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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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차적으로 사료를 통해서 아르티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서 이 책은 표면적인 사건의 이면에 있는 의미와 상황, 행위의 동기와 민중들의 심성을 살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바스크 지역의 상속 관습과 툴루즈 부근의 관습을 비교하고, 당시의 기본적인 인구구조와 아르티가의 지리적 조건, 생산활동, 남성과 여성의 관계, 가문의 결합으로서의 결혼 절차를 살핀다. 또한 당시의 사법관할구역이라든지, 재판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 등을 설명한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그 이면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마르탱 게르를 가장한 아르노와 피에르 게르 사이의 갈등은, 단순히 아르노가 피에르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문의 재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 재산을 늘리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는 ― 피에르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 바스크의 관습과, 상속지의 일부를 파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인 ― 아르노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 레즈 강 계곡의 관습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베르트랑드가 의도적으로 아르노를 자기 남편으로 끊임없이 재확인하려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하는, 이른바 '이중 게임'에서 드러나는 재빠른 현실감각은, 남성만이 사회의 공적 정체성과 결합되어 있는 세계에서, 남편의 선의에 종속되어 있는 여성들이 남편에게서 바라는 것을 얻어내고 이익을 계산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이것 또한 예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것이다.

장 드 코라스는 아르노를 사형에 처하면서도 재판이 진행될 때부터 그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아버지를 고소했던 유사한 경험을 아르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 둘 사이에는 공통적인 프로테스탄트적 배경이 있다는 것, 당시의 귀족계급을 지향하는 법관계층으로서 익히는 에티켓이라든지 출세를 앞당기고자 하는 처세의 방법들이 아르노가 행한 '자기 형성'과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 등에서 연유한다.

그런데 이렇게 수백년 전의 사회를 기술함에 있어 문화기술지적 형식을 감행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분명 데이비스는 사료의 벼랑에 서 있다. 그러니까, 현재 자신이 검토할 수 있는 자료는 남김없이 섭렵했고, 전통적인 역사학의 연구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마르탱 게르와 아르노 뒤 틸, 베르트랑드에 대한 이야기의 일정 부분은 정황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그녀는 '대담하게 추측하건대 ~ 했을 것이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불사하면서, 사료의 공백을 이유로 이들을 둘러싼 문화적·사회적 맥락이 빈칸으로 남게 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이 구체적인 사료의 엄증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녀는 단정적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데이비스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책 전반에서 느껴지는 저자 자신의 '사실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사료의 공백을 메우는 이야기를 할 때, 페미니스트적 지향을 비춘다든지, 민중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려든다든지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면모를 다분히 드러내지만, 계속해서 제기하고 자문하는 것은 진실과 창안 사이의 모호함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16세기 사회에서 진정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결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20세기를 살면서 역사가가 진실을 추구하는 것 또한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장 드 코라스의 『잊을 수 없는 판결』을 두고 이것의 사료적 객관성과 투명성을 의심하여, 여러 판본을 대조하여 거침없이 문헌비평을 가하고, 재판관의 내적 갈등을 읽어낸다. 그러나 마지막에도 텍스트에 대한 의혹을 떨치지 않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사건의 진위에도 짙은 의심을 품고 있다. 몽테뉴의 글을 자세하게 다루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몽테뉴는 진실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불확실한 도구인지를 말한다. 마르탱 게르 사건의 경우 판결을 보류했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리고 묻는다. '나무 의족을 하고 스페인에서 돌아온 그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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