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투혼’ 커트 실링(38·보스턴 레드삭스)은 승리만을 위해 던지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밤비노의 저주’를 푸는 것도 부차적인 과제였을지 모른다. 그는 남 모르는 고통과 싸우고 있는 희귀병 환자들을 향해 사랑과 희망의 빛을 던졌다.


지난 2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두번째 ‘피나는’ 역투로 승리를 따내 감동을 자아낸 실링의 야구화에 또 하나의 감동이 숨어있었다.

그의 야구화에 새겨진 ‘K ALS’라는 글씨였다. K는 삼진의 약칭이고, ALS는 ‘루 게릭 병’으로 알려진 희귀 근육병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의 약어였다. 발목 통증을 무릅쓰고 투구를 이어갈 때마다 루 게릭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이 병을 전세계에 알린 셈이다.

실링은 “발목 힘줄을 고정하는 응급수술을 받고 어렵사리 등판 기회를 잡은 뒤 고통을 극복하는 의지와 희망을 모든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루 게릭 병은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돼 결국 사망에 이르는 희귀병으로 발병 원인이나 치료법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930년대 뉴욕 양키스의 대타자 루 게릭이 이 병으로 요절한 뒤 ‘루 게릭 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92년 구단 봉사활동 때 루 게릭 병 환자들과 첫 인연을 맺은 실링은 이후 올해까지 13년째 자선활동을 펼쳐왔다. 삼진 1개마다 100달러, 1승마다 1,000달러씩 모으기도 했고, 팀을 옮길 때마다 거액의 성금을 냈다. 루 게릭 병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실링은 그간 4백50만달러(54억원 상당)의 연구기금을 조성했고, 자선단체도 설립했다.

또 95년 태어난 첫 아들의 이름을 ‘게릭’으로 짓기도 했다. 실링의 아내 숀다도 피부암으로 투병하는 와중에서도 남편과 함께 루 게릭 병 환자를 위한 자선행사를 마련하는 등 선행에 적극 동참했다. 2001년 사회봉사 공로로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한 실링은 올 7월에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프로스포츠 최고의 선행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차준철기자 cheol@kyunghyang.com〉

---------------> 찡했다. 각본없는 드라마야말로 정말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무엇.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