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 마르크스 : 역사를 움직이는 힘 지식인마을 24
손철성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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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마르크스, 역사를 움직이는 힘(손철성, 2008)김영사에서 기획한 지식인마을시리즈의 24번째 책이다. 앞으로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책장에서 골라내다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반추하며 훑어 다시 보았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샀던 이유는 변증법이 무엇인지 손쉽게 알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흔히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계승했다고 평가하는데, 변증법 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인 헤겔과 마르크스를 모아 입문서로 만든 게 기대감을 부풀려주었다. 저자는 헤겔을 변증법의 철학자로 소개하면서 변증법의 의미를 중심으로 헤겔에 대해 서술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변증법에 대해 잘 알게 된 건 없었다. 저자가 변증법을 설명하면서 드는 예들은 다소 유치해서, 읽다보면 이런 게 변증법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헤겔을 직접 읽은 게 아니라, 헤겔을 조야하게 소개했던 책들에서 내용을 꾸어온 게 아닌지 싶을 정도이다.

 

한편, 마르크스를 설명하는 데 이르러서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는데 변증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대한 (내가 기대했던) 별 내용은 없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철학과 경제학 및 사회주의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하는데, 자의적인 해석과 잘못된 설명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먼저는 아래와 같다.

 

마르크스는 후기 저작에서 유적 존재’, ‘인간 본질등의 용어를 핵심 개념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초기 저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적 존재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했다. ‘유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적 측면은 노동이며, 인간은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인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헤겔&마르크스, 역사를 움직이는 힘, 109p)

 

저자의 이런 설명은 소외론을 중심으로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입장이다. 소외론은 자본주의에 의해서 인간이 자신의 본질로부터 소외되고, 이러한 인간소외가 근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는 주장으로서, 마르크스의 초기사상을 대표한다. 여기서 소외만큼 중요한 개념이 인간 본질인데, 본래의 성질이 없다면 소외된 상태라는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 마르크스가 인간 본질을 어떤 내용으로 규정했든 이보다 중요한 점은 이후에 마르크스가 유적 존재라는 개념을 버리고 대신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새로운 개념은 바로 인간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라는 규정이다. 이 말은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본성을 타고났다든지, 경험들 이전에 미리 정해진 존재라든지 등의 생각을 일체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고 이 사회와 개인들이, 개인들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남김없이 알아야 한다. ‘사회적 인간에 대한 해부절차 없이 인간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철학과 직관으로 얻은 본질에 대한 앎이란 결국 피상적인 관찰일 뿐이다.

 

덧붙여 마르크스가 초기의 소외론을 넘어서기 시작했던 건 역사를 유물론에 근거해 파악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유물론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에 가까운데, 책상 앞에서 이런 관념을 저런 관념으로 전개해가는 방법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모든 추상적인 이론을 거부함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경험만이 모든 앎의 원천이며 판단근거라는 경험주의로 경도됐던 건 아니다. 영국 경험주의를 비판하며 발달해온 독일 관념철학을 철저히 파헤쳤던 마르크스였던 만큼, 현상의 운동이 내적인 법칙과 일치한다는 경험주의의 전제도 거부했다. 경험은 합리적 방법에 의해 조직되지 않고서는 참된 앎의 자료가 될 수 없다. 이 합리적 방법이란 바로 변증법이다.

 

그리고 이처럼 마르크스가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방법을 통해 벼려낸 역사관이 흔히 사적유물론’, ‘역사유물론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행하는 첫 번째 사회적 행위인 생산을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한다. 마르크스가 생산 중심의 역사관을 구체화시키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점도 변하는데, 더 이상 인간소외에 근거하지 않는다. 대신에 자본의 운동이 어떻게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늘려가고, 사회의 빈곤과 타락을 부추기는지에 대한 규명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려 한다. 인간이 고통받는 건 어떤 본질로부터 소외돼서가 아니라 현실의 사회관계가 강요하는 굴종과 빈곤(부로부터의 소외!)에 의해서라는 게 마르크스가 새로이 도달한 지점이었다. 관련하여 다른 저자의 설명을 인용해보겠다.

 

경제학-철학 초고를 쓴 이후부터 공산당 선언을 저술하기 전까지 맑스의 사상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특히 두 개의 텍스트가 과도기적 역할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입니다.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경제학-철학 초고가 쓰인 직후인 1845년이나 1846년에 쓰입니다.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6번 테제는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다입니다. 이것을 경제학-철학 초고자유로운 의식적 활동으로서 유적 본질이라는 생각과 비교해 보세요. 같은 사람의 말이라고 보기 힘들죠. 인간의 본질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의 사회적 관계가 앙상블을 이루고 여러 사회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항상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변화할 수밖에 없겠죠? 이 단계에서 맑스는 인간이 어떤 관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하면서 경제학-철학 초고의 입장과 멀어집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 65-66p)

 

소외론에 대한 자의적인 평가 말고도 142쪽에서의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 서구 마르크스주의 등에 대한 잘못된 분류와 설명 같은 비교적 사소해 보이는 실수들도 더러 보인다. 이 정도는 가벼이 넘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설명이 도리어 마르크스를 희화화 하는 건 심각해 보인다. 지나친 도식화가 문제인데, 123쪽에서의 투자 증가로부터 시작해 이윤율 저하경제공황을 거쳐 자본주의 붕괴에 이르는 일련의 연쇄는 앙상하고 성기다. 책 앞쪽에서 저자가 변증법의 핵심내용으로 정리한 상호연관성대립물의 통일등에 비추어 보아도 상호결정과 긴장, 투쟁이 소거된 도미노식의 인과론적 자본주의 붕괴이론은 얼마나 비-변증법적인가? 아무리 입문서라도 과도한 단순화는 도리어 본래의 사상을 독자로부터 소외시킨다.

 

이 책을 읽어보려는 건 아마도 예전의 나와 같이 입문서가 필요해서일 것 같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라면 이 책보다 적합한 입문서들이 있다. 더 두껍지만 독서의 가치는 훨씬 두텁다. 두 권 소개한다.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맑스주의 역사 강의, 한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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