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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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니까, 이 책은 재혁군이 읽다가 재미없어서 못읽겠다며 나에게 던져주고 간 것인데, 나는 그 책을 받으면서도 왜 내게 재미없다는 책을 주는 것인지 잠시 의아해 해야만 했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할 때는 자신이 감명을 받았다거나, 재미있게 읽었다거나 하는 부류들을 주기 마련이었는데, 재혁군은 마치 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음식을 처리하듯 나에게 이 책을 처리한 것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도 재미없는 책을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또한 '보르헤스'라는 이름이 걸리적 거려서 (보르헤스의 책은 아마도 대학 4학년 때쯤 한번 읽어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제목은 '픽션들'이었는데, 아마도 그 책은 내가 끝까지 읽지 못한 몇 안되는 책으로 손꼽힐 것이다. 보르헤스는 꽤나 유명한 작가이고, '픽션들'이라는 책도 매우 독창적인 책으로 알려진 것인데, 내가 읽기가 힘들었던 이유는 분명히 '주석(각주)'과 알 수 없는 외래어 때문이었다. 이 '주석'의 귀찮음과 외래어의 해독 불가능은 '여섯가지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르퀴유의 기본 요소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우선 독자가 허락한다면 벨레트로... 벨레트르 크리미놀로지크가 잡다하게 모여 있는 뮈제 그레뱅에 드디어 아르헨티나 사람이 순수하게 아르헨티나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자축하고 싶다."p.11) 꽤나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것인데, 작고 얇은(적어도 이 책을 양장본으로 한 것은 낭비였다. 굳이 양장본으로 만들어야 괜찮은 책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영향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작고 얇은 책이었다.) 크기 때문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읽기에 편했던 탓인지 시내에 나갈 약속 몇번 쯤에는 마지막 사건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경찰서 서기에게 방을 빌려준 실수로 살인죄를 덥어쓰고 징역 21년형을 선고받은 후 14년째 감옥에 갇혀있는 이발소를 운영하던 주인공 이시드로 파로디가 미궁에 빠진 6 개의 사건들을 단지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추리하여 해결해나가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하지만, 그의 추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시각을 통해 재구성되는 발화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끝없이 중얼거리는 소리들을 지겹도록 듣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결론은 이시드로 파로디가 간단하게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것이 전부이다.
보통의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추리의 과정과 진행이 생략된다.(그것은 전적으로 감옥에 갇혀있는 주인공의 상황때문인 것이겠지만.)

그래서, 독자는 파로디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어쩌면 다른 추리소설과 다른 점일지도 모르겠다.(범인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등장인물들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건들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탐정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독자이므로 파로디와 같이 생각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러니, 섬세한 통찰력을 통해 추론해 나가는 재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 바로 그거였어!'라고 맞장구를 치며 읽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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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챔피언
로알드 달 지음, 정해영 외 옮김 / 강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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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빌려달라고 온 재혁군이 렌즈와 교환하듯이 "볼래?"라며 놓아 두고 간 책이었다. 나는 책 앞날개에 쓰여있는 작가 소개를 통해 이 사람이 영국인이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사람이며, 2000년 '세계 책의 날' 전세계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사실 '전세계'라는 것은 의심이 된다.)

  대략 일곱편의 길지않은 글(첫번째 글 속에 작은 장들이 다섯 개 들어 있는 것을 포함하면 열한편이 되겠지만)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첫번째 글을 읽으면서 대학교 삼학년 소설창작 시간의 기억이 강렬하게 기억났다. 그것은 독특한 마지막 반전 때문이었다.

  달의 소설은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상상력이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재미있다. 그는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상상하도록 만든다. 그러니까, 끝이 없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의 모든 작품들이 미완성인채로 읽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나의 몫이니, 또한 상상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것만큼이나 흥겨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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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삼부작
폴 오스터 지음, 한기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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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그다지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읽을 만한 책을 찾는 것이 귀찮아진 나는 한 권쯤 더 읽어 보아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라도 쑤셔 넣어야 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게 읽지 않았던 그의 다른 작품을 보는 것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몇몇 구절 속에서 나는 그가 '말(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명명)'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대체로 그의 말투는 단정적이면서도 회의적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나도 모르게 논문을 읽으면서 하던 버릇대로  인상적이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구절에 띠지를 붙이며 읽어 갔던 것인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순간 눈에 들어온 너덜너덜하게 삐져나와 있는 띠지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곤 하나씩 하나씩 떼어내어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했다.

  결국 존재의 문제이다.

  그리고 결국 혼자이고, 혼자일 때에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사념들 속에 묻힐수록 자신은 더욱 더 고립되고, 그러다 보면 존재 자체도 무의미해 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 될 수도 있을 것인데, 그것은 보통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나 일어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거짓된 모습에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곳과 동시에 저곳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편 뿐이며 저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항상 이러한 세계에, 그저 여기 있는 것 이상의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 만족한다. 그런 것은 명확하고 완벽한 것이어서 일부러 걸음을 멈추고 확인해 볼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세계가 나로부터 사라지고 희미한 그림자 이외에 달리 볼 것이 없게 된다면 전에는 한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필연적인 사실들의 집합이며 우연한 교차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는 것들은 달리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일 뿐이다.

 Il me semble que je serais toujours bien là où je ne suis 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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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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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궁전'은  어디선가 우연히 소개된 그림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렴풋이 그곳에서 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책을 골랐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책 내용이 무척 친숙한 것에 놀랐다.(아니나 다를까 폴 오스터라는 작가도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역시나 망가진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을 보여준다. 왜 망가져버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생각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생각보다 쉽게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무너졌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현실을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을 맞닥뜨릴 때 '무너졌다'고 표현하는 것 말고 또 다른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으니,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많은 우연이 존재한다. 희망에 대한 계시인지도 모르겠지만, 또다른 우연과 인연들은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절망감이 너무 거대해서 그러한 것들이 그다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절망을 설정된 것으로 보여주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이 겪는 엄청난 사실 때문에 오히려 담담하게 현실에 몸을 맡긴다.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일지도 모른다.(내가 매력을 느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죽지 않는 무적의 영웅과도 닮아 있다.(짜증나게도, 또 살아야 하는구나!)

도대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절망이 남아 있는 거냐...

어쨌든, 하룻밤의 괴로움을 잊고 이야기 속의 긴장감을 즐기게 해 주었으니 이 책에도 감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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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서영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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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가 판을 치고 있을 무렵. 한창 하루키에게 빠져 있었을 때 성이 같은 일본 작가의 소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었다. 아마도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제목의 책이었고, 그의 이름은 '류'였다. 나는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호감을 가졌고, 그 책을 읽었다. 사실 첫 느낌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뭐랄까, 조금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군. 별다를 것 없네. 정도였을 것이다. 일본 작가라고 하면 오에 겐자부로나 가와바카 야스나리 따위의 유명한 몇몇 사람들만 알았었고 고작해야 하루키의 소설을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이던 나였다.

 하루키든 류든 이들의 글이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아마도 번역 때문에 그런 것일 거라고 대충 짐작을 했다. 일본어가 한국식 말투로 바뀌면서 생겨나는 딱딱함이라고 할까? (뭐, 하루키식으로 하자면 하드보일드 하고 류 식으로 하자면 스노브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본 소설이면서도 전혀 일본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국적이 불분명한 문화적인 느낌도 이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그러한 문화적 느낌이 일본식이다.)

 어쨌든, 나는 군대를 제대한 이후로 하루키도 류도 읽지 않았다. 사실 소설책이라는 것을 거의 읽지 않았던 것인데, 책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생활에 치이다 보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든 머리가 복잡해져서 휴식이 필요하거나, 또는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 때는 문학이라는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했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며 읽을 수 있는 책들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도서관에서 류의 소설이 눈에 띄었다.

그의 소설은 색다르다.

내용도 구성도 그렇다.

 그의 소설 속에는 마약과 변태적인 섹스가 난무한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에 놓는 것이 읽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무기력하고, 그러한 그들의 삶은 그 속에서 공허하게 움직인다. 그들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대부분 사랑과 이별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겪고 무기력해진 그들은 지난 추억을 '뭐, 다 그런 것이지. 안그래?'라는 식으로 던져버린다. 그것이 아픔과 상처를 견디기 위한 자조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삶은 알맹이가 빠져나간 것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처럼 무기력한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활 속에서도 모두 사랑의 상처라는 공통된 아픔을 겪고 난 뒤 그 허전함으로 괴로워 할 때 나타나는 재즈바와 그들의 아픔과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재즈음악.

그들은 재즈를 통해서 위안을 받았을까?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그들이 정말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들이 들었던 음악은  그들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의 소설은 그다지 유쾌하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래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어쩐지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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