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양장) 기담문학 고딕총서 1
라프카디오 헌 지음, 심정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런 옛날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고 유치하잖아." 冊張을 뒤적이던 동생이 하는 소리다. 어떤 면에선 맞는 이야기다. 라프카디오 헌의 1904년작 『괴담』은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통적인 설화를 그의 아내 입으로 한번 거르고, 그리스인인 작가 본인의 글로 한번 더 거른 것이 『괴담』이다. 설화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본다면 이 작품도 우리에게는 그저 원형 그대로인 설화로 다가올 수 있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 보여주는 무언가 결핍된 듯한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얼마나 많은 환상적인 세계가 탄생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 작품을 그저 유치한 옛날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 100년 전의 이야기는 세련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은 수많은 환상문학의 밑거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21세기를 사는 독자라고 해도, 『괴담』에 수록된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지닌 재미와 매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도깨비나 이승을 떠도는 인간이 아닌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책읽기는 더욱 수월해진다.

 

이승에 남은 미련 때문에 떠도는 혼, 애달픈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서도 인연을 맺는 연인, 귀신까지 홀리는 뛰어난 재주, 선녀와 나무꾼을 생각나게 하는 설녀의 이야기 등 하나같이 애절하면서도 서늘한 매력을 품고 있다. 특히 '귀신도 울린다' 할 정도의 뛰어난 비파 솜씨를 뽐내던 호이치가 정말 귀신들의 연회에 초대되었던 「귀 없는 호이치」이야기.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죽은 천황의 무덤 앞에 앉아 촛불처럼 환하게 타오르는 도깨비불 가운데서 비파를 타던 호이치의 모습을 그려보면 그 괴기스런 분위기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은혜 갚은 까치'를 생각나게 하는 「원앙」. 배가 고파 수컷 원앙을 사냥한 손조 앞에서 제 부리로 배를 찢어 목숨을 끊은 암컷의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반려자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손조에 대한 깊은 원한이 선명하게 그려진 이야기다. 이처럼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짧지만 붉은 핏빛처럼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괴담』의 아쉬움이라면 「해바라기」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앞에 수록된 이야기들과 자연스런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편집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면 작품집에 대한 인상이 더 강하게 남을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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