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이주희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신간을 검색하다가 이 제목에 끌렸다. 누구에게든지 차별은 분노를 일으키는 행위이지만, 언제 어디에서든지 존재하는 게 차별이기도 하다. 차별을 낳는 사회적인 힘을 구조라고 부른다면, “차별하는 구조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며, 피와 살이 없는 기계, 감당할 수 없는 무게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차별받는 감정은 다른 말이 없어도 아픔을 자아낼 것 같다. 차별받는 슬픔을 생각하면.

차별이라는 단어에서 생각나는 사진이 있다. 어디론가 도로 위를 걸어가는 흑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백인만을 위한 좌석에서 일어나기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의 행동이 촉발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한 장면이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먼 거리를 걸어가는 불편과 고됨을 스스로 감수하는 것으로 인종분리정책에 맞섰던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마음들이 수십 년의 시간을 가로 질러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 마음들 속에는 오랫동안 말없이 견디어온 차별, 그것이 낳은 수많은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차별받는 감정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지, 구조와 감정을 어떻게 연결할지 궁금하여 책을 읽었다. 책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로부터 시작한다. “지성으로 현실을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미래를 낙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현실을 비관하게 하는 것은 구조가 가진 힘이요,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건 주체의 능력일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저자(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적 해방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지적인 해방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차별하는 구조 아래 차별받는 사람들의 감정이 더 이상 부차적인 현상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감정에 작동하는 프레임 규칙과 감정 규칙의 파악이 차별 극복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레임 규칙은 어떤 상황을 정의하거나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규칙을 말한다. 그리고 감정 규칙은 상황과 감정 간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뜻한다. 해고당한 사람이 그것을 고용주의 횡포로 여기는지 아니면 자신의 무능력과 실패로 규정하는지가 프레임 규칙에 의한다면, 감정 규칙에 따라서는 회사에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가 결정된다.

책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감정에 작동하는 규칙에 대해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한다. 체념과 적응, 혐오. 차례대로 읽어가는 중에 내가 겪었던 차별의 구조와 그 아래에서 나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돌아보았다.

 

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

 

내가 기억하는 대형마트는 서열화된 노동의 장소이다. 서열은 고용형태에 의해 결정된다. 밑바닥에는 외주, 하청화된 노동과 파견 노동이 존재했다. 청소와 경비,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마트 소속의 직원이 아니며, 그들끼리도 서로 다른 회사들에 속해 있다. 시식대의 판매촉진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처지가 가장 열악한 건 마트와 용역회사 간의 계약이 해지되면 마트로 출근할 근거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트가 이들의 노동에 매기는 예산과 용역회사가 중간에서 떼먹는 정도에 의해서 이들의 급여가 결정되고, 마트의 비용 절감과 용역회사의 중간착취 열정은 법정 최저임금으로만 식힐 수 있다.

간접고용과 직접고용 사이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직접 고용하는 노동자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했다. 상품을 진열하는 등의 기간제 노동자들이 있고,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 내에서도 서로 높낮이가 다르다. 나 같은 하층의 용역 노동자에게는 캐셔와 매장 부분별 담당자들이 중간층, 사무실에 책상을 갖고 있는 몇 명의 사무직과 점장이 상층으로 보였다.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 대형마트 노동조합 투쟁의 당사자들이 기간제나 입점 점주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거였다. 과거에 노조원들이 했던 일들은 비정규직의 일이 되었다.

이러한 고용카스트를 정당화하는 논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직무에 따라 최적의 고용형태가 결정되고, 저마다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면, 고용형태에 따른 서열은 능력에 따른 분배순위로서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어느 노동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 곳에 존재한다. 청소 노동자가 없다면 마트는 악취 나고 불결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의 가치는 이런 필요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수요와 공급이다. 청소나 경비, 시설관리, 판촉과 같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가 하더라도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은 공급 측면에서 희소성이 없기 때문에 그 가치도 낮다는 게 경제학의 설명이다. 그리고 경제학대로 세상이 돌아가야 효율적이고 경제성장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른바 비핵심업무를 외주화한 대형마트는 이런 논리에 충실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혼자 일을 할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지만 마트의 진짜 정규직이 지켜볼 때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었다.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의 분할이 수평 구조의 칸막이가 아니고, 수직 구조의 천장과 같고 임금과 의사결정 권한이나 기회의 차등 분배가 당연시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일 것이다. 못난 열등감이라는 자책에도 걸러지지 않는 건 여기서 나의 위치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자각과 이에 뒤따르는 위축감이었다. 나의 위치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 이용할 수 없는 시설, 말을 걸 수 없는 상대 등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래, 열심히 일하더라도 저 위로 낄 기회는 생길 수 없다. 나의 노동은 쓸모가 없고, 나 역시 쓸모가 없다는 무력감과 명백히 대비되는 건 마트 정규직의 사원증과 분명한 목소리의 지시였다.

차별의 벽들을 무너뜨리기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차별받지 않는 마음을 위해 내세우는 제안은 차별금지법과 적극적 조치”, “기본소득과 기본서비스이다. 차별하는 구조는 개인의 체념과 적응, 혐오를 낳고, 이런 감정들이 차별을 더욱 공고화시킨다.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건 로자 파크스와 같은 위대한 용기와 차별받는 마음들의 연대와 운동이겠지만, 이러한 순간은 계획하고 준비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차별을 받을 때 언제라도 기대거나 싸울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사회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사회 여건의 성숙이 연대와 운동 없이 선물과 같이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차별 아래에서 무력감과 패배감이 너의 책임이라거나 자기계발로 떠미는 게 아니라, 그 부당함에 분노하고 싸울 수 있는 감정을 지지하는 사회분위기의 변화도 필요하겠다.

책의 끝맺음이 상당히 좋아 이 문장들로 마무리 짓고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가장 빨리 뛸 수 있는 선수가 항상 메달을 얻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장애인인 우리도 차별적 구조에 막혀 능력을 보여줄 수 없었을 뿐, 우리가 선택한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메달을 딴 사람들은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작동 중인 여러 차별적인 기제로 인해 메달을 쟁취한 것 자체가 가장 빨리 뛴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메달 가까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무너져내릴 필요도 없다. 우리가 무너뜨려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차별하는 구조, 즉 우리가 차별받았을 때 느껴야 하는, 그래서 그 구조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진실한 감정을 막아서고 있는 거대하고 단단한 벽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