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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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자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다." 어느 친구가 되뇌었던 이 말에, 나는 적이 불편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복잡한 편이고, 나 스스로 반성해 보기에 '실천'은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을 늘상 갖고 있다. 비록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의 복잡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유행위 그 자체가 실천의 일부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좁은 의미에서의 '실천'을 위해서는 생각하는 바가 단순하고 명료할수록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명료한 사유는, 복잡하고 역설을 안고 있는 사유와 마찬가지로 양면적이다. 그것은 실천을 추동하면서도, 종종 단순하게 파악되어서는 안될 것까지 단순화한다.

김규항의 2001년에서 2005년까지의 칼럼과 일기를 모은 <나는 왜 불온한가>를 읽으며, 나는 "실천하는 자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다"는 말을 김규항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그의 문장을 따라가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왜 나의 일상 속에서 저렇게 날카로운 시선을 갖지 못하고 저렇게 명료한 방식으로 써 내리지 못하는지 하며 나 스스로를 탓했다.

허나 한편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구절들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친일파?'라는 글에서 그는 "대다수 일본 민중들 역시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으며 한국의 지배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이해를 같이했다"라고 쓰고 있다. 물론 이러한 파악은 식민지 지배가 한국 '민족' 대 일본 '민족'의 구도로 단순히 이해되는 것에 대한 좌파적 반격으로서 의미있겠지만, 당시에 엄연히 작동하던 민족적 기준에 의한 차별을 간과하는 것을 넘어 일본의 '죄없는 민중'이라는 낭만적인 민중상을 그리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저능한 제국'이라는 글에서는 죄없는 민중이라는 상은 다시 민족이라는 구도를 통해 나타난다. 여기에선 "미국은 일단의 유럽 무뢰배들이 수천 년 이상 자연과 조화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생겨났다"라고 되어 있다. '미국의 민중'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 전체를 집단 유죄화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제국 미국이 어찌되었든 간에, 적어도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 장면은 김규항이 기술하는 식의 과정만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가면서, 나는 그가 복잡한 사태를 단순하게 쓰고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그가 거처하는 진보의 삶의 자리를 나는 온전히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진정으로 불편했다. 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소박한 욕망과 지극히 치졸한 욕망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하는 '불편한' 생각을 줄곧 했다. 혁명은, "'한 줌의 지배계급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 대한 혁명은, '한 줌의 지배계급이 차지하던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그의 혁명에 대한 정의는 그래서 백 번 옳다. 그러나 그런 혁명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국익'이란 모든 정당한 갈등들을 뒤덮어버리는 주술이라는 것, 한국의 교회란 지배계급을 위해 예수를 팔아먹는 상점이라는 것 따위의 지적에 통렬해 하거나 하지 말자. 오직 저 '불편한' 아포리아들을 간직하며 가는 것만이, 이 책을―자신의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출하는 통로로 삼지 않"으며―제대로 읽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제대로 읽기는 다시 세계의 온갖 모순과 역설과 복잡성을 종합해 내려는 험준한 길을 지나야 할 것이다. 나의 감상은 여기까지이다. 

한편 이 책은 '좌파'라는 말이 "친북=좌파 정권"과 같은 용례로 쓰이거나, 그래서 좌파 하면 왠지 나라를 말아먹을 것 같은 세력으로 여겨지게 하는 언어의 함정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좌파라는 것이 비록 계급의 언어를 통해서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보편적 정의감에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김규항의 글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모르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지 모를 익명의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 사족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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