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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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한창 오르한 파묵의 <내 마음의 낯섦>에 빠져 있었다. 이스탄불을 누비는 마지막 보자 장수의 삶을 담은, 65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소설이었다. 동시대에 아직 살아있는 거장이(어린 시절, 소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본가의 책장에도 <내 이름은 빨강>은 꽂혀 있었다) 계속해서 신작을, 매우 활발히 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또 무지하게 재미가 있었다. 거듭 읽으며 감탄하고, 또 한 번도 가지 못해본 이스탄불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은 스카이스캐너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기표도 자주 검색해보고 그랬는데, 그때마다 인간아 너는 곧 사표를 내고 내년에 백수가 될 것이니 돈을 아껴라며 스스로를 야단쳤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이번 여름엔 이스탄불에서 보자를 마시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의 신작이 또 나왔다. 또다시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다. 자주 이야기해왔던 터키의 급격한 변화,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세대간의 갈등은 여전히 화두로 남겨둔 채, 좀더 마술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신화와의 접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부친 살해), 조금 생소한 페르시아의 뤼스템과 쉬흐랍 이야기(아들 살해)를 엮어, 마치 거울에 비춘 듯한 두 신화가 서로의 힘을 겨루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양새를 터키의 세대갈등에 그대로 투영시켰다.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이다.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없이 자란 는 학비를 벌기 위해 우물 파는 장인 우스타의 조수로 들어간다. 일하는 동안 는 우스타를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존경과 증오를 동시에 가지게 되는데(존경과 증오-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든 자식들이 부모에게 갖는 양면적인 감정일 것이다), 뜻밖의 사고로 인해 우스타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고 도망치게 된다(오이디푸스의 부친 살해). 여기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그리고 1부에서, ‘와 독자는 빨강머리 여인과 마주하게 된다. 거의 삼 세대를 아우르며 터키의 정치적 격변의 중심에 있던 빨강머리 여인은 에게 어머니와 동일시되는 대상인데, ‘1부에서 사실상의 오이디푸스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와 빨강머리 여인 사이의 관계 역시 이를 반영하게 되며, 거기서 파생된 결과가정확히 말하면 하필 또 아들이 생겨서2, 3부를 걸쳐 새로운 신화를 다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동양과 서양에서 이토록 닮은, 또 상반된 신화가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 본성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일 수 있다. 그러니 그 동서양의 신화를 모두 담은 소설이 동서양의 중간지대인 터키에서 터키인 작가에 의해 쓰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운명일 수밖에 없겠단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서양의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살해하고, 동양의 뤼스템은 아들을 살해한다는 면에서 동서양의 정서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느낌도 가지게 되는데, 그렇다면 부친을 살해한 가 훗날 터키의 민족주의를 거스르고 유럽적인 개인’, 혹은 유럽 스타일의 사업가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다음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서양 신화와 동양 신화의 전면충돌인데, 여기서 쓰기엔 너무 큰 스포일러가 될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버지의 권위만큼이나 우리 보편적 생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몇 개나 있을까(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내 개인적으로는, 자라며 배운 모든 권위를 스스로 깨는 노력만이(깨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수긍하고 다시 덮을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성장과 자아확립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되게 장황하게 썼는데, 그냥 쉽게 말하면 살아온 내내 아빠 말 드럽게 안 들었다는 소리가 되겠다. 소설의 말미에는 이런 단락이 나온다.

 

당신과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하나요, 사랑하는 아버지?” 그는 조롱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내가 순종적인 아들이면 유럽적인 개인이 될 수 없지요. 유럽적인 개인이면 이번에는 순종적인 아들이 될 수 없고요. 날 좀 도와주시지요.”(p.323)

 

이 요구에 대해 부친은 나의 아들이라면 성숙한 개인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했을 거야라고 씨알도 안 먹힐 대답을 한다. 이는 뤼스템과 쉬흐랍 신화에서 아버지인 뤼스템의 비겁성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쉬흐랍이 먼저 뤼스템을 쓰러뜨리지만, 노장인 뤼스템은 상대를 두 번 쓰러뜨린 후 목을 베는 것이 미덕이며 예의라고 쉬흐랍을 꼬드긴다. 그러면서 본인이 쉬흐랍을 쓰러뜨린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숨통을 끊는다). 결국 오르한 파묵은 어느 정도는 그가 오이디푸스 형이든, 쉬흐랍 형이든 아들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1부에서 아들이었던, 그리고 2부에서 아버지가 된 에 대한 작가의 태도 변화가 두드러진다는 인상도 강하다), 다만 이전 세대에 대한 추억이 담긴 연민어린 시선을 항상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신화 이야기를 더 이어가지 않더라도,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이스탄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말해 뭣해할 정도로 당연한 마스코트라서, 이 책 역시 또한번 내게 스카이스캐너를 검색하게 만들었다(인간아너는 백수생활을 오래 할 몸이니 자제해라). 다만 이번엔 알콜이 소량 함유된 발효유인 보자가 아니라 도수 45도인 증류주 라크를 마시고 싶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심지어 숙취가 엄청나다고 한다. 자고로 숙취가 엄청난 술이란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하는 것이다.

 

) ‘사실 네 아버지도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단다라는 마지막 문장엔 엄청난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덧덧) 읽다가 현웃터진 부분이 하나 있어서 함께 올린다. 세상 사람들 다 똑같나보다. 나도 연애라는 것에 이런 환상을 가졌었다. 서른 들어서 완전 접었다.

때때로 우리가 함께 책을 읽은 후 입맞춤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젊은 시절 어떤 이상을 위해 함께 흥분하며 책을 읽었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아버지에 의하면 가장 커다란 행복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다른 누군가의 행복에 대해 언급할 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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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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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월요일 새벽 세 시였고 지금은 네 시 이십분이다. 책을 다 읽자마자 노릇한 삼치구이를 곁들여 소주 한 병을 못 견디게 마시고 싶어졌고 삼십 분간 근처의 24시간 생선구이집 따위를 검색했으며(있을 리가 없잖아! 동태탕도 아니고!!) 삼십 분간은 이불에 누워 잠을 자려 안간힘을 썼다. 안간힘을 쓰며 생각했다. 왜 난 지금 생선구이를 먹으면 안 되는가. 대회나간다고 감량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1분 거리의 gs25에선 가끔 간편 삼치구이를 팔고, 냉동실에는 훈제연어가 있다(훈제연어 구이도 조금 짜지만 먹을 만 하다). 결국 수면에 실패한 채 네 시에 일어나 gs25에 갔고, 삼치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돌아와 훈제연어를 구웠다. 새벽 네 시 이십분, 구운 훈제연어에 소주를 마시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인문서를 읽고 안주를 생각하는 나를 후려갈기고 싶다. 일단 훈제연어를 다 먹고 갈겨보겠다.

 

어린 시절 할머니댁이 충남 태안에 있었다. 읍내도 아니고,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깡촌이었다. 할머니댁에서 나와 왼쪽으로 오 분 걸어가면 고운 모래의 백사장이 나왔고, 오른쪽으로 삼 분 걸어가면 돌과 바위가 가득한 바닷가가 나왔다. 차례상 위에 육고기라곤 말라비틀어진 산적밖에 없었지만 생선은 넘쳐났다. 꼬리와 머리가 구분가지 않는 못생긴 아이들, 손으로 죽죽 찢어 먹으면 고릿한 손 냄새가 이틀은 가는 아이들. 내 세대는 듣도 보도 못했을 생선과 조리법들을 어려서부터 당연한 듯 보고 자랐다(이 동네 사람들은 생선 머리, , 꼬리를 발효시킨 후 하얗게 고아 먹는다. 어촌 버전 곰탕인 셈인데, 도시 아파트에서 끓이면 냄새 때문에 항의가 들어온다). 생일이 되면 할머니가 직접 딴 자연산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여 먹었는데, 마트에서 파는 미역과는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다. 반투명한 빛깔에 혀에 얹으면 그대로 녹으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씹지 않아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바다의 풀이라기 보단 차라리 아주 부드러운 멍게 같은 식감의 자연산 미역을 먹었다. 그땐 그게 그렇게 귀한 것인지도 몰랐지만. 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지만.

지금 내 나이대의 친구들 중에서 해산물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생각하면 어촌에 익숙한 나는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뭐래도 육고기보단 생선이지.

생선이 가지는 매력 중의 하나는, 저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이 이야기했듯 그것이 인간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기댄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양식되는 종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현대사회에서도 생선은 포획되는대상이다. 우리가 소나 돼지를 사냥해서 먹어야 한다고 상상했을 때 오는 막연함과 절박함이, 기원전에서부터 생선을 대상으로는 당연시되어왔던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 지금까지도 물고기라는 식량을 더욱 흥미롭게(혹은 입맛을 들이기 함들게) 만드는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그 속성 때문에, 기회를 잡아 포획해야만 누릴 수 있는 속성 때문에 다른 식재료와는 조금 차별화된 방식으로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 발전해온 방향을 논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안데르탈인, 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조개무지, 발트해와 도나우강, 이집트, 지중해, 크메르족,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아우르며 어획이라는 키워드로 인류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흘만에 모두 읽을 정도. 번역 또한 난해하지 않고 매끄럽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문서의 미덕이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아마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는 매우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사람의 의도대로 성장하고 얻게 되는 식재료와, 생선처럼 운이 좋아야얻을 수 있는 식재료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의 삶과 인류의 발전은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종족별로, 연대별로 다른 생선 포획 방법에 대한 상세한 안내도 매우 흥미롭고, 가끔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매력적인 인문서의 후반부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바다의 위기로 결말지어진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어장량을 회복하려면 전세계가 아직까지 유례없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일갈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쩌면 한두세대 이후 우리의 자손들은 해산물의 기름지면서도 상쾌한 바다 맛을 모르게 될 수도 있다. 절망적이다.

 

딱딱하지 않은 인문서, 흡인력 있는 인문서로 추천한다. 실은 저는 앞으로 글을 쓸 건데 이런 책도 많이 읽어서 최대한 많은 글감을 얻고 싶습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책을 받았다. 정말 거짓된 이유다, 나 자신이 가증스럽다, 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얻은 정보로 습작을 두 편이나 썼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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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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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땡- 소리가 났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퇴근길을 터덜터덜 걷던 오후 830분경이었다. 사위는 어둑해졌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음식 냄새를 한껏 묻힌 채 왁자지껄 거리를 돌아다니는 양복쟁이들로 역 주변은 붐볐다. 뭔가 기억하지 못할 일들이 한없이 겹쳐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주렸다. 수면부족으로 뒷머리가 당겼고 깜박깜박 졸음이 쏟아졌다.

그 때 땡- 소리가 났다. 지하철이 잠시 지상으로 오르는 철교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부근을 걸을 무렵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왜 그 때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았을까? 이어폰 없인 지척의 마트에도 가지 않는 내가 왜 그 땐 멍하니 거리의 소음을 받아들이며 걷고 있었을까?

지친 눈을 하고 땡- 소리의 정체를 찾아 고개를 들었을 때 그것이 그곳에 있었다.

권투 체육관이 그곳에 있었다. 2014414일의 일이다. 그 길로 등록을 했고 즉시 집 근처 창고형 마트에서 저렴한 운동화를 구입해 첫날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나 5년차가 된 지금은?

직장을 뛰쳐나왔어도 체육관은 절대 그만두지 못하는 그런 사람.

 

? 여자가 그런 운동을 해요?”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종목의 운동을 하는 여자들 사이에는 당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유대감이 있다. 더군다나 축구라니! ‘축구를 한다는 말에는 쉽게 생각해내기 힘든 희생들이 자리한다. 흰 피부의 희생(축구만큼 땡볕 아래서 오래 지속해야 하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매끈한 종아리의 희생(예전 남자친구에게 파퀴아오 각선미라는 말을 들은 사람으로서 복싱도 질 수 없지만), 머리스타일의 희생(조금만 단발이 되어도 지독하게 귀찮다고!), 화장의 희생(땀 한 바가지 흘릴 건데 화장이 다 뭔가). 그런데 대체 왜 이 여자들은 축구를 하고 있는 걸까? 싸우고 울고 다쳐가며? 심지어 이들은 전업 선수도 아니라 다들 자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고, 젊지도 않다. 30대 중반의 저자 김혼비가 가장 막내이며, 사오십대가 주요 연령층이라 한다. 맙소사, 이 언니들이 무슨 이유에서!

책을 읽다가 깔깔 웃고 또 갑자기 눈물 흘린 것이 참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나도 대회 나간다고 오 킬로 넘는 몸무게를 일주일만에 감량해야 했던 때가 종종 있었다. 물을 먹지 못해 허옇게 침이 들러붙은 입가를 훔치며 수업을 했고 일주일 내내 찐 감자만 먹었다. 대회가 아니더라도, 수면 시간을 줄이면서 하루 세시간 운동을 하니 네시간 반을 잘 수 있으면 성공이었다. 어디서든 휘청대고 눈만 감으면 수면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야?”라는 물음에 멋있게 대답도 못하고, 그저 하고 싶어서요, 그냥 재밌어서요하고 몽롱하게 대꾸하던 내 속마음을 저자인 김혼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가 제대로 풀어내 주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상상도 못하고 살아오다가 그 현 실태를 눈앞에서 본 순간, ‘나도 하고 싶다.’를 넘어서 내가 이걸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구나.’를 깨닫게 될 때 어떤 감정이 밀려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이들이 운동을 즐기고 좋아했던 사람들이냐, 그것도 전혀 아니다(그것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체력장 점수가 최하위였다. 제자리멀리뛰기 할 때 장난치지 말라며 선생님께 혼난 적도 있다. 맹세코 최선을 다해 뛰었다.).

 

운동에 대한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중략)축구의 경험이 쌓이는 만큼 내 몸과 마음의 어떤 감각들이 깨어나는 걸 느끼면서, 축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을 느끼면서, 선수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곤 했다. “왜 진작 축구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 질문을 좀 더 엄밀하게 고치면 이렇다. “어렸을 때 우리는 왜 축구할 기회가 없었을까?” “우리는 정말 운동을 싫어했을까?”

 

우리는 정말 운동을 싫어했을까?”

 

이 질문이 함축하고 있는 억압과 세뇌의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유치원 시절의 소꿉놀이에서부터 촉발된 비정상적 여성상의 주입이 초등학교의 발야구-피구 테크를 타며 심화되는 과정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여자애들은 살이 타니까 바깥에 나가면 안 되었고, 종아리에 알이 배기니까 뛰면 안 되었다. 승부근성을 보이면 독하고 드센 년이라고 욕을 먹었다. 어지간히 밖에 나가 노니까 온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했는데, 엄마가 하던 말은 언제나 스무살 되면 저거 다 빼야지였다.

그럼 스무살 되어서 주근깨 다 빼면 그 다음부턴 밖에 나가지 말라는 건가?

그렇게 왜곡되어 주입된 여성상은 아직도 유효하다. 운동 하면서 여자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그거다. “복싱 하면 근육 안 생겨요? 승모근 안 커져요? 다리에 알 안 생겨요? 근육 안 커졌으면 좋겠는데근육이 발달하지 않는 운동을 바라는 말도 안 되는 마음은 구시대적 여성상의 주입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피겨 같은 건요?’ 네이버에 김연아 등근육을 한 번 검색해 보시라.

근육이 발달하지 않는 운동은 없다. 우리는 근육 없이 매끈한 팔다리를 가져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싫어하도록 교육받았다. ‘땀나지 않는 운동도 없다(빙상에선 땀 대신 콧물을 흘린다). 우리는 냄새를 풍기거나 얼굴이 얼룩지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싫어하도록 교육받았다. ‘승부욕이 생기지 않는 운동은 없다. 우리는 얌전하고 순종해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싫어하도록 교육받은 것이다.

20대 초중반까지 운동을 싫어했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굳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스포츠에 뒤늦은 재미를 붙인 사람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거리들이 가득한 에세이다. 인바디에서 근육량이 많이 나오니 자신이 근육질이라고 착각하는 배불뚝이 남자들의 맨스플레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자면 34일은 걸릴 것 같으니 그만하자(UFC<더 파이팅>이 악의 근원이다. 그리고 아재여, 당신은 근육과 지방량이 모두 많고 그걸 우린 비만이라고 한다.). 멋진 인간 승리의 순간으로 에세이의 마지막을 장식할 순 없었지만 얻어걸린 어시스트 한 개로 세상뿌듯함을 느끼며 책을 마무리하는 저자의 마음을 뼛속깊이 이해한다. 나도 고작 생활체육대회 우승하고, 행복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그 전에 패한 횟수는 세지 않기로 한다. 재능의 한계는 냉혹하다.).

 

가끔 고향 집에 내려가면 엄마에게 몸이 그게 뭐냐고 항상 욕을 먹는다. 누구나 팔 굽히면 불거지는 이두(‘알통’)와 달리 멋지게 쭉 갈라지는 전완근과 단단한 삼두는 운동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이다. 종아리부터 발목까지를 지탱하는 비복근과 넙치근은 얼마나 스텝을 열심히 뛰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언젠가 인스타에서 보고 멋져서 저장한 호주 선수 Louisa Hawton의 계체 사진을 보고 엄마가 에그머니! 몸이 완전 너다 너!”라고 외쳤을 때 느끼던 행복감과 뿌듯함이란! 어찌 보면 그 몸은 내가 이제야 찾게 된 욕망과 자기주장의 발현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토록 피하던 종아리 근육을 얻게 된 때의 김혼비 언니도 그런 것 같다! 드디어 혼비에게도 종아리 알이 생겼다고 축구팀 언니들이 호들갑을 떨던 때에 대한 서술을 마지막으로 인용한다.

딱 내 맘이다.

 

대체로 내 몸과 축구와의 맨투맨 관계는 제법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사회 통념적 욕망, 오랫동안 습관처럼 취했던 방식이라 그게 누구의 것인지도 잘 모르게 되어 버린 욕망에 앞서서, 맨투맨 관계 안에서 내 것이라는 게 확실하고 뚜렷한 욕망을 새롭게 찾아가는 것. 이게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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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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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닮은 서평이 좋은 서평이다. 박진감 넘치는 책엔 박진감 넘치는 서평, 슬픈 책엔 슬픈 서평, 지루한 책엔 지루한 서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분명 금정연의 책에서 읽은 건데 이것이 그의 말인지, 누군가의 인용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리고 서평이랍시고 시작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다른 얘길 신나게 떠드는 글도 좋아한다. <난폭한 독서>의 추천사를 쓴 영화감독 정성일이 이것은 서평집이 아니다!’고 단언했듯이.

이렇게 써 놓고 나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렇다면 <밤의 동물원>의 서평인 이 글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나.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꿀꺽한 후 아무 것도 쓰지 않는, 태만하지만 보편적인 길을 걸을 수도 있다,만 난 꽤 오랫동안 백수일 예정이므로 책을 보내주는 출판사가 필요하다. 꿀꺽한다면 공짜 책은 여기서 끝일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데, ‘2016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화제작이자 2017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최고의 범죄소설이라는 이 책을 닮아 서스펜스 넘치는 서평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애당초 스릴러나 공포엔 영 심약한 인간이란 말이다(내가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스릴러 영화는 <테이큰>이다. ? 그게 스릴러인가요? 그렇다. 자기 딸 하나 살리겠다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수십명을 박살내고 살해하는 아버지, 공포스럽지 아니한가.).

그래서 결국 나는 후자를 택한다.

 

폐장을 앞둔 저녁 시간의 동물원에 리볼버로 무장한 괴한 셋이 등장해 마구잡이로 총질을 한다. 사람 뿐 아니라 동물들에까지. 이제 간신히 말을 할 정도로 어린 아들 링컨을 데리고 늘 그렇듯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스팟만 골라 다니던 엄마 조앤의 동물원 탈출담이 주를 이루고, 인간사회를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도록 축소시킨 인물들이 곁가지를 친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신랄하고 강렬한 장면들이 많다. ‘괜찮아? 어디야? 경찰이 가고 있대. 오 여보 사랑해따위의 문자를 보내 핸드폰이 빛을 내며 울리게 만드는 주인공 남편의 무력함과 대책 없음은 실소를 자아내고(조앤은 이에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버려 범인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으로 대응한다. 쓸데없는 남편 연락 따위 개나 주라지!), 아직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아들 링컨이 배고프다고 떼를 쓰며 울먹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이성적이고 강한 엄마 조앤도, 자신을 숨겨주는 10대 흑인 소녀에 대해서는 잘못된 선입견을 숨기지 못한다. 소리를 내면 발각되는 상황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기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인간성의 말로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상황에 가장 큰 변화를 주는 관계이자 클리셰이기도 한 것은 괴한 중 한 명인 로비와,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 파월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주치는 장면일 것이다. , 상상이 되지 않는가. 또래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아이는 커서 총으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쏘고, 그 아이를 기억하는 노교사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마음을 돌리려 애쓴다. 당연히도 로비는 주동인물이 아니고, 더욱 잔혹하지만 지배력 있는 주동인물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똘똘 뭉친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파월은 그것을 꿰뚫어보고 위기를 모면한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의 두 범인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가 내 아이가 왜 그런 일을, 나는 양육 과정에서 무슨 잘못을, 다른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의 위험한 우울증을 덜어내 주기 위한 방법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부하고 사회활동을 지속하며 찾아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짚어볼 지점이 많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러나 그 책에서조차, 수 클리볼드는 내 아이는 주동인물에게 잘못된 영향을 받은 보조역할이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독자인 나를 불편하게 했던 지점이었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보편적인 스릴러에서 주인공 일행이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마음 약한 애정결핍 환자인 보조인물에게 간택되는 것! 이보다 큰 행운은 찾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숱한 스릴러를 통해 익히 알아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극한상황에 몰아넣은 후 희망을 주기 위한 장치로서 이 클리셰는 여기서도 짜잔-하고 등장한다(물론 전직 교사로서 파월 선생님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선생님에게 신의 은총이 있으라!). 층을 내며 겹겹이 쌓아올리던 서스펜스의 맥이 스륵 풀리는 아쉬운 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장점이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소리만 썼으니 이를 어쩌나. 모면하기 위해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앉은 자리에서 끊김 없이 다 읽었다는. 평소 난 플롯/내러티브 필요 없어, 말맛이 장땡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전위적인 작품들을 하늘높이 쳐주는 재수없는 독자로서 참 고개를 못 들 일이다. 스티븐 킹 선생이 익히 말했듯, ‘나도 시를 써서 강의실에 가져갔지만 기숙사의 내 방에는 더러운 비밀을 숨겨두고 있었다. 인종 폭동을 계획하는 십대 갱단에 대한 미완성 소설이었다. 내가 사춘기를 막 벗어난 시절의 고뇌와 성욕에 대하여 쓰던 시들보다 그 소설이 훨씬 더 낫고 또 어딘가 진실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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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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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고교 수학 교사로 일하던 당시에 장강명 작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수학시간에요? 그러하다. 원래 수업 중 가장 집중도가 높을 때는 딴 얘기 할 때다). <표백>의 소재를 설명하며 학급 전원을 기함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들려주고 한 구절을 읊어줌으로써 서른 개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이기도 했다. 그가 우리나라 최대의 언론사 기자 출신의 작가이며 공모전을 하나하나, 흡사 도장깨기 하듯 격파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로 꿈 많은 아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인기 많던 이야기는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그믐>의 심사 후기. 심사위원들이 분명 젊은 신인 여성 작가일 거라 단언하며 당선작으로 선정한 후 베일에 싸여 있던 저자를 오픈했더니 장강명이었다는, 그래서 아놔 또 또 또 장강명이냐?!??!?!”라고 심사위원 전원이 비명을 질렀다는 이야기. 그래서인지 사표를 투척하고 퇴직할 때 담임반 아이들이 장강명 상을 만들어 내게 수여하기도 했다. 시퍼런 상장케이스까지 번듯하게 만들어서. 그래도 아주 졸진 않았구나 하고 내심 뿌듯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고 장강명 상을 제정한 아이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사실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를 읊을 때 장강명 작가를 넣진 않는다. 물론 오롯이 취향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장강명 작가 이야기를 그렇게나 했을까, 그것도 수학 시간에?유의미한 스타성이 엄청난 작가니까. 교과서에 매몰되고 필독도서에 질식하는 고교생들이 그 시기만의 반항심만으로도 쫓아갈 수 있는 적절히 파격적이며 매우 재미있는 서사를 고안해낼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쉽게 읽게 만들 수 있는 가독성을 엄청나게 겸비한 작가니까(나는 장강명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었고, 완독에 하루, 정확히는 세 시간을 넘긴 작품은 단 한 권도 없다). 재미와 가독성! 이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문학을 새싹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이다. 그토록 방대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는 아이들이다. 못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 읽는 거지. 뭘 읽어야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어른들에게 혼나지도 않을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아서(내가 박형서 작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고등학생에게 매춘부 한 트럭이 등장하는 <새벽의 나나>를 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박형서 작가는 툭하면 세계를 멸망시킨다고).

 

문단을 좌지우지하는 각종 공모전과 문학상,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각종 공채시스템을 짚어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당선, 합격, 계급>은 거의 450페이지에 육박하는 르포르타주이다. 사실 모태가 된 것은 민음사가 발간하는 문예지 <릿터>에 장강명 작가가 작년에 기고했던 시리즈인데, 정기구독자로서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흥미롭진 않아서, 이 단행본에 대해 좀 걱정이 있던 터였다.

 

, 내가 뭐라고 장강명 걱정을 다 했냐.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랑 장강명 걱정인 듯.

 

까놓고 말해 개존잼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발간한 픽션 중 일부보다 이 논픽션이 더 흥미롭고 웃기고 신난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달달 외우던 골계미가 바로 여기 있네 싶다. 뚝뚝 끊어지는 연재에서 다 발휘할 수 없었던 능청스러움과 골때리는 풍자를 단행본에서는 작심하고 수류탄 던지듯 날린다. 그 표창이, 지독하게 문학만 편식하는 독자로서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출판사에서 받았으니 다 읽고 글 써야 하는데 나 참 곤란해졌네)을 그냥 터뜨려 버렸다. 아내와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비혼주의자에게 아 이런 배우자가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면 말 다 했지 뭐.

더군다나, 그는 글을 쉽게쓰며 이것은 큰 미덕으로 작용한다. 무심히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눈을 사로잡고 정보를 전달해야 했던 전직의 능력을 십 분 발휘한다.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은 배설이지만(‘예술은 인간 감정의 배설이므로 그 안에서 교육적 가치 같은 걸 논하는 것은 똥이다가 내 철학이다) <당선, 합격, 계급>은 문학 작품이 아니므로 쉽게 정보와 주장을 독자에게 가능한 한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빈틈없이 해내는 것이 (권희철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무협지의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인’) 장강명이다.

물론 비판하자면 르포의 구성은 상당히 뻔하지만(‘결국 장단이 있고 장점도 많으니 잘 개선해보자!’) 한국 네티즌들이 달기 좋아하는 악플인 학벌사회 비판? 너네가 못해서 괜히 야단인 거 아님?” 류의 비아냥은 꺼내지도 못할 만큼의 공채 패스 및 공모전 입상 스펙을 가진(나는 장강명 작가가 삼성고시까지 통과해서 삼성을 다녔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장강명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자의 탄탄한 조사를 거친 신랄한 단행본의 전격 출간!’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른바 문단문학을 사랑하고 그것을 취향의 정점에 두고 있으며 다 버리고 투신해서 배워볼 계획을 가지고 있는(누구나 알겠지만 계획은 실패하라고 있는 것이다) 내게 이 르포는 두고두고 발라야 하는 연고 같은 그 무엇오글거리니 그만.

 

끝으로, 책을 출간했으며 백수인 내게 제공해 준 민음사에서 밑줄 친 문장을 올려달라고 하기에 한 문장을 올린다. 이렇게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담당자님.

 

나는 미국에는 또라이들이 이것저것 황당한 짓거리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운동장이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모방과 추격의 시대 이후 고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느낌에 자정이 넘어 소세지하우스에 온 젊은 작가들은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눈도장을 찍거나 문단의 내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공짜 술을 마시려고 온 것도 아니었고. 소시지 안주와 국산 생맥주를 먹고 마시려고 새벽 1시에 택시를 타고 홍대에 오는 사람도 있나.

그들은 그저 동업자들과 술을 마시고 싶어 온 것 같았다. “무슨 일 하세요?”앞으로 어쩔 거니?”라는 질무을 받지 않고 동료들과 부대끼는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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