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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 신화와 현실
박지향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날 우연히 그와 단둘이 있게 된 적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나는 그냥, '도대체 어떻게 총을 그렇게 정확하게 쏘세요?' 라고 말을 건넸다. 그 작은 하사는 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 나는 특별한 게 있지. 이건 양철 표적이 아니다, 이건 제국주의자다, 그렇게 속으로 말하는 거야. 그래서 분노로 부글부글 끓으며 과녁 복판을 직방으로 맞춘다니까.'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에 나오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군인은 그렇게 총을 쐈다. 양철 표적이라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추상적인 '제국주의자'라고 생각함으로써, 표적에 총알을 맞추는 행위는 더욱 분명해 졌던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바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국주의라는 단어는 도덕적인 단죄의식에서 나오는 자동적인 거부감을 자아내기 쉽다.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국사는 일제의 '간악하고 교활함'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일제하에서 겪어야 했던 민족적 시련과 거기에 분노와 양심으로 저항한 '독립운동'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그 자신은 무엇이었던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전지구적 현상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제국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만은 부족하다. 피지배자였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들 '제국'이 어떤 시각으로 자신들의 팽창을 인식하고, 또 도덕적으로 정당화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였던 여러 나라 사람들 또한 피지배자들이 제국주의 경험을 이해해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제국주의 - 신화와 현실』은 앞서 말한, 제국 자체가 끌어안은 제국의 의미―제국의 팽창동기와 경제적 수익성, 통치 수단이면서 현지의 엘리트인 협력자의 존재,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제국 경험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어느 정도 성실한 서평으로 『역사비평』2000년 가을호에 실린 유재건 교수의 「제국주의, 무엇이 신화이고 무엇이 현실인가」라는 글이 있다. 다소 '삐딱한' 문체의 글이지만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