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 민주주의 Democracy 아주 특별한 상식 NN 7
리처드 스위프트 지음, 서복경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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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무엇으로 채워나갈까?

[서평]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강한 시장 약한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지배를 의미한다. 계급사회에서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분리돼있지 않고,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즉, 구성원 모두가 주권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갖는 상태이다. 구성원들 간의 평등은 민주주의 자체는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증가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는 경제적 불평등이 일으키는 민주주의의 무기력화에 대한 진단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약화되고 있는 민주주의란 우리가 아는 대의선거정당민주주의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외양을 걸친 의회, 선거, 정당이 본래적 의미의 민주주의(인민의 자기통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부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현존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것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맘껏 이용한다. 가진 자들의 거짓 민주주의가 지키는 건 시장에서의 제한 없는 이윤추구이고, 사상 초유의 양극화이다.

 

 

강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저자인 리처드 스위프트는 인민주권의 이상에 다가가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경제 민주화 : 현재의 약한 민주주의는 강한 시장 때문이므로, 강한 민주주의의 첫 걸음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이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의 내용에 대해 저자는 흔한 시장규제, 정부개입, 복지국가 등에 한정시키지 않고, 더 근본적이며 급진적인 고민을 던진다. 기업사회의 모순은 평등한 시민들이 기업 안에서는 소유와 통제에 대한 모든 권리를 틀어진 소수의 고용주와 이들에게 복종할 의무만을 가진 다수의 고용인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터에서 다수가 겪는 피라미드형 상명하복의 경험은 자신이 민주적 주체라는 의식을 앗아간다. 따라서 일터에서부터 경제적 삶을 스스로 통치해가는 노동자 자주관리라는 진정한 기초 없이 강한 민주주의는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 철저한 경제민주주의만이 인민주권을 심화시키고 강건하게 해줄 것이다.

 

대안세계화 : 세계화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건, 국제경쟁의 파괴력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정부능력을 제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한미FTA는 투자자가 공공정책으로부터 이익을 침해받을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통제받지 않는 국제협정, 선출되지 않는 초국적 권력인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이 한 나라의 헌법과 민주적 합의보다도 상위에 군림하며 자본의 자유와 소유를 한정 없이 늘려주는 게 세계화의 핵심이다. 이에 저자는 초국적 권력기관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국제 시민사회를 형성해가고, 국민국가 안에서는 인민의 힘을 강화해가는 다차원적인 행동을 제안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 : 민주화 이후에도 빈자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삶은 더 고달프다. 이처럼 밥 먹여 주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사실 진짜 주인은 따로 있는 가짜에 불과하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할 때이다. 의회와 선거, 정당을 가로질러 인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열려야 한다. 국민주민투표를 통한 정책의 직접 결정이 활성화되고, 중앙집중적인 의사결정과 국가 기능을 지방과 지역의 더 작은 자치공동체들로 분산 이전시켜 폭넓은 분권화를 이뤄야한다. 현재의 국가관료체제가 직장과 지역에 기초한 자치공동체들의 연합체로 대체된다면, 직업정치인과 관료,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입법행정사법이 전 인민에게 개방되고, 인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를 개선시키는 데 사용할 것이다.

 

생태민주주의 : 직업정치가와 관료에 의해 운영되는 제한된 민주주의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는, 불평등의 증가 이외에도, 생태위기이다. 4, 5년마다의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고 기업의 요구에 저항력이 없는 정치가의 단기적인 시간지평으로는 장기간의 추진과 인내를 요구하는 생태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 오직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의 더 많은 민주주의 즉, 더 많은 권리와 더 적은 노동시간, 더 민주적인 문화 등으로 향상될 삶의 질만이 물질추구와 소비를 줄이려는 진지한 노력을 대중에게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생태계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하나를 방어하는 것이 다른 하나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관계 속에 있다.

 

 

민주주의, 비어있는 항아리

 

위의 대안들이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약한 민주주의와 강한 민주주의 사이의 대비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어떤 제도나 시스템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증 못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비어있는 항아리와 같다. 민주주의를 실제로 정의하는 것은 그 속을 인민이 어떠한 일상의 실천들로 채우느냐에 달려있다. 냉소를 가장한 무관심으로 제 운명을 부자와 권력자에게 맡겨만 놓을 것인가? 아니면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협동조합, 마을, 공동체 같은 민주적 공간들을 스스로 열어 모두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며 행동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향유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건 지금 여기에 사는 각자 선택들의 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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