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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근대 -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부제는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인데, 실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 세 나라가 서로를 바라보았던 시선의 차이, 그리고 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일본, 한국의 근대와 그들이 서로를 보았던 시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명쾌한 분석의 영역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떤 애매한 범주만 있다. 이 책을 읽고는, 저자의 요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신화화 현실'이라는 부제로 몇몇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했다면, 이 책은 <일그러진 근대>라는 제목 자체가 어리둥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한다. 자못 도발적인 이 제목을 걸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책의 서문을 읽어보면 저자의 지향이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지향은 (페미니즘을 포괄하는)탈식민주의, 탈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이 책을 쓰고 있으며, 지난 연구와 후속 연구를 통할하는 문제의식 또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그는 그가 의도했던 식민주의/근대화담론의 균열내기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주장하듯 식민지의 광범한 회색지대를 조명하고, 민족과 반민족의 고착적인 이분법을 깨는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어젖힐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어느 부분에서 포커스가 놓여지는지,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제기되는지가 다소 애매하다.
동시대 담론의 분석, 정세의 분석이라는 차원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분석적이라기보다는 나열적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별로 생산적인 비평은 못되지만 하여튼 박지향의 글은 좀 그렇다. 역사적 사실의 배열 자체가 첨예한 문제의식을 통해 조직되어야 글을 읽으면서 예리한 느낌을 받을텐데, 이 책은 그저 구구절절 역사 이야기를 해 놓고선 어느 부분에 가서 갑자기 민족의식의 허구성이라든가 식민지화의 근본적 원인이라든가 하는 뭉툭한 비판을 던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엉성함은 탈식민주의라는 20세기 후반(그리고 21세기로 넘어서는)의 커다란 지적 기획을 동아시아와 구미열강의 비교역사학적 차원으로 끌어오려는 힘겨운 노력에서 발생하는 옥의 티 정도로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저러나 저자에게 바라는 것은 탈식민주의 이론에 휩쓸려 성급하게 비교연구를 내놓는 것보다는, 일단 지금까지 해 온 자신의 각국사 중심의 지적 훈련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저자가 비교의 대상으로 매번 들고 나오는 영국, 일본, 한국은 그 사이의 관계보다 더 커다란 차원에 대한 확실한 문제설정이 있지 않으면 너무나 엉성하다. 왜 굳이 세 나라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