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와 민중권력

 

 

한 혁명가의 죽음

 

지난 35, 우고 차베스가 암투병 끝에 서거했다. 그를 설명하는 최선의 말은 아마 차베스 본인이 한 말일 것이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빈민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고, 모든 가난한 자들 즉, 베네수엘라 민중은 여기에 21세기 유일한 혁명으로 응답해왔다. “민중권력을 창조하라!” 이 선언이 바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신이다.

 

정치무대에서 차베스가 처음 등장한 해는 `92년이다. 육군 중령이었던 차베스는 부패정권을 쓰러트리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때, 당장의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미래의 승리를 기약하는 당당한 모습을 통해서 당시 암담한 현실을 버텨내던 민중 사이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98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고, 이후 14년간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볼리바리안 혁명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끌어왔다. 이제 차베스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겠다. 대신 그가 마지막까지 헌신했던 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볼리바리안 혁명 속에서 차베스의 고결한 이상과 강한 의지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개혁

 

지구 반대편 남미대륙에 위치한 이 나라의 현재 국호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가 집권 후 곧바로 추진한 헌법 개정이 `99년 국민투표에서 통과됨으로써 국호가 바뀌었다. 새로운 헌법은 볼리바리안 헌법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볼리바리안의 의미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인 시몬 볼리바르를 뜻한다. 볼리바르는 1810,20년대에 스페인에 맞서 식민지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였다. 차베스가 볼리바르를 호명하며 불러내고자 했던 건 지배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정신이었다. 과거의 지배자가 스페인이었다면, 오늘날 남미대륙을 도탄으로 빠뜨리고 있는 건 미국이 전 세계에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이다.

 

베네수엘라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건 경제파탄과 `89년의 IMF협상을 통해서였다. 당시의 페레스 정권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재정긴축과 사회보장 축소, 민영화, 시장 자유화 등을 합의해주었다. 이를 발표한 지 11일 만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중교통비가 두 배가 오른 것에 분노한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수천 명이 희생당했다. 이후 차베스가 집권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빈곤율이 64.2%까지 증가하고, 석유회사를 비롯한 기간산업이 민영화돼 물가가 치솟았다. 반면에 소수가 독차지한 부는 이를 틈타 더욱 커졌다.

 

신자유주의는 가뜩이나 불평등한 사회를 더 비참한 곳으로 전락시켰고, 구조적 모순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것이 볼리바리안 혁명의 배경이다. 새 헌법을 제정한 이후 `01년에 차베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제와 사회의 복구를 목표로 49개 개혁법안을 통과시킨다. 이중 탄화수소법은 석유산업의 민영화를 중단시키고 국영화와 석유이익의 국민경제 환원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토지법은 개인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정부가 사유의 미경작지와 휴경지, 도시 유휴지를 징발해 농민과 도시빈민에게 분배하려는 조치다. 또 협동조합법은 민중의 자조 노력에 협동조합이라는 공식지위를 부여해 정부의 지원을 보장해준다.

 

그런데 기존의 기득권세력은 개혁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고 군대와 경찰, 관료, 자본가, 언론, 어용노조가 총집결해 `02년에 군사쿠데타와 경제파업을 연달아 일으키며 차베스 정권을 전복시키려했다. 위기의 순간에 차베스를 구한 건 정치권력도 군대도 아니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중이 새 헌법과 개혁을 수호했다. 그리고 이 순간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다.

 

민중권력으로의 급진화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쳐 위기에 처하자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급진전됐다는 점이다. 민중은 반혁명세력으로부터 차베스와 헌법, 개혁을 수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과 미래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조직했고, 나아가 엘리트들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 차베스는 현명하게도 반혁명세력과 타협하지도, 민중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한하지도 않았고, 민중의 요구에 발맞추어 함께 전진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역할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분출하는 요구들을 지원하고 조정하는 것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는 반혁명 시도에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는 국가관료와 변화할 뜻이 없는 관료기구에게 혁명을 맡길 수 없다는, 시행착오로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료주의를 민중의 자치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민중권력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02년 겨울에 자본가들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물자를 파괴하며 경제파업을 벌이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스스로 생산을 재개시켰다. 차베스는 이런 공장들을 국가가 인수하도록 해 노동자 투쟁을 지원해주었고, 국유기업에는 자주관리와 공동경영을 도입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기업과 경제의 사회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무력한 피고용인에서 일터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비교적 소규모 단위에서 일반적인 협동조합은 백만 명이 넘는 농민과 노동자를 포함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성장은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의 성숙과 민중이 스스로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역량의 진전을 반영한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06년부터 조직된 공동체평의회이다. 공동체평의회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수백가구로 이루어지며, 해당 지역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재정을 배분받아 집행까지 한다. 한마디로 동네 자치이고, 국가의 의사결정과 기능이 수 만개의 공동체평의회로 이전돼 국민 모두가 의원과 공무원이 되는, 차원이 다른 참여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이다. 물론 아직까지 공동체평의회가 기존의 국가를 대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베네수엘라 민중이 전인미답의 한 발을 내딛은 건 틀림없다.

 

이중권력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지배계급의 재산, 관료기구 같은 구체제가 온존하면서도 민중권력이 등장해 활력을 키워왔다. 그동안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불평등도 완화돼왔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으로 민중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여기에는 차베스의 지렛대로서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는 민중에게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차베스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이 잠겼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문 밖으로 걸어 나와 더 전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제2, 3의 문들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에 모순적인 두 힘이 나란히 존재하는 이중권력의 상황이 언제까지고 평화롭게 계속될 수는 없다. 그동안 민중권력이라는 새로운 사회의 씨앗과 함께 낡은 사회와의 갈등과 투쟁의 여지도 더불어 커온 셈이고, 구체제는 파괴될지언정 스스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과 베네수엘라 민중의 승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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