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한 TV토론회에서 어느 대학 교수가 정부쪽 토론자로 나와 협상의 정당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을 보고, 화가 치민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여당 의원도 나왔었는데, 여당 의원도 인정하는 문제점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내세우며 협상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모습을 보고, ‘종’이 ‘주인’보다 더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어용 지식인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지만, 정말 화가 나는 것은 학자적 양심을 지키는 것보다 권력의 눈에 들기를 욕망하는 지식인이 요즘은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영혼이 없는 지식인의 정치 참여

  지난 대선과 총선을 전후해 ‘폴리페서’(정치 참여 교수)라는 말이 유행했다. 선거철만 돌아오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대학교수, 낙선해도 대학에 쉽게 돌아오는 교수 등의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명막 정부 출범 때 16명의 국무위원 후보 가운데 7명이 대학 교수 출신이었고, 4월 총선에서는 42명의 대학 교수 출신이 출마해 19명이 당선됐다(전국구 포함). 그리고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학교로 돌아오려 했던 한 서울대 교수가 논란이 되었고, 급기야 서울대 교수 81명이 ‘폴리페서 윤리규정’ 건의문을 대학에 제출했다. 교수직을 정치권을 맴돌다가 끈 떨어지면 돌아올 둥지 정도로 여기는 뻔뻔한 교수들에 대한 제재는 당연하겠다.

  그런데 대학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의 정치, 공직 참여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정치, 공직 참여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참여 과정이 지식인의 철학과 신념의 실천 과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스스로를 정치권의 장식과 도구로 전락시키며, 입신 영달하는 과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식이다.

  “한승수 현 국무총리. 그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8월 상공부 무역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으며 정권과 연을 맺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던 때였다. 한 국무총리는 1988년 5월 민정당 공천을 받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89년 12월 제34대 상공부 장관에 취임했다. 노태우 정권 때다. 문민정부로 분류되는 김영삼 정권 때는 제15대 주미 대사, 제18대 대통령 비서실장, 제3대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지냈다. 19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 무소속으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다음해인 2001년에는 최초의 민주정부라 일컬어지는 김대중 정권에서도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한 국무총리는 2002년 10월 다시 한나라당에 입당, 16대 국회의원직을 마쳤다. ‘전두환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주요 임명, 선출직 공직을 두루 거쳤다. 현재 국무총리 자리까지 포함하면 여섯 개 정권에 걸쳐 있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91쪽)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조사에 따르면 역대 정부의 지식인 출신 장관 182명 중 63명(34.6%)이 한승수 현 국민총리처럼 군사정부(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 이어 문민정부(김영상,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공직을 맡았다고 한다. “이 조사는 지식인의 정권 참여가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정부에 참여하는 건강한 방식이 아니라 소신과 무관하게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정부에 자신의 지식을 파는 ‘지식 상인형’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같은 책, 95쪽)


지식인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폴리페서 문제를 비롯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2007년 4월부터 7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같은 제목의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기획 시리즈 기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기획 시리즈는 민주화 20년을 맞은 2007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떤 존재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를 소재로 17회에 걸쳐 연재된 것이었다. 이 기획기사에 대한 경향신문 편집국장의 평가를 직접 들어보자.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그 양과 질에서 우리 언론 사상 최초로 시도한 지식인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다. 팀장과 세 명의 기자가 악전고투 끝에 만든 지식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자 변론문이다. 연재 기간 동안 지식사회를 긴장시킨 지식인 건강진단서다.” (같은 책, 6쪽)

  이러한 평가가 결코 자족적인 것이 아닌 것이, 이 기획기사는 2007년 7월에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에 선정됐고, 이어 11월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 매스컴위원회의 ‘올해의 가톨릭 매스컴상 신문 부문’에 뽑혔다. 그리고 2008년 1월에 ‘제39회 한국기자상 기획 보도 부문 수상작’으로도 선정됐다. 이는 내용의 시의성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지식인들과 인터뷰하며 문제의식을 다듬고, ‘지식인 지도’와 ‘문민, 군사 정권 넘나든 장차관 분석’, ‘지식인 설문’, ‘해외 박사 분석’ 등의 실증자료들을 직접 만든 특별취재팀의 쉽지 않은 노력에 힘입은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이번에는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지식인의 죽음

  책의 서문은 한국의 지식인처럼 명예와 돈과 권력을 모두 갖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시작한다. 지식인은 흔히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담론에 참여하며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자로 정의된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은 그 이상이다. 교수로 좀 이름이 나면 쉽게 장관, 총리의 고위 공직을 차지한다. 이러한 한국의 습속은 유별나다. 미국에도 교수 출신 장관이 있지만, 교수에서 바로 장관이 되지는 않는다. 과장급으로 가서 경력을 쌓은 뒤 대학으로 돌아갔다가 그 다음 국장급 자리를 맡는 식이다. 교수라도 공직자로서의 경력을 축적해야만 고위직을 맡을 수 있다. 또한 언론에서는 무슨 문제만 생기면 교수들을 찾는다.

  “그렇다면 이 땅의 지식인은 자신들에게 이런 가치를 부여한 사회에 응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책이 출발점으로 삼은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책은 바로 지식인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민주화 20년이 넘었다. 군사정권은 타도되었다. 누구에게나 분명했던 악과 싸우는 시대가 끝난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으로 진영 대결이 종언을 고했다. 선과 악의 선명한 이분법적 전선이 사라졌다. 이제 사회는 외세에 억눌린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이끄는 안내자, 민중의 해방의 선도자이자 민중 이익의 수호자, 위대한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서의 지식인을 원하지도 않고 그들도 그렇게 자처하지 않는다. 저항적 지식인은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것이 지식인의 첫 번째 죽음이다.

  지식인의 두 번째 죽음은 그 첫 번째 죽음의 결과다. 지식인은 더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지식인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이미 공공하게 구축된 지배 질서를 전복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지식인은 이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보루가 되었다.” (같은 책, 11쪽)

  지식인의 저항적-사회비판적 역할 방기가 곧 지식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이제 사회에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독립된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기득권을 향유하는 특권 계급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정치권력, 경제권력의 품 안으로 안겨가 권력의 전위대, 선동가로 전락하고 있다.

  그런데 지식인에게 여전히 저항적-사회비판적 역할을 기대하고, 이에 근거해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는 과거의 유물이지 않을까?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화 20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성장지상주의, 시장주의, 미국이며, 따라서 이러한 획일적 가치의 지배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는 지식인의 역할이 여전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민주화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상이었던 ‘저항적 지식인’이 우리 시대 지식인의 표상으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고 말한다. “민주화 20년을 마감하고, 신보수주의 시대가 꽃을 피는 이 시점에 저항과 부정만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안 체제의 구축”이라고 주장한다. “지식인들은 대항 헤게모니를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책의 문제의식이 도달한 결론이다. 즉 책은 지식인의 권력지향적 행태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 지식인에게 다시 시대의 갈등과 분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돈에 신념을 파는 지식인

  책의 주요한 문제의식의 대강을 살펴보았다. 책은 본문에서 기자다운 실증적 분석과 지식인 자신의 고백적 담론들(기고글)에 근거해 지식인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의 세부적인 항목들을 작성하고 있다.

  본문은 10장으로 구성되는데, 1장부터 3장까지는 총론 격으로 민주화 20년 동안의 지식인의 풍경과 위기를 말한다. 올해 초 퇴임한 김수행 서울대 교수의 ‘현대마르크스경제학’ 수업 풍경을 20년 전과 비교한 프롤로그에서 시작해, 주요 지식인 104명을 좌,우축과 민족,탈민족축으로 된 좌표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지식인 지도’와 진보,보수,중도 지식인 74명에게 ‘지식인의 위기’에 대한 생각,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식인과 저술 등을 설문한 결과도 실었다.

  4장부터 10장은 각론으로 분야별로 지식인이 처한 위기를 진단한다. 정치권력과 지식인, 경제권력과 지식인, 문화권력과 지식인 등 사회권력과 손을 잡은 지식인의 모습이 충격적이다. 미국 박사가 지배하는 한국 대학사회의 문제점과 공룡화된 학술 진흥재단의 학문지원 시스템이 어떻게 지식인들의 활동을 압살하고 있는지도 점검했다.

  특히 정치권력과 지식인 사이의 잘못된 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폭로된 재벌과 지식인 사이의 ‘유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고발은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재벌이 어떻게 지식인 사회를 식민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 자문 교수들의 임무는 ‘건강한 기업 활동’을 위한 ‘자문’에 응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 측에 비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됐을 때 우호적인 언론 칼럼을 쓴다든지, 자신의 학회나 학교 인맥을 이용해 기업에 필요한 우군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식인 출신 사외 이사들의 역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또한 한 대학교수의 “요즘 교수들 중에 돈 3천만 원만 준다고 하면 기업 측에서 원하는 그대로 결론을 내 주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자조는 암울하다.


“한국 지식사회학의 역사에 우뚝 설 대작이요, 쾌거”

  책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탐구 대상이 대학교수에 집중되는 바람에 지식인 범위가 상당히 한정되면서, 지식인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다. 특히 ‘시간강사’로 불리는 비정규직 교수 문제, 박사 출신 실업자 문제를 고려하면,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지식인이란 전체 지식인 사회의 상층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인 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분석과 함께, 교수직이 연줄에 따라 폐쇄적으로 배분되는 대학구조가 지식인 사회를 어떻게 불구화시키는지에 대한 분석이 빠진 점도 아쉽다.

  그렇지만 이런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강준만 교수의 평에 따르면 “한국 지식사회학의 역사에 우뚝 설 대작이요, 쾌거다.” 미비점을 보완한 ‘속편’을 기대한다. (*한편 강준만 교수는 책이 다음 기회에 보완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이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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