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정옥자 외 지음 / 효형출판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나는 이 책이 기초했다고 하는 동아일보 연재기사 '새로 쓰는 선비론'을 읽은 바 없다. 그러나 '새로 쓰는 선비론'이나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와 같은 제목에서 그 연재기사나 이 책이 무엇을 함의하고 무엇을 지향하는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선비 없음을 개탄하는 한편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지식인의 모범을 조선의 선비들에게서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선비들의 삶 속을 들여다보면서 지금 여기 이 땅의 풍요로운 자양분으로 삼기 위함'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짐작은 빗나간 것이었다.

조선의 선비를 논하는 행위가 '퇴행'이 되지 아니하려면 응당 이 시대의 '선비다움'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스물 세 명의 '선비'들을 논하면서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이 책을 기획한 이광표는 작금 선비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에게 감히 이 책 속에 선비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했는데, 과연 이 책 속에 선비는 있는가.

이 책 속에는 선비가 없다! 선비다움의 현재적 함의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선비론은 읽을 가치가 없다.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사상사적 견지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을 비평하고 현재 우리 사회가 봉착한 상황 우리의 시대에 대한 치열한 반성에서 그들을 우러르지 않는 선비론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선비라는 어설프고 두루뭉실한 용어로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 의뭉스러운 책이며, 호사가적 취미의 저널리스틱한 시도이다. 물론 이 책의 각 장을 집필한 사람들은 사계의 전문가들이며 문장가들임에 틀림없지만 그 탁월한 인물들이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조선의 지식인들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논의를 위한 한 마디의 대화도 한 치의 입장 조율도 없이 '선비론'을 썼다는 것, 아니 각각의 '선비'에 대해 각자가 쓴 글을 그저 뭉뚱그린 것은 이 책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지르한 편집덕분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제격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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