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급 두뇌를 사냥하는 여자
유순신 / 조선일보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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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 Drain, 성과주의에 따른 연봉제, 기업의 평생고용제 포기.. 등과 더불어 개별인력들의 몸값에 대한 얘기들이 마치 프로야구 선수의 연봉 얘기처럼 흥미롭게 들리는 시대다. 어디어디에 몇년 근무했던 누구는 무슨 기술력때문에 얼마를 받고 어느 회사에 갔다더라.. 아무개는 어마어마한 스톡옵션을 받고 어디행을 했다더라..하는 얘기들이 마치 무용담처럼 들리기도한다.

예전엔 중역들에게만 컨택을 해왔던 헤드헌팅업체들이 이젠 특정기술등을 보유하고 있는 대졸 신입사원들에게도 손을 뻗치고, 특히 IT업계의 전직열풍에 일조하고 있다는 얘기도 그렇다. 해서 요즘 전,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뿐만아니라 그렇지않은 사람들도 다음과같은 의문들을 갖고있을 것이다. '전직이 대세라면 나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또는 '누구누구는 헤드헌터의 컨택을 받아서 자기의 시장가치를 측정해보기도 했다는데, 나도 한번 이력서를 내볼까?' 등등

헤드헌터들의 상품은 특정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헤드헌터는 쉽게말하자면 그 상품을 수요자에게 적절한 커미션을 받고 중개하는 브로커다. 브로커리지는 증권업계나, 금융업계나, 부동산업계나 다 수수료로 마진을 남긴다. 수수료가 만만치않아도 수요자는 양질의 상품을 얻고자 자신이 가진 정보의 한계로 인해 비싼 수수료를 지불하고라도 중개인의 도움을 얻는다. 중개인은 그 상품에 대한 최고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적절히 포장하고 가공하여 수요자에게 공급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유니코서치라는 헤드헌팅업체에서 근무하는 유순신이란 여성컨설턴트가 헤드헌팅이라는 업에 종사하면서 겪은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인력채용대행의 철학을 담은 책이다. 물론 그네들의 고충과 자부심등을 적절히 일상사에 버무려 편집해놓은 읽을거리에 불과하지만 한 직종의 생리, 구조등을 알수 있어서 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직과 전직이 잦은 IT업계에서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관심도 있었고 해서이다.

헤드헌터의 방문을 받아본적이 없다고 해서 특별히 자신이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거나, 정보의 흐름에서 뒤쳐져있다고 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평생고용이 더이상 의미가 없고, 오히려 기회를 적절히 이용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전직이 권장되고 있는 사회이므로 이런 직종의 브로커에게 적절히 자신을 PR해 놓을 필요도 있을 듯 싶다.

자신의 시장가치만이 인간을 재는 잣대가 되는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물론 헤드헌터들은 그 상품의 인간적 측면들, 예를 들어 어떤 취미를 갖고 어떤 대상에 정통하며 인성은 어떠한지를 측정하진 못한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사람의 시장가치를 평가하고 전직에의 기회를 제공하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직종이기에 나름대로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지은이가 계속 강조하는 말은 전직을 바라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성실함과 믿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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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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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고있는 이 도시의 인문지리적 구조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다.
예를들어 종로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고 길이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강남의 대로들은 차량에겐 더할 나위없이 친절하지만 보행자에겐 매력이 없다.. 서울의 어디는 전통과 현대가 부자연스럽게, 어디는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거리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재고되어야 하며, 건축가들은 집, 빌딩, 길을 만들고 도시를 계획하지만 실재로 그 계획된 도시의 씨실과 날실을 구성하는것은 보행자들이어야한다.. 등등

많은 문화공간과 편의시설들을 연결해주고 이끌어주는 길의 역할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한 건축가의 글이 있어서 소개할까한다.

건축은 예술이자 기술이다. 때문에 도시와 구조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은 예술비평과 기술분석에 무게중심을 두고있다. 예술적이나 기술적이지 못한 구조물, 기술적이나 예술적이지 못한 구조물.. 물론 기술적이지도, 예술적이지도 못한 도시나 구조물 등은 이 건축가의 혀로 파괴의 대상이 된다.

작가의 건축가로서의 안목은 그러나 사회에서의 건축의 의미에까지 확장된다.
서울의 젖줄 한강을 가로지르는 십수개의 교각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종로나 광화문 지구의 풍치, 첨단 빌딩들의 전시장인 테헤란로, 강남개발, 인사동, 대학로.. 등등 수많은 서울의 모습들을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바라보고 비판한다. 덕분에 인문건축서에 하릴없이 정치경제적 비판이 끼어들고 이런 비판은 때론 감정에 치우친 글인 듯하여 껄끄럽기도 하지만 기술건축이나 예술건축이 아닌 인문건축을 표방한 글임을 다소 인정한다면 무난히 읽을 만하다.

저자가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서울 등 대도시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난 일색이나 나름대로 그안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지은이의 건축가로서의 감수성과 엔지니어로서의 간결함이 돋보이는 글이다. 때로는 자본주의가 성숙하면 고상하고 귀티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천박하지 않은 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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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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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고, 자기 신념에 따라 부끄러움없이 살 수 있으며, 이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자기의지로 마감할 수 있다면..?

스콧 니어링.
1883년 미국 어느 탄광촌 유지의 집에서 태어났으며, 와튼스쿨에서 수학하고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 평범한 사람이지만, 젊어서 전쟁의 당위성을 외쳐대는 미국정부에 반대하고 국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념과 학문의 자유에 대하여 외로운 싸움을 싸웠다. 그리고 도시문명을 벗어나 자연속에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꾸려나가다 100세가 되는 해 자신이 이세상에서 해야할 일은 모두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을 마감한 사람이며, 이 책은 그가 노년에 이르러 자신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기록한 자서전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없고 위대한 사상가나 웅변가, 또는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바람직한 실천가로서의 그의 인생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자서전을 시작한다.

오하이오 주 톨레도 시의 샘 존스 시장이 불혹의 나이를 훨씬 지나, 저명인사 몇 명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어느 지방 호텔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인 당시에는 호텔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방명록에 자기 이름을 적는 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되어있었다. 맨처음 사인을 한 유명한 목사는 자기이름 뒤에 'D.D.(신학박사)'라고 적었다. 두번째 사람은 'Ph.D.(철학박사)'라고 적었다. 샘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름뒤에 'L.L.L'이라고 적어넣었다. 옆에서 지켜본 신학박사가 말했다.

'잠깐 샘, 잘못 쓴 것 같은데.. 자넨 대학 문턱에도 가본적이 없잖나?'
그러자 시장이 대답했다.
'천만에 말씀! 난 이래뵈도 인생의 역경이라는 대학을 다닌 몸이오. 우리 대학 교기의 색깔은 시퍼렇게 멍든 색이고, 구호는 '아얏!'이지.'
'그럼 'L.L.L.'은 뭔가?'
샘이 말했다.
'그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운다(Learning, Learning, Learning!)는 뜻이라네.'

지은이 : 스콧 니어링 Scott Ne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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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딜레마
니콜라스 세로타 지음, 하계훈 옮김 / 서울하우스(조형교육)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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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그림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때부터 여기저기 그림구경하러 다녔었다. 첫 대학 땐 화우회라는 미술 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렸었는데.. 동아리방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이젤과 물감과 기름으로 범벅이된 빠레트며.. 캔버스들에 푹 묻혀서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세상이 어찌되든 좋았었다. 송진냄새 비슷한 테레빈유 냄새와 나무냄새. 잉크냄새.. 그 냄새들을 미술관에 가면 고스란히 되맡을 수 있었다.

미술관은 하얀 회벽으로 둘러쌓여 따뜻한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여기있노라고 말하는 그림들과 함께 음향이 부드럽고 아늑한 둥지가 되어 난 마치 어린아이처럼 마구 신기해하면서, 그리고 통로를 지나 커다란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에 느끼는 체험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었다. 그때 내가 작품들을 보는 방식은 '내 마음속의 원근법대로..'라는 한 건축가의 지침대로였고 지금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계속 순례 비슷하게 다니다가 보면서 큐레이터(학예사)들의 전시방식에 관심이 갔다. '경험인가 해석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큐레이터의 딜레마]라는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도 그러하다. 이 책은 작가와 작품과 미술관과 큐레이터의관계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상설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 시립 미술관이나 현대미술관등의 전시방식은 마치 박물관의 도자기를 시대별 유파별로 전시해놓듯이 역사주의나 유파주의를 택해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관람하는 중에 특정유파나 시대가 가진 특성들을 학습할 수 있게 하는 전시방식은 일종의 교육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것은 큐레이터가 미술관의 관객들에게 대한 미술사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중요시하기때문이다.

인사동 등의 군소화랑들은 작가별로 아니면 테마별로 전시를 하고있는데, 이러한 미술관의 학예사는 작가나 특정테마에 주목하고 집중시킴으로써 우리가 큐레이터의 역사해석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작품을 읽도록 우리의 능력을 개발시켜주는데 의미를 둔다. 물론 이것은 학예사가 작품과 작가와 관객의 관계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겠지만. 이렇게 한작가의 작품군을 계속해서 마주치게 되면 이야기의 연결은 그 의미가 줄어들고 개인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분석보다는 제시하기를 선호하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별하여 전시하는 식별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서의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전통적인 우선권을 유보한 방식이다.

이렇게 전시의 현대적경향은 작품의 병치, 분석, 그리고 해석과 같은 전통적인 미술관의 원칙은 최소화되었고 경험이 중요하게 돠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과 그것이 전시되는 장소와의 관계, 외부세게와의 분리,정보의 전달, 학습, 참배, 미술관의 교육적 목적,유파별/동향별 전시, 관람객들의 동선을 유도하여 역사의 고리에 연결,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내게끔 하며, 건축가로서, 미술가로서, 극작가로서, 무대설치가로서, 새로운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고안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오래걷지않아 이내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도록 하는것... 이런 고민들을 통해서 큐레이터는 예술에 개입하게 되었고 관객역시 전시의 한 축으로 작품형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칼 앙드레는 20세기 조각의 진화를 형태로서의 조각에서 구조로서의 조각.. 그리고 마침내는 장소로서의 조각으로의 관심의 변화라고 묘사하였다. 이렇게 장소의 개념이 중요해지고 작가가 관람객의 공간과 싸우며 침투해들어가고, 마찬가지로 관람객도 작가와 작품의 장소로 침투해 들어가서.. 나아가 형태와 비례가 작품이 놓이는 장소의 특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조각과 드로잉을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큐레이터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심중에 두고 작가와 작품과 관객과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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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 우리가 정말 몰랐던 식물의 사생활
차윤정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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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식물이 자살충동을 느낀다느니.. 바흐의 음악을 좋아한다느니.. 기록하기를 좋아한다느니.. 물리학의 천재라거나 경제학 전문가 또는 손자병법을 익힌 전술가라고 서술하는데에서부터 난 옛날 플라톤이 말한 '종족의 우상'을 느꼈었다. 그저 생존하는 것일 뿐인 모습을 호들갑스럽게 인간인 양 바라보는 모습들이 그랬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작가의 식물에 대한 집중이 대단하며 단지 식물에서 다른 '인간의 모습'을 보려고만 한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실의 식물들은 주인이 매일 쓰다듬어주면 일찍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것은 주인의 애정에 보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쓰다듬는 행위가 식물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어 일찍 생을 마감하고자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물이 자살하는 것이다.

꽃을 피우는 행위는 식물이 최대의 목적인 생식을 위해 고도로 집중하고 노력하는 행위이므로 식물에겐 그것이 마치 포유류가 새끼를 낳는 고통과도 같다고 식물학자이자 산림생태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책안에 아주 의미있는 분석이 있었는데.. 식물의 생식행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이것은 동물이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것인데) 생식의 기본 원칙은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유전력을 찾아 후손에게 물려주는것이고 더 나은 유전력을 가진 배우자를 찾는 일이며 후손의 미래를 위한 투자행위이라고 말한다.

그렇기때문에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근친상간을 하나의 죄악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근친끼리는 유전학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으므로 다양한 부계의 유전학적 다양성을 섭취하여 종족의 질적진화를 이루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무리는 다같이 망하거나 다같이 살아남게 되지만 서로다른 유전력은 서로다른 적응력을 가짐으로써 다같이 망하는일은 없으며 결국 개방사회가 갖는 이점을 식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분석인데 매우 흥미로왔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칼라도판과 함께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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