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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서영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무라카미 하루키가 판을 치고 있을 무렵. 한창 하루키에게 빠져 있었을 때 성이 같은 일본 작가의 소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었다. 아마도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제목의 책이었고, 그의 이름은 '류'였다. 나는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호감을 가졌고, 그 책을 읽었다. 사실 첫 느낌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뭐랄까, 조금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군. 별다를 것 없네. 정도였을 것이다. 일본 작가라고 하면 오에 겐자부로나 가와바카 야스나리 따위의 유명한 몇몇 사람들만 알았었고 고작해야 하루키의 소설을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이던 나였다.
하루키든 류든 이들의 글이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아마도 번역 때문에 그런 것일 거라고 대충 짐작을 했다. 일본어가 한국식 말투로 바뀌면서 생겨나는 딱딱함이라고 할까? (뭐, 하루키식으로 하자면 하드보일드 하고 류 식으로 하자면 스노브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일본 소설이면서도 전혀 일본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국적이 불분명한 문화적인 느낌도 이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그러한 문화적 느낌이 일본식이다.)
어쨌든, 나는 군대를 제대한 이후로 하루키도 류도 읽지 않았다. 사실 소설책이라는 것을 거의 읽지 않았던 것인데, 책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생활에 치이다 보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든 머리가 복잡해져서 휴식이 필요하거나, 또는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 때는 문학이라는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했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며 읽을 수 있는 책들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도서관에서 류의 소설이 눈에 띄었다.
그의 소설은 색다르다.
내용도 구성도 그렇다.
그의 소설 속에는 마약과 변태적인 섹스가 난무한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에 놓는 것이 읽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무기력하고, 그러한 그들의 삶은 그 속에서 공허하게 움직인다. 그들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대부분 사랑과 이별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겪고 무기력해진 그들은 지난 추억을 '뭐, 다 그런 것이지. 안그래?'라는 식으로 던져버린다. 그것이 아픔과 상처를 견디기 위한 자조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삶은 알맹이가 빠져나간 것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처럼 무기력한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활 속에서도 모두 사랑의 상처라는 공통된 아픔을 겪고 난 뒤 그 허전함으로 괴로워 할 때 나타나는 재즈바와 그들의 아픔과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재즈음악.
그들은 재즈를 통해서 위안을 받았을까?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그들이 정말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들이 들었던 음악은 그들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의 소설은 그다지 유쾌하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래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어쩐지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