다. 열여덟, 열일곱의 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생전 처음 겪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똥지게를 지고, 언제 내려앉을지 모르는 탄광을 기고, 말라리아에 걸리는 이들의 생활은 고난보다는 명랑과 유쾌한 모험의 어느 언저리쯤으로 보인다. 그들 삶을 모험으로 채색해 준 것은 우연한 기회에 손에 넣게 된 발자크의 소설 [위르쉴 미루에]였다. 발자크의 소설을 만나고 소년들은 자유와 사랑 같은 평범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인생에 눈뜨게 된다.

작품은 고생스런 재교육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년들이 금서가 된 서양문학을 한 줄기 빛 삼아 버텨내는 4달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모는 인민의 적이 되어 만인 앞에서 자아비판을 했고, 여전히 힘겨운 삶을 어딘가에서 보내고 있다. 자신들도 다시 도시로 나가 이전의 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은 천분의 삼, 즉 3퍼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3퍼밀을 떠올리는 시간보다 근처 마을 재봉사의 딸인 바느질 하는 처녀와 발자크에 더 관심을 둔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달리 이야기는 유쾌하게 흘러가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그것이 중국인 특유의 낙천성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중국인의 국민성과 더불어 문학이 지닌 힘이고 인간이 지닌 힘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학은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인간은 힘들수록 문학의 힘에 의지하려 한다. 모두가 무산계급 혁명을 위해 감정을 잃고 살아야 하는 시대였지만 영화-선전선동의 수단이었다고 해도-는 상영되고, 사람들은 눈물짓는다. 문학이 금지되어도 어딘가에는 책이 있고 그것을 읽으며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다. 두 소년의 구전 영화에 눈을 빛내고 마음을 열어주던 마을 사람들과 촌장, '나'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를 아흐레나 이어가게 했던 재봉사, 발자크를 통해 다시 태어난 바느질 하는 소녀, 푸 레이의 문체를 기억하고 있던 산부인과 의사, 그 의사의 한 마디에 푸 레이를 위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나'까지 모두 문학의 힘을 알고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 어딘가도 문학의 힘을 기억하는 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볼거리 놀거리가 너무 많은 오늘날이라 그것은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언제고 우리가 힘겨울 때 그것은 깨어나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줄 것이다.

작가는 실제로 재교육을 받던 시기에 발자크로 인해 힘을 얻었다고 했다. 작가 뿐만 아니라 당시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힘으로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읽을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전까지 자신을 지탱하던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통해 울분을 토로했고 희망을 부여잡았다. 문혁 시기의 지하문학은 숙청된 문인들이나 하방이란 명목으로 농촌이나 공장으로 흩어진 학생들을 중심으로 성행했고, 그것은 문혁 종결 후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밥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으로서 살아간다고 할 수 없는 모양이다. 뤄와 '나'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싶긴 하지만 읽으며서 좀 의심스러웠던(?) 부분. 작가의 이름이 '載思杰 다이시지에'로 표기되어 있는데 '戴思杰 다이쓰지에'로, 본문에 나오는 바-엘-자-케는 바-얼(er)-자-커(ke)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지. 사실 작가가 프랑스로 귀화했고 프랑스어로 쓰여진 책이라... 하지만 역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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