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용화론이 몇 해전 조선일보에 게재되어 식자층 뿐만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모두가 나서서 격론을 벌였던 일이 생각이 난다. 당시 관심있게 추이를 지켜봤지만 어느 토론이 그렇듯이 이 논쟁마저도 쉽게 가라앉아버렸다.복거일이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이유는 단 하나 '시장의 원리'이다. 그는 영어공용화론에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표준이 된다는 '망경제'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서구라는 거대한 제국이 여전히 유효하고 향후 더 큰 영향력을 끼칠게 자명하므로 정보습득 비용이 많이드는 민족어를 포기하고 국제어인 영어를 사용한다면 주변부에 불과한 우리로선 많은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문명권에서 여러언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손실이며 우리가 예전에 국어책에서 배웠던 헤르더의 민족언어론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한다.물론 이러한 주장을 단순하게 시장경제원칙만으로 관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많은 죄악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세계주의가 이러한 죄악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꺼라고 얘기하고 있다. 세계어를 모국어로 하고 민족어를 포기하자는 주장도 민족주의의 폐기의 귀결로서 민족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사용하자는 것이다.이렇게 세계시민적 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독한 보수주의자다. 전직 대통령들의 민족주의에 대한 공과를 거론하는데서, 그리고 독도문제, 우리말에 있는 일어사용의 문제, 북한에 대한 시각에서 그의 보수주의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물론 보수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의 반대개념이 아니지만 이런 두가지 사고가 양립하고 있는 사람들은 약간 신기하기도 하다.읽기행위가 유희라고 생각할 수록 시각이 많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인내하며 읽는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영어가 지구제국의 공용어가 될것이고 민족어는 박물관언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 이유는 '쓰임은 궁극적 근거'라는 시장절대주의 등.. 몇가지는 양보하여 수긍할 수도 있을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