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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黑笑, 검은 웃음, 블랙 유머…. 유머러스하나 그것이 검다면 결국 부조리한 현실과 그 안에서 피에로 혹은 코미디언이 되어 웃지 못할 웃음을 만들어내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현실을 뒤틀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를 비웃고 있다. 그런데 이 뒤틀린 현실이 전혀 허황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책을 펼치면 이건 우리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검은 사실주의가 된다.
모두 13편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는 연작처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출판사인 규에이사와 작가, 작가 지망생들의 모습을 그린 [최종심사], [불꽃놀이], [과거의 사람], [심사위원]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문학상에 목을 매는 작가들과 작품 외적인 온갖 상황들이 고려되어 수상자가 정해지는 문학상의 모습, 작가 '선생님'이 되길 꿈꾸는 풋내기 작가, 작가와 작품을 그저 판매고를 올리는 히트 상품으로만 대하는 편집자들과 연구와 공부 없이 자기세계에서 기고만장한 작가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작품에는 이들의 생각이 가감 없이 표현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리석고 추하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 그들을 비난할 수가 없다. 그저 쓴 웃음을 짓게 될 뿐이다.
또한 발상을 전환하여 비도덕적이고 비논리적으로 흘러가는 사회 현실을 꼬집는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임포그라]와 [사랑가득 스프레이]를 들 수 있다. 임포그라는 비아그라의 반대쯤되는 약이다. 이런 약을 도대체 누가 살까? 과연 판매가 가능할까? 사랑받지 못하는 아우라 풍기기 부문 세계 챔피언인 남자의 향기를 스프레이로 담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스프레이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걱정마시라! 이 제품들은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간다. 어째서? 글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 본다면 당신도 충분히 이 제품의 훌륭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다. 이걸 파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신데렐라 백야행]이나 [웃지 않는 남자]같은 몇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才氣가 부족하게 느껴졌고, [기적의 사진 한 장]은 다른 단편들과 이야기의 초점이 좀 안 맞는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작가의 발상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조금 뒤틀어 보여줄 뿐인데 독자는 현미경으로 확대된 일상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다면 그건 더 이상 머리카락이 아닌,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머리카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은 우리 인생을 슬라이드글라스 위에 올려놓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