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제2권 - 구름처럼 이는 영웅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198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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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逍遙遊-

잠깐 생각하기를 멈추고 찬찬히 逍遙해본다.
앞산 작은 오솔길이 촉촉하게 젖어있으니.
이 여름 몇 번의 아우성 속에
어느덧 가을이 성큼 와있었다..

이제..
다자란 볏잎속에서 메뚜기가 역사할 때.

아니나다를까 정말 가을이 오는군요. 때를 어기지않고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속에서 패턴을 발견하여 삶의 지침으로 삼은 옛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기만합니다. 이 여름이 채 가기전에 삼국지를 잡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권을 읽었을 땐 왜 진작 읽지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이젠 차라리 어릴 때 읽지 않은것이 다행이었다는 안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 중국 하얼삔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을 때 사귄 친구들이 唐詩를 줄줄 외고 있는 걸 보고 참 부럽다고 느꼈습니다. 딱 이맘때였는데.. 선선한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국제광장'이라고 명명한 기숙사 앞 뜰에 나와 白酒를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들로 낭만적인 북만주의 밤을 새곤 했었답니다. 독한 백주에 거나하게 취기가 돌 때 쯤이면 그친구들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들어 달을 보며 나즈막히, 예의 그 음악같은 성조로 당시를 외곤 하더군요. 시도 시였지만 중국어의 그 운율에 넋이 녹아버릴 듯 했습니다.

그때 화제로 자주 삼았던 얘기가 삼국지였습니다.
하나같이 그 친구들은 좋아하는 인물로 조조를 꼽더군요. 이제야 삼국지를 손에잡고 읽어보니 참 매력적인 사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권에서는 조조가 승전후에 부하들과 술을 마시며 영웅들의 싸움속에서 헛되이 죽어가는 병사들을 생각하면서 시를 읊는 대목이 나오더군요. 난세의 간웅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조조의 인간적인 모습이 역자에 의해 윤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야기 속의 인물에 대해선 마음이 갔었더랬습니다.

이야기와 중간중간 늘어놓은 시편들과 더불어 백주는 없었지만 맥주한잔 들고 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마음을 일러주는군요)이라는 등려군의 노랠 들으며 밤새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멋진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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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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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라는 이름과 제목이 주는 울림때문에, 그리고 작년에 친구로부터 재미있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도 많았다. 내용은 최영미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유럽 각국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수많은 미술관들을 다니며 나름의 감상을 적어놓은 것들이었는데.. 정말 감상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에겐 文材가 한푼어치도 없지만 내가 작가라도 이런 따위의 감상은 적당히 감추어놓고 글을 쓸텐데.. 하는 아쉬움과 이런 사람의 시가 50만부나 팔렸다는 것에 대해 허허로움이 앞섰다. 그리고 '서른, 잔치.. '어쩌구 하는 시집을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책한권에 사람값을 쉽게 판단해버리는 나의 아둔함탓인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작가라 작품의 전후사에 대해선 나름대로 재미있게 쓰긴 했더라만 유치한 감상주의와 작품과 화가와 시대를 보는 안목의 떨어짐이란... 책이 어느정도 시간들여 읽은 보람을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그사람에 대해 혹평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나도 어지간히 도량이 적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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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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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용화론이 몇 해전 조선일보에 게재되어 식자층 뿐만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모두가 나서서 격론을 벌였던 일이 생각이 난다. 당시 관심있게 추이를 지켜봤지만 어느 토론이 그렇듯이 이 논쟁마저도 쉽게 가라앉아버렸다.

복거일이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이유는 단 하나 '시장의 원리'이다. 그는 영어공용화론에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표준이 된다는 '망경제'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서구라는 거대한 제국이 여전히 유효하고 향후 더 큰 영향력을 끼칠게 자명하므로 정보습득 비용이 많이드는 민족어를 포기하고 국제어인 영어를 사용한다면 주변부에 불과한 우리로선 많은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문명권에서 여러언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손실이며 우리가 예전에 국어책에서 배웠던 헤르더의 민족언어론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단순하게 시장경제원칙만으로 관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많은 죄악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세계주의가 이러한 죄악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꺼라고 얘기하고 있다. 세계어를 모국어로 하고 민족어를 포기하자는 주장도 민족주의의 폐기의 귀결로서 민족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시민적 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독한 보수주의자다. 전직 대통령들의 민족주의에 대한 공과를 거론하는데서, 그리고 독도문제, 우리말에 있는 일어사용의 문제, 북한에 대한 시각에서 그의 보수주의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물론 보수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의 반대개념이 아니지만 이런 두가지 사고가 양립하고 있는 사람들은 약간 신기하기도 하다.

읽기행위가 유희라고 생각할 수록 시각이 많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인내하며 읽는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영어가 지구제국의 공용어가 될것이고 민족어는 박물관언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 이유는 '쓰임은 궁극적 근거'라는 시장절대주의 등.. 몇가지는 양보하여 수긍할 수도 있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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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1
배식한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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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텍스트는 지금까지의 책에 대한 태도변화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책은 영구불변의 표상이었다. 책은 '시간을 초월하는'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역사를 초월하여 인류 모두에게 영원한 진리를 이야기 해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책은 세계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며 책을 통한 글쓰기의 목적은 질서의 창조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비선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하이퍼텍스트이 등장과 함께 선형적이고 순차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고전적인 책은 이제 종말을 고할 시점에 이르렀다.

하이퍼텍스트는 새로운 책이다. 이것은 선형과 비선형을 하나로 통합하는 책이다. 불후의 업적으로서의 책이 아닌, 수정, 변화를 거듭하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진리를 향한 의지'가 아니라 '자기극복의 의지'이다. 이제 하이퍼텍스트라는 '새로운 자루', 미래의 책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려면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이 책은 웹에서 부딪히게 되는 수없는 링크들을 하나의 세계관(철학)과 연관하여 설명한 책이다. 두껍지 않은 작은 문고판이지만 현재의 기술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그 기술이 낳는 패러다임의 전환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아주 깔끔하다. 저자는 전반부에서 하이퍼텍스트의 기술적 구현원리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사고를 담는 글쓰기에서의 하이퍼텍스트이 철학적 위상을 설명한다.

HT의 기술을 설명하는 전반부는 읽을 거리를 많이 제공하여 쉽게 설명한 다음에 드디어 후반부에서 바르트,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가타리가 등장하여 묵직한 철학이론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우연과 운명, 결정등의 몇가지 단어로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는 포스트모던의 주제를 다시한번 선포한 셈이다.

다시 말하면 저자와 독자가 직접 대화하면서 글쓰기를 완성해 나가고 그림에서 먼저 시도되었던 저자가 지닌 의미의 임의 해석과 그 결과로서의 저자 권위의 상실.. 다시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그렇게도 애타게 전도하고자 했던 해체의 철학을 다시 역설하는것이며, HT는 그 훌륭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고전적 책은 목차를 통해서 독자의 사고의 확장을 제한해버리고 창조적 두뇌활동욕구에 대한 금욕을 강권한다. 그러나 이 하이퍼텍스트 속에서의 항해 즉 독서는 '해석'이 이루어 지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이 해석의 과정은 끝이 열려있으며 언제나 불확정적이다. 이러한 사태를 '선(line)의 횡포로부터의 해방이다'라고 <책의 종말>이란 책(?)에서는 표현하고 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이 매력이란 바로 읽기의 과정안에 '해석학적 순환' 즉 새로운 정보가 이전의 익숙해진 정보를 변화시키고 이전 정보를 새롭게 만드는 순환이 내재되어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디지털마인드도 미숙하고 컴퓨터나 핸드폰.. 여러 전자도구들이 손에 채 익지도 않은 나지만, 요즘 PC에서 다운받은 책을 읽고 있고, 오가면서는 PDA를 이용해서 읽을거리를 섭취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책읽기의 형식자체가 변화한다는 사실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닌듯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다.

이미 종이책형식을 벗어난 많은 실험들이 행해지고 있고 여러가지 방법들이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위의 글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지만 사실 종이책의 향수를 잊지못할 사람들에 의해 당분간 종이책 시장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다. 10년전 윈도가 나와서 새로운 세상을 예견했어도 여전히 도스사용자들은 비웃으며 도스의 효용성을 주장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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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려준 속담
한윤수 지음 / 형제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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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있습니다. 이놈은 철학을 전공하면서 갑자기 농구를 하겠다고 연대농구단으로 무작정 찾아가 최희암 감독한테 농구를 시켜달라고 떼를 쓰는 등 정말 재미있는 녀석입니다. 이름도 계백입니다. '한 계백'. 그 녀석 동생은 '한 범'입니다. 이름도 특이합니다.

계백이네 집엘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북한산 가는 길에 삼송리라고 있죠. 거기서 버스를내려 한참을 올라갔더니 그녀석 살고 있는 집이 참 대단했습니다. 한 천여평 되는것같았는데 마당 한가운데 호수가 있는겁니다. 작은 연못이 아니라 지름이 한 50m는 족히 될, 일반 가정에 그런 호수가 있다는 거 아직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호수 한가운덴 조그마한 섬이 있어서 현관 앞에서 그 섬까지 구름다리가 놓여있었답니다.. 구름다릴 건너 섬으로 올라가니 온갖 형형색색의 팔뚝만한 비단잉어들이 몰려드는 겁니다. 완존 파라다이스입니다. 이런곳에서 자라서 그렇게 천진난만(?)한가보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하하 왜 이얘길 하냐면 이 책 저자이자 형제출판사 사장인 한윤수씨가 바로 그녀석 아버지입니다. 저자의 부인이자 계백이 어머니는 <고부일기>라는 수필을 써서 여성지와 tv에도 몇번 출연했던 유명인입니다. 집안 내력인가봅니다. 그녀석 집에 갈때 딸기를 한봉지 사가지고 갔었는데, 계백이 어머니가 이 책앞장에 '유쾌한 兄에게.. 딸기 아주 잘 먹었습니다'라고 써서 장서표를 찍고 주신것을 간간히 살펴보다가 이번에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이 책 참 재미있습니다. 예전에 한메타자연습할 때 단문연습으로 속담이 나왔었는데, 너무 재밌는 속담들이 많아서 연습하면서 씨익 하고 웃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재미있는 속담들을 재미있는 얘기로 채워서 펴낸 책입니다.

몇가지 소개하자면..

곰 창날 받듯 한다
급하면 밑 씻고 똥눈다
가는 년이 물 길어다 놓고 가랴
곁방년이 코 곤다
노처녀더러 시집가라 한다
님없는 밥은 돌도 반 뉘도 반
드물어도 아이는 선다 ^^
똑똑한 머리보다 얼떨떨한 문서가 낫다
먹기는 아귀같이 먹고 일은 장승처럼 한다
무식한 벗은 원수못지않게 무섭다
미친년은 아이를 씻어죽인다 - 지나치게 깔끔을 떨어도 병이다
부모속에는 부처가 들어있고 자식속에는 앙칼이 들어있다
뺑덕어미 세간살이 하듯
저런걸 낳지 말고 호박이나 낳았더라면 국이나 끓여먹지 - 하하!
지랄병엔 목침이 약
풍년 거지가 더 섧다
흘러가는 물도 떠주면 공덕이다....

한윤수씨는 이런 속담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소개하면서 이 책을 읽게되었을 때의 다음과 같은 효용을 설파합니다.
1. 자연스럽게 속담과 친해진다
2. 상황에 따라 적절한 속담이 술술 나온다
3. 대화가 부드러워지고 글이 잘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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