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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고교 수학 교사로 일하던 당시에 장강명 작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예? 수학시간에요? 그러하다. 원래 수업 중 가장 집중도가 높을 때는 딴 얘기 할 때다). <표백>의 소재를 설명하며 학급 전원을 기함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들려주고 한 구절을 읊어줌으로써 서른 개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이기도 했다. 그가 우리나라 최대의 언론사 기자 출신의 작가이며 공모전을 하나하나, 흡사 도장깨기 하듯 격파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로 꿈 많은 아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인기 많던 이야기는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그믐>의 심사 후기. 심사위원들이 분명 젊은 신인 여성 작가일 거라 단언하며 당선작으로 선정한 후 베일에 싸여 있던 저자를 오픈했더니 장강명이었다는, 그래서 “아놔 또 또 또 장강명이냐?!??!?!”라고 심사위원 전원이 비명을 질렀다는 이야기. 그래서인지 사표를 투척하고 퇴직할 때 담임반 아이들이 ‘장강명 상’을 만들어 내게 수여하기도 했다. 시퍼런 상장케이스까지 번듯하게 만들어서. 그래도 아주 졸진 않았구나 하고 내심 뿌듯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고 ‘장강명 상’을 제정한 아이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사실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를 읊을 때 장강명 작가를 넣진 않는다. 물론 오롯이 ‘취향’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장강명 작가 이야기를 그렇게나 했을까, 그것도 수학 시간에?―유의미한 ‘스타성’이 엄청난 작가니까. 교과서에 매몰되고 필독도서에 질식하는 고교생들이 그 시기만의 반항심만으로도 쫓아갈 수 있는 적절히 파격적이며 매우 재미있는 서사를 고안해낼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쉽게 읽게 만들 수 있는 가독성을 엄청나게 겸비한 작가니까(나는 장강명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었고, 완독에 하루, 정확히는 세 시간을 넘긴 작품은 단 한 권도 없다). 재미와 가독성! 이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문학을 새싹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이다. 그토록 방대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는 아이들이다. 못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 읽는 거지. 뭘 읽어야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어른들에게 혼나지도 않을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아서(내가 박형서 작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고등학생에게 매춘부 한 트럭이 등장하는 <새벽의 나나>를 읽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박형서 작가는 툭하면 세계를 멸망시킨다고).
문단을 좌지우지하는 각종 공모전과 문학상,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각종 ‘공채’ 시스템을 짚어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당선, 합격, 계급>은 거의 450페이지에 육박하는 르포르타주이다. 사실 모태가 된 것은 민음사가 발간하는 문예지 <릿터>에 장강명 작가가 작년에 기고했던 시리즈인데, 정기구독자로서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흥미롭진 않아서, 이 단행본에 대해 좀 걱정이 있던 터였다.
참, 내가 뭐라고 장강명 걱정을 다 했냐.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랑 장강명 걱정인 듯.
까놓고 말해 ‘개존잼’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발간한 픽션 중 일부보다 이 논픽션이 더 흥미롭고 웃기고 ‘신난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달달 외우던 골계미가 바로 여기 있네 싶다. 뚝뚝 끊어지는 연재에서 다 발휘할 수 없었던 능청스러움과 골때리는 풍자를 단행본에서는 작심하고 수류탄 던지듯 날린다. 그 표창이, 지독하게 문학만 편식하는 독자로서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출판사에서 받았으니 다 읽고 글 써야 하는데 나 참 곤란해졌네)을 그냥 터뜨려 버렸다. 아내와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비혼주의자에게 ‘아 이런 배우자가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면 말 다 했지 뭐.
더군다나, 그는 글을 ‘쉽게’ 쓰며 이것은 큰 미덕으로 작용한다. 무심히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눈을 사로잡고 정보를 전달해야 했던 전직의 능력을 십 분 발휘한다.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은 배설이지만(‘예술은 인간 감정의 배설이므로 그 안에서 교육적 가치 같은 걸 논하는 것은 똥이다’가 내 철학이다) <당선, 합격, 계급>은 문학 작품이 아니므로 쉽게 정보와 주장을 독자에게 가능한 한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빈틈없이 해내는 것이 (권희철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무협지의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인’) 장강명이다.
물론 비판하자면 르포의 구성은 상당히 뻔하지만(‘결국 장단이 있고 장점도 많으니 잘 개선해보자!’) 한국 네티즌들이 달기 좋아하는 악플인 “학벌사회 비판? 너네가 못해서 괜히 야단인 거 아님?” 류의 비아냥은 꺼내지도 못할 만큼의 공채 패스 및 공모전 입상 스펙을 가진(나는 장강명 작가가 삼성고시까지 통과해서 삼성을 다녔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장강명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자의 탄탄한 조사를 거친 신랄한 단행본의 ‘전격 출간!’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른바 ‘문단문학’을 사랑하고 그것을 취향의 정점에 두고 있으며 다 버리고 투신해서 배워볼 계획을 가지고 있는(누구나 알겠지만 계획은 실패하라고 있는 것이다) 내게 이 르포는 두고두고 발라야 하는 연고 같은 그 무엇… 오글거리니 그만.
끝으로, 책을 출간했으며 백수인 내게 제공해 준 민음사에서 ‘밑줄 친 문장’을 올려달라고 하기에 한 문장을 올린다. 이렇게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담당자님.
「나는 미국에는 또라이들이 이것저것 황당한 짓거리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운동장이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모방과 추격의 시대 이후 고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느낌에 자정이 넘어 소세지하우스에 온 젊은 작가들은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눈도장을 찍거나 문단의 내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공짜 술을 마시려고 온 것도 아니었고. 소시지 안주와 국산 생맥주를 먹고 마시려고 새벽 1시에 택시를 타고 홍대에 오는 사람도 있나.
그들은 그저 동업자들과 술을 마시고 싶어 온 것 같았다. “무슨 일 하세요?”나 “앞으로 어쩔 거니?”라는 질무을 받지 않고 동료들과 부대끼는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