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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평점 :
“이 백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예요”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에서 주인공은 일하던 백화점에 전시돼있는 명품 앞에서 이 말을 읊조린다.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백이 아니라, 이 백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니! 이 말은 명품을 가벼이 걸칠 수 있을 정도로 재력 있는 상류층으로 올라서겠다는 계층 상승 욕구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다. 여기서 명품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리키는 기호에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대상화한다. 이처럼 사람에게 미치는 힘, 그리고 욕망을 조직하는 권력까지 물건이 지니게 될 때 사물에 신과 같은 속성이 깃들였다 하여 물신성이라 부른다. <레이디 두아>는 신적 권능과 같은 물신성에 휘둘리고 비틀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정말 신에게서 비롯한 게 아니라면 물신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레이디 두아>는 끊임없는 거짓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짓이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물신성은 거짓에 의존한다. 거짓은 참의 외양을 둘러쓰고 나타나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내고, 이 믿음이 유지되는 한 힘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최초의 물신성 비판은 우상숭배에 대한 거부였을 것이다. 신의 형상을 빚어 만든 물건에 절을 하며 모시는 숭배 행위는 그 물건이 정말 특별하다는 믿음에 의존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우상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면 우상은 그저 물건에 불과하며, 숭배를 받을 가치와 자격이 당초부터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레이디 두아> 속의 명품은 우상과 다를 바 없다.
<독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는 거짓된 신이 깃드는 대상을 우상과 명품 같은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우상숭배와 같은 현상이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체제에 대해서도 일어난다고 보았고,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회체제를 옹호하는 거짓된 관념들을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알다시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함께 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발전시켰다. 거짓의 힘을 약화시키고 몰아내기 위해서는 진실을 밝히는 방식의 비판만으로는 비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았다. 물질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관념은 공허하다. 그래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식을 변화시키라는 이러한 요구는 결국 현존하는 세계에 대한 해석 방식을 변화시키라는, 즉 다른 해석 방식을 통하여 세계를 승인하라는 요구로 귀착된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유물론에서 파생된 것인데, 역사유물론은 사람들은 먼저 먹고, 일하고, 소유하고, 교환하고, 지배받고, 지배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경제, 사회적 토대 위에 국가와 법, 이데올로기 등의 상부구조가 형성된다. 사회를 바라보는 토대-상부구조 관계를 의미하는 가장 유명한 언명이 바로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생활세계의 변혁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 <레이디 두아>와 같은 작품들이 명품의 세계를 무수히 조롱하더라도 명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 불평등한 위계, 과시적·모방 소비행태 같은 사회 현실들의 옆에는 항상 명품도 나란히 존재할 것이다.
<이데올로기 브레인>
물신성이 사회 현실의 산물이라면, 이데올로기는 그러한 현실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인지적 장치이기도 하다.
뇌에 대한 연구의 발달로 전통적인 다양한 주제들로 신경과학이 연구영역을 넓히고 있는 게 최근 지식 동향 중 하나이다. 책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신경과학자가 쓴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근의 대중서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두 가지 근본 원리로 특징지을 수 있다. 바로 예측과 소통이다. 생존의 필요성에 의해 뇌는 끊임없이 예측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예측과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 뇌가 내놓은 군침도는 해답이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질문, 우리가 따를 대본, 우리가 속할 집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을 제공한다. 생각과 행동을 안내하는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이해하고, 다시 나 자신도 이해받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충족해주는 빠른 지름길이다.”
즉 이데올로기는 거짓과 허위의식만이 아니다. 이제 이데올로기는 뇌가 과부하에 걸리지 않고 세상을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인식 수단이다.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과 극복의 관점을 발전시켰던 전통 이론과 달리 신경과학은 인지적 경직성에 주목한다. 인지적 경직성은 새로운 정보나 상황 변화가 생겨도 기존의 해석과 판단, 신념을 잘 수정하지 못하고, 기존의 틀에 고정해 판단하려는 경향이다.
몇 가지 인지테스트들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경직적인 사람일수록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극단성이란 좌파이든, 우파이든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해있는 걸 의미한다. 극단적 이데올로기들이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면, 사회구성원들의 인지적 유연성을 직접 키워주려는 노력(유연성을 향상하는 인지훈련은 실제로 가능하다)도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뇌가 경직되는 데에는 불안정한 노동, 경쟁, 지위 불안, 소속 욕구, 미래에 대한 공포 같은 사회적 조건들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경직된 믿음에 매달리게 만드는 생활세계의 조건을 함께 겨냥해야 한다.
물신성에서 벗어나기
사실 물신성에 대한 최상의 논의는 일찍이 <자본론>에서 전개된 바 있다. 마르크스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의지와 행위를 초월하여 작동하는 경제법칙(시장논리)들이 규제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사물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의미의 물신성으로 개념화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건 사물의 인간 지배를 끊고, 인간이 연합한 공동체로서 스스로를 규율하는 자유의 세계로의 이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사물의 지배를 사물 자체의 성질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상품이 가치를 갖고, 화폐가 가치 저장과 축적의 기능을 하며, 자본이 이윤과 이자를 낳는 건 상품과 화폐, 자본의 본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와 시황, 경기가 안 좋으면 임금이 깎이거나 해고되고, 일터가 사라지는 건 자연법칙처럼 여긴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문제지, 구조조정은 일어날 수밖에 없고, 때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경제법칙과 그 운동을 만들어내는 상품과 화폐, 자본은 인간이 노동하는 과정에서 맺는 사회관계의 산물이며, 이 질서는 인간의 실천에 의해 변화하거나 사멸할 수 있다고 <자본론>은 설명한다. <레이디 두아>에서 노동자는 가짜를 만들어내고, 자본가는 가짜를 명품으로 판다. 그리고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라는 노동자의 물음은 폭력의 분출로 이어진다. 명품이 사람을 만드는 세계에서 명품을 만드는 노동은 불경한 실체이다.
화폐가 권력을 갖고, 자본이 스스로 이윤을 낳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자유는 사물의 힘을 숭배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물의 배후에 있는 인간의 노동, 지배, 계급관계를 다시 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란 우리가 숭배하던 사물의 힘이 사실은 인간들이 맺은 관계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관계를 다시 조직할 수 있다고 믿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