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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추도 위의 현재의식으로 - 한강의 <소년이 온다>
‘터미널 대합실에, 기차역 앞에, 그런 참혹한 시선들이 누워 있었을 때, 군인들이 행인들을 때리고 찌르며 반벌겨벗겨 트럭에 실어갔을 때, 집에 있던 젊은이들까지 수색해 끌고 갔을 때, 도시 외곽이 봉쇄되고 전화는 불통이었을 때, 맨몸으로 항의하는 군중들을 향해 실탄이 발포되었을 때, 이십여분 만에 백여구의 시신이 도로에 널브러졌을 때, 모두 몰살될 거라는 소문이 불붙은 듯 퍼져갔을 때, 예비군 훈련장에서 구식 총기를 꺼내온 평범한 남자들이 동네 초등학교에, 하천 다리에 삼삼오오 모여 보초를 섰을 때,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권력을 대신해 도청에서 시민 자치가 시작됐을 때,
그때 나는 수유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에서
나도 그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그 일이 났을 때, 나는 중학교에도 못 들어간 어린 소년으로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닌 초등학생이었다. ‘무정부’, ‘폭동’ 등의 어렴풋이 기억나는, 통제된 방송과 신문의 기사들을 빼고는 무엇이 실제로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아이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어른들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30년 하고도 3년이 더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그 당시의 어른들은 노년층이 되고 있고 나같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자국의 군인들이 특정 지역의 시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충격의 한편 옆에서 놀라운 시민의식과 정의심으로 대처한 광주시민들이 주는 감동은 자괴감과 자부심이 동시에 일어나는 병렬적인 의식경험이다. 이 동시적 사건이 주는 의식경험은 제대로 알고 이해하지 않으면 이 시대적 숙제는 다른 형태와 양상으로 다시 다가올지 모른다. 이 숙제는 반드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못 풀었다면 두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숙제를 제쳐두고 있었던지, 아니면 너무 어려운 숙제라서 푸는데 오래 걸려 지금까지 풀고 있는 중이던지. 후자이길 바란다. 그러나 전자라고 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양심의 직무유기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에 나온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는 작품이다. 한강은 눈매만 봐도 한승원 작가의 딸임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즉 그녀는 말하자면 80년초의 세대가 아니다. 그녀는 다만 어릴적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른채 버스를 타고 다니던 서울 변두리에 사는 어린 학생이었다가 광주에 대한 소문을 나누는 어른들의 몇마디 말을 마음에 담은 채 이제 어른이 되어 작가로서 과거여행을 떠난다. 자료조사로, 현지답사로.
‘상무관 바닥은 파헤쳐져 있었다. (중략)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의 바닥이 파헤쳐지기 전에 왔어야 했다. 공사 중인 도청 건물 바깥으로 가림막이 설치되기 전에 왔어야 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은행나무들의 상당수가 뽑혀나가고, 백오십년 된 회화나무가 말라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왔다. 어쩔 수 없다.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해가 질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다. 소년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 보이는 마룻장 위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른어른 비칠 때까지’
-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에서
한강은 80년 5월 광주의 도청에서, 친구와 함께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곳에 있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재의 우리에게 그 당시의 소년과 그 친구와, 소녀와, 청년들과 어머니에 대해 들려준다. 이야기의 방식은 꿈이기도 하고 환상(이라고 썼지만 의식흐름으로 보면 진실일 것이다)이기도 하고 르포이기도 하다. 바라보는 시점은 1인칭이기도 하고 2인칭이기도 하며 3인칭이기도 하다. 한강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80년 5월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형식은 중요치 않은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광주에 대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몰랐거나 공감치 못했던 이야기를, 지금의 장년 세대에게 알았는데 넘어가거나 애써 잊어버렸던 그때의 상황을 들려주고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중간중간 읽으면서 눈물을 자제하기 힘들게 만든다. 나이가 어렸든 거리가 멀었든 관여하기 힘들었던 독자의 입장에서 그 당시의 광주를 보면 충격과 분노와 자괴와 무력감이 밀려온다. 그런 한편으로 놀라울 정도의 시민의식과 정의감과 양심으로 대처했던 광주시민들의 모습엔 형언하기 힘든 감동을 준다.
한강은 광주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들려주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의 마음으로 보는 내면의 시선을 들려준다. 내면적이고 의식흐름적인 형식으로 인해 80년 5월의 당사자가 아니면 그들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해의 끈과 공명의 자리를 만들어 준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문학의 힘이기도 하지만 한강의 힘이다.
<소년이 온다>는 담백하지만 치열하고, 서글프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중간중간 눈물이 흘러 작품을 끝까지 읽을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지만 바쁜 와중에도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 가서는 눈물이나 과거에 대한 추도보다는 생생한, 현재의 의식으로 또렷하게 주시를 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는 한강의 작품이 주는 주제와도 깊이 닿아 있다. 2009년 1월의 용산이 그러 했고, 2014년 4월의 진도앞바다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1980년 5월의 광주도 그러하다. 이 모든 것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숙제를 풀지 못하는 한.
그 당시 어린 소녀였던 작가가 이제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어 가는 지점에서 전 세대가 볼만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녀에게 독자로서의 고마움을 보내며,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