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의 철학 - 대전환의 시대를 구축할 사상적 토대 코로나 팬데믹 시리즈 2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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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문제로 파악하고, 그것을 정리된 형태로 제시하고, 나아가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단초를 찾아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아닌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문제일 수 있다. 남이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것을 예민하게 포착해서 그것이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잘 드러내는 자가 철학자다. 아니, 꼭 철학자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창조의 최전선에 있는 자들은 모두 이런 종류의 일을 행한다. ’

- 김재인 지음, 도서출판 동아시아, <뉴노멀의 철학> p.153에서

대한민국은 구한말의 혼란기와 혹독한 일제 강점기와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거치며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다시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라는 극한 상황에서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면서 어느 국가에서도 찾기 힘든 사례를 만들며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그러나 한국의 사례와 같은 빠른 성장은 여러 후유증과 문제점을 낳기 마련이다. 다만 과거였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채 세월이 흘렀을 테지만 지금은 성장의 이면에 놓여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알리고 개선하는 데에도 할애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자의 언급처럼 문제를 제대로 드러내고 개선과 새로운 창조의 방안을 모색하려는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로 서구의 과학기술과 산업등을 포함한 문화를 빠르게 따라잡기 바빴던 한국은 지금 와보니 여전히 서구보다 못한 범주가 수두룩하지만 적지 않은 분야에서 선진국과 나란히 혹은 선진국보다 나은 분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닥친 코로나19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셧다운에 가까운 충격을 일으키면서 우리가 종래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는 교훈을 던진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의 방식과 가치가 노멀(Normal)이고 코로나19 이후에 형성될 방식과 가치가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한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현재는 노멀과 뉴노멀 사이에 놓여진 혼란기 혹은 전환기에 살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한국은 객관적으로 세계인이 한국을 평가하는 시기를 거치면서 뉴노멀의 방식과 가치를 이루는데 주요한 역할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저자는 지구촌이 이제 뉴노멀의 시대로 가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보며 그 세가지의 근거로 기후위기, 인공지능,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을 든다. 이 세가지의 사항은 그 하나하나가 인류가 초래하고 만든 것을 넘어서서 문명의 토대를 새로이 구축해야 하는 거대 과제일 것이다. 저자는 이것의 실용성과 현실성 너머로, 부제의 내용대로 ‘대전환의 시대를 구축할 사상적 토대’를 모색한다. 저자는 이를 위한 논의에서 영토와 새로운 거버넌스와 탈근대적인 가치, 배움과 학문에 대해,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에 대해, 인문,과학,예술을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뉴리버럴아츠 등의 6가지 주제를 제시한다. 책을 통한 저자의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핵심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영토에서 살며 사회를 형성하므로 자유라는 개념은 개인의 자유와 영토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자유의 균형성이 필요하다. 이는 서구사회가 가끔 지나치게 강조한 프라이버시의 반성이기도 하다. 안전한 영토는 삶의 영위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셈이므로 방종에 가까운 자유나 타인을 침해하는 자유는 사회적이고 안전한 영토를 위한 범위 안에서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혹은 지구촌의 차원에서 이상적인 체제(거버넌스)를 향한 노력과 개선은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데 한국은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나듯이 다른 나라들에게 유일하거나 최고는 아닐지언정 매우 유용하고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여태까지 한국에게 있어서 서구화와 근대화는 관념적인 것보다는 생존을 위해 따라잡기 위한 필수항목에 가까웠지만 저자가 언급한 대로 ‘탈근대는 탈식민주의를 함축한다 (p.70)’. 이는 서구의 근대국가가 타국에 대한 전쟁과 식민지라는 댓가를 주된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이제는 다른 지역의 재난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임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제 ‘공동주의’를 정립하자고 역설한다.

모두가 공감할 테지만 한국은 암기위주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들뢰즈의 용어를 빌려 ‘재인식’은 이미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배움’은 처음으로 알아가는 것으로 본다. 또한 ‘분석’은 기존의 것들로 환원하는 설명이고 ‘종합’은 새로운 것의 출현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후진국적 앎은 재인식과 분석이고 선진국적 앎은 배움과 종합이다. 그렇기에 전자의 입장에서 후자의 입장으로 가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의 인문학은 혹은 인문학자는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그러하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이의 극복은 ‘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정성적 사고에 비해 ‘양’의 측면을 도외시하지 않는 정량적 사고를 높이는 것에서 가능하다. 한편 이 점은 한국의 발전단계에서 시기적인 문제로 보여지기도 한다. 저자의 언급처럼 과학기술의 발전 이후에는 역사가, 역사 이후에는 철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덧붙여 이를 위해서는 서구의 인문학 뿐만 아니라 동양의 그것에서도 큰 각성이 요구된다. 저자가 책에서도 잠깐 언급하는 것이지만 동양의 인문학이 시대와의 접점을 찾지 못하는 고인 물(!)이 된 것은 장구한 유산의 축적에 비해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공자가 한국에 다시 태어난다면 서울대의 규장각, 성균관대의 고서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많은 자료들을 주로 보관만 하는 세태를 깨고 적극적으로 한글로 알리고 시대의 철학과의 융합을 꾀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젊은 학생들과 소장인문학자들에게는 도전이지만 큰 기회가 놓여 있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의 초중등에서 비롯된 분과학문의 지나친 기능구분 짓기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 분야의 발전과는 별도로 구분짓기 이전의 통합적인 시선으로 생기는 창의성을 위해 인문,과학,예술을 하나로 바라보는 ‘뉴리버럴아츠’를 중시하고 장려하는 교육과 환경이 중요하다. 더해서 인문과 역사, 문학같은 것은 스스로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수학, 과학같은 것은 제도적으로 일찍이 배우지 않으면 기회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므로 더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위의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 본다면 기후위기, 인공지능, 전지구적 감염병의 시대 위에서 우리가 잘한 것, 못한 것, 그리고 이를 통한 지구적 가치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는 의미로 들린다.

철학자 김재인의 <뉴노멀의 철학 : 대전환의 시대를 구축할 사상적 토대>는 시기성에 맞춰 쓰여진 책이고 분량이 200페이지를 조금 넘기므로 책의 양과 깊이를 가볍게 볼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함축적이면서 본질적이라는 면에 있어서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다. 뉴노멀의 철학을 위해서 요구되는 범주는 핵심적인 것만 추리더라도 적지 않게 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다루지 않은 범주도 무수히 많다고 본다. 그러나 살아 있는 철학은 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므로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을 다루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뉴노멀을 새로이 정립했다기 보다는 뉴노멀을 위해 우리는 어떤 범주와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가치를 구축할 수 있느냐는 발제를 한 셈이라고 본다.

니체, 들뢰즈를 비롯한, 현대에도 유효한 철학을 번역하고 알리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과 관련되는 주제들의 저작을 내놓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비롯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의 논의를 전개해 가는 철학자 김재인은 여러모로 지성인의 살아있는 모범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이런 지성인이 아직까지 너무 드물다. 기능주의와 과거자체에 머물러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스스로 살아 있는 학문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이런 구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을 계기로 기존의 학자 뿐만 아니라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뉴노멀의 가치를 위한 최전선에 있고자 하는 이들이, 특히 미래한국과 지구의 안녕을 염려하는 열정 넘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접하길 바란다. 새로운 시대의 철학에 어울리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영감과 힌트를 얻어 이를 토대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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