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경제? 재벌이 문제!
초이노믹스라며 기승전부동산의 정책들을 남발하고 한국은행은 역대 최저로 금리를 인하하며, 이런 식의 대응이 적절한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한국경제가 정말 위기에 직면해 있는지, 위기가 다가왔다면 어떤 정책이 유효한지 따져보는 대신에, 보다 구조적인 문제와 그 극복방향을 강조하고자 한다. 핵심을 비껴가고서는 백약이 무효라서이다.
한국경제의 모순 : 대박의 비밀이 쪽박의 이유
투자한 자본과 이로부터 벌어들인 소득 사이의 비율을 의미하는 이윤율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성과와 한계를 측정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표이다. 자본주의의 목적은 최대한 많이 버는 것이고, 이의 지표가 바로 이윤율이기 때문이다. 홍장표 교수의 「한국 제조업의 이윤율 추이와 변동요인」(2013)에 따르면, 1991~2009년 동안의 제조업 분야 18개 업종 패널자료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외환위기 이전(1991~1998년)에는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자본-노동비율 증가와 시장개방이 이윤율을 하락시켰으며, 외환위기 이후(1999년~2009년)에는 생산자본의 세계화와 연구개발투자가 이윤율 상승을 주도했고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이 이를 뒷받침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적 분석결과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을 더해보면 아래와 같은 결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 경제성장을 특징짓는 것은 ‘수출’과 ‘제조업’, ‘재벌’이다. 2008~9년의 미국발 세계경제공황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비교적 견조한 성장을 유지한 건 재벌이 지배하는 제조업 분야에서의 수출경쟁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세계시장에서도 통한 수출경쟁력은 IMF구조조정으로 반등시킨 이윤율로 해외직접투자 및 연구개발투자를 늘리고, 이게 생산합리화와 더 많은 이윤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내면서 형성됐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문제는 재벌 입장에서의 생산합리화 즉, 해외공장 증설과 생산성 향상 및 노동 압박 등이 한국경제의 구조적 결함들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국내 설비투자보다는 해외투자와 연구개발에 돈을 풀면서 고용창출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자리에는 하청과 비정규직을 채워 넣으며 일자리의 질 또한 현저하게 떨어졌다. ‘고용없는 성장’과 ‘양극화’를 키워온 것이다. 그런데 세계경제공황 이후에는 투자부진까지 겹치면서 그간 재벌이 해고자와 비정규직, 국내소비자를 희생시키면서 가꾸어온 이윤율 상승은 사상 최대의 사내유보금 적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자산규모 10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상장사 이익잉여금 현황’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이익잉여금이 312조3천억원에서 395조5천억원으로 83조2천억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95조원의 이익잉여금은 내년도 국가예산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액수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경제는 한 놈만 쓸어 담는 도박판과 다를 바 없다. 몽땅 쓸어 담고서는 풀질 않으니 다른 편에서는 빚과 가난이 쌓여간다.
쪽박을 깨는 법
요즈음 여러 인사들이 ‘소득 주도 성장’을 들먹이는데, 가계소득 증가를 촉진시키고 복지를 늘려 내수를 살찌워 경제를 살리자는 이야기이다. 노동조합이 열심히 투쟁해 임금을 높이면 경제에도 좋다는 말도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노동자, 서민의 생활수준 향상이 곧 경제성장이라는 아름다운 생각이지만, 그간 재벌이 IMF구조조정과 세계화를 등에 업고 경쟁력을 키워온 비법-자본수출과 비정규직 사용 등-과 국가예산이 넘는 잉여금을 끌어안고 있는 행태를 고려하면, 타짜 옆에 앉혀 놓고 판 벌여보겠다는 어수룩함이 묻어난다.
누구 말처럼 “재벌몰수가 정답”이다. 물론 재벌몰수를 실제로 추진해갈 힘이 없는 냉엄한 현실에서는 뜬 구름 잡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맞는 건 맞는 것이고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재벌이 소유한 생산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 사회화하는 길 말고는 어느 길로 빠지든 결국 제자리걸음이다. 왜? 자본이 제 몸을 불려나가는 지배적인 사회현실, 그 자체가 바로 불평등과 실업, 빈곤 등 온갖 재앙을 쏟아내는 시대라서이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시대를 거스르는 용기와 지혜만이 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