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무엇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책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실험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야기해 준, 자신들만의 특별한 혹은 평범한 사연들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건네 들은 그 상황까지도 옮겨 적었다. 그래서 마치 작가 자신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작가가 언제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으며, 그 누구와의 관계는 어떠하며, 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하는 것들 말이다.

상당히 인상깊었던 점은 여기 등장하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렇게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자신의 내면 속에 앙금처럼 쌓일 뿐, 그것을 글로 쓴다고 해서 그 행위를 통해 바깥으로 배출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분명 특권이다. 사람들은 무라카미가 소설을 쓰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데 혹시라도 자신의 사연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에는 일상적 대화 속에서는 차마 드러나지 않았던, 삶의 온갖 기괴한 이야기들, 관음증, 욕망, 자기성찰, 자기발견이 이야기된다. 특별한 사연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사연들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서 간직하고 있지만, 미쳐 그것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가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들의 특별한 사연에 대해, 그렇게 성급하게 의미를 부여해서, 작품 속에 맥락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그야말로, 글쓰기 행위를 통해 '배출'하는 것이 될지 모르나, 무언지 모를 공허함이 남을 것만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로 써낸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사연의 주인공들은, 그 의미는 여전히 달무리에 싸여 어렴풋이 있지만, 그 애매한 만큼의 미감을, 그리고 위안을 얻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삶이 이렇다' 하고 자못 냉정한듯 말하지만, 우리가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어떤 따뜻한 시선을 얻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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