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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이적이 초기에 만든 노래들의 매력 중 하나는 노래가사의 시적 모호함에 있었다. 그 모호함은 그러나 모호함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어떤 정치적 급진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이 이적을 평범하지 않은, 어떤 폭발력을 내장한 대중가수로 만들었던 것이다. 예컨대 “모두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하느냐고 묻는 ‘왼손잡이’와 같은 노래는 그 자체로 왼손잡이라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노래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에서는 그 자체가 범죄였던 ‘좌’파의 존재를 옹호하는 은유로서도 읽힐 여지가 있었다. 언어가 가진 모호성 때문에, 그러한 해석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적’이라는 이름 자체도 이런 급진적 모호성을 띠고 있다. 비록 이 책에는 “李笛”이라고 쓰고 있지만, 라디오에 이적이 나올 때 종종 농담같이 말하듯이 “利敵”으로도 들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수 이적이 소설도 썼네’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이 책을 집어 든 사람도 부지기수겠지만, 또 다른 일군의 독자들은 바로 이런 기대 때문에 이 ‘신인 소설가’의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가수 이적이 소설도 썼다’ 이상의 평가는 아껴두어도 좋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수자의 옹호, 욕망의 옹호라는 코드는 그의 노래 가사와 마찬가지로 그의 소설 전반에, 역시 모호함과 그로테스크함의 외피 속에 잠겨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길이의 호흡을 갖춘 산문, 그것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해서 그런 것인지, 이적의 소설들 속에서는 그의 노래에서와 같은 긴장이라든가 충격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이런 느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이적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나 욕망의 문제가 상당한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성급하게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이적이 산문을 쓰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현재에 한 발짝, 미래에 한 발짝씩 딛고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의 가사들을 계속해서 써 주길 바란다. 그 자신이 소설의 후기(이 후기는 조금 이상하다. 처음으로 내는 소설에서, 그는 소설집을 낸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변을 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가수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에 적은 것처럼, 여전히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간직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